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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박근혜 퇴진을 막기 위해 마련된 ‘기무사의 복안’
- 기무사, 최순실 태블릿PC 공개 이후 정국 수습 방안 마련해 민정수석에게 보고 -
군인권센터는 지난 2022. 7. 28. 군사안보지원사령부(現 방첩사령부)를 상대로 대법원에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일부승소하여 ‘現 상황 관련 보고서1(現 시국 수습을 위한 전문가 의견)’ 제하의 1페이지짜리 문건을 확보하였다. 해당 문건은 소위 ‘최순실 태블릿PC’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박근혜 퇴진 촛불이 확산하던 2016. 11. 7.에 국군기무사령부 정보융합실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최재경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보고되었다. (* 같은 날 민정수석에게 보고되었으나 소송 결과 공개되지 않은 문건 중에는 ‘現 상황 관련 보고서2(경찰력 지원 건)’도 있다.)
오늘 공개하는 문건은 윤석열 정부가 「국군방첩사령부령 개정안」을 예정대로 통과시킬 경우 장래에 군 정보기관이 어떤 식으로 오·남용될지 명백히 보여준 사례다. 보고서에는 기무사가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국정농단 사태 수습 방안을 수렴하여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제안된 방안들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당시 논의에 난항을 겪던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여야 협의에 따른 인사추천위원회, 김병준 총리 내정자 지명 철회 카드로 풀어가자고 제안했다. 이 외 대통령의 대통합, 소통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원로 중심의 상설 국가위기관리자문기구 구성, 여야를 망라한 당·청 상설 협의체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공정한 수사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물밑에서 논의가 오가던 여야 영수회담에서 대통령이 직접 특검 구성을 요청해야 한다는 제안, 검찰 인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피력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심지어 검찰 인사 관련 의지는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기보다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입을 빌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행동 방침까지 건의했다.
언론을 달래기 위해 각 언론사 편집국장, 보도본부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방안, 사이비 종교에 연루되었다는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대통령이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고 직접 미사에까지 참석해 천주교 세례교인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부각시켜야 한다는 건의도 있다. 사회 부조리·모순을 수렴, 조치할 전담기관을 설치하고 고위 공직자 범죄 수사를 맡게 하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법시위 및 악성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세력을 엄정히 처벌하고, 불법시위 장면은 철저히 채증하여 수사에 활용하고, 국민들에게 채증 영상을 공개하라는 위법 행위까지 건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보고서에는 당시 정가에 오가던 정치 현안들을 꼼꼼히 다루고 있으며, 각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행동 방침과 결심 필요 사항도 열거되어있다. 그러나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는 이러한 정국 수습책에 관심을 둘 까닭이 없다. 이를 정리해 대통령에게 보고까지 할 까닭은 더더욱 없다. 명백한 월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무사는 군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권력자의 싱크탱크 역할을 자임했다.
군인권센터가 정보공개를 청구했던 기무사 보고서는 35건에 달한다. 이 중 10건이 공개되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지 않은 문건은 수백 개에 달한다. 비공개 문건 목록만 봐도 기무사가 수시로 보수단체 관련 정보를 수집, 관련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을 상세히 사찰하고 있었다는 점도 알 수 있으며, 기무사가 관심 가질 이유가 없는 정치 상황에 대한 조언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도 알 수 있다. 기무사는 군에 침투한 간첩을 찾아내고 방위산업의 기밀성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권력의 시종 노릇을 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첩사령부에 이러한 문건들을 작성할 수 있는 권한을 합법적으로 부여하기 위해 방첩사령부령을 개정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2022. 12. 21. 군인권센터의 입장에 대해 반박문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방첩사령부령 개정이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직무 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며, 정치관여,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은 여전히 불가하다는 원론적인 말만 읊었다. 그러나 개정안을 살펴보면 추가, 또는 수정된 직무 중에 신기술 도입과 관련 있는 것은 ‘문서 및 정보통신 등에 대한 보안업무’를 ‘문서, 정보통신, 사이버, 암호, 전자파, 위성 등에 대한 보안업무’로 수정한 항목 하나 뿐이다. 그 밖의 개정 사항은 대부분 불필요한 권한을 강화하는 것 뿐이다.
또, 국방부는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은 불가능하다며 소위 ‘3불 원칙’을 운운하였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방첩사가 기존과 달리 포괄적인 북한 관련 정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등 ‘직무 상 민간인 사찰’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려고 한다는 지적을 했는데, 국방부는 ‘직무를 벗어난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하다는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과거 군 정보기관 역시 당연히 민간인 사찰, 정치 개입 등의 불법행위를 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국민들은 제도적 통제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원칙 천명 운운하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통제는 고사하고 필요에 따라 민간인 사찰도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임무 규정까지 추가된다면 방첩사에 대한 제도적 통제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또, 국방부는 공공기관장이 법령에 근거하여 요청한 경우에 정보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법령에 근거’해서 요청한 경우에만 협조가 가능하다는 제한적 조항이라 반박했다. 통상적으로 법령규정에 ‘법령에 근거한 권한’을 부여할 때에는 무슨 법 어느 조항인지 명확하게 적시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냥 ‘법령에 근거 한 요청’이란 포괄적이고 모호한 단서 조항을 달아 두는 것은 조문의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라 정보기관은 임무 수행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로써 촘촘하게 임무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기관장의 요청’이란 임의에 따른 정보 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건 방첩사의 정보 활동 범위를 무제한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끝으로 민간의 공공기관장들이 군 정보기관에 정보 활동을 요청할 필요가 있기는 한 것인지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조항이 헌법에 의해 군 통수권을 지닌 대통령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방첩사에 오늘 공개한 문건과 유사한 정보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지휘하면 따르지 않을 수 있는가? 법령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성을 지적하였는데, 국방부는 말장난으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궁금한 것을 사찰해서 보고하는 황당한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군 정보기관을 대통령 전용 사설 탐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기무사를 해편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할 당시, 안보지원사는 스스로 보안사, 기무사의 후신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보지원사는 과거의 과오와 단절된 완전히 새로운 부대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래서 홈페이지에 소개된 부대 연혁란에도 2018년 부대 창설 이후의 연혁만을 기재해두었었다. 그런데 방첩사는 부대 명칭을 바꾸고 홈페이지를 새 단장을 하면서 다시 부대 연혁란에 보안사, 기무사를 넣어두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불과 4년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실제 방첩사 요원들은 보안사, 기무사 시절과 역사를 단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들에겐 과거가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럽고 돌아가야 할 시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방첩사에 가공할 권력을 쥐어주고 무소불위의 정보기관으로 발돋움하게 한다면 우리가 마주할 미래 역시 어둡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방첩사령부령 개악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같은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과 마찬가지로 군 정보기관에 대한 관리·통제 방안도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정보기관을 대통령 시행령에 맡겨두는 건 국민을 위험에 방치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 정보기관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해야 하는가? 차제에 군 정보기관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2. 12. 22.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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