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령 폐지 1년, 검찰이 뭉갠‘촛불 무력 진압’
「위수령」이 폐지 된 지 1년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해 9월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위수령을 폐지했다. 2018년 3월 8일, 군인권센터가 박근혜 탄핵 촛불 당시 군이 위수령, 계엄령 등을 빙자하여 군대를 투입, 촛불 시민을 진압하고자 했던 사실을 폭로한 여파였다. 박정희 군부 독재 이래 군의 정치 개입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위수령」은 국군기무사령부 해편과 함께 촛불 무력 진압 사태의 후속 대책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유물이 되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 당시 군은 「위수령」을 통해 육군참모총장의 지휘 아래 서울 시내에 군을 투입하고, 이후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친위 쿠데타 시나리오를 세웠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내란 음모의 주모자인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이 미국으로 도주하였다는 이유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현재 조현천에게는 기소 중지, 관련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당시 국무총리),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등에게는 참고인 중지 처분이 내려진 상태다.
촛불 무력 진압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밝혀야 할 핵심 쟁점은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첫째, 기무사의 계엄령 선포 계획 문서에 등장하는 대통령 박근혜와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 친위 쿠데타 계획에 개입되어 있는지 밝혀야 한다. 둘째, 계획 문서에 ‘계엄임무수행군’으로 등장하는 기계화보병사단 등 야전 부대의 지휘관 등이 실제 이 계획에 개입되어있는지 밝혀야 한다. 셋째, 계획 문서에 등장하는 ‘국회 무력화 계획’의 실행 주체로 지목된 자유한국당이 실제 이 계획에 개입되어있는지 밝혀야 한다. 의혹의 당사자들 중 감옥에 있는 사람은 박근혜 뿐이다.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이며, 황교안은 자유한국당의 대표인데다, 계엄임무수행군에 등장하는 부대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현역 장성으로 복무 중이다. 만약 이들이 실제 친위 쿠데타 계획에 연루되어있었다면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 전복과 시민 학살을 모의한 이들이 버젓이 권력을 유지하고 군대를 통솔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는 이상, 국민들은 ‘군사 쿠데타 모의 세력’이란 폭탄을 떠안고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검찰은 촛불 무력 진압 사건을 잊은 듯하다. 조현천이 미국에 도주하여 행적이 묘연함으로 수사를 더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정말 조현천을 체포 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건 초기부터 검찰은 내란 음모의 피의자인 조현천에게 귀국을 설득하고 있다는 둥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7~8월 연락이 닿을 때는 여권무효화도 하지 않고 체포영장도 발부하지 않고 있다가 연락이 끊기고 잠적한 뒤인 10월이 되어서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대체 어느 나라 수사기관이 도주한 내란범을 설득해서 잡아오는가. 조국 법무부장관 주변인은 소환도 하지 않고 기소부터 하고 보는 대한민국 검찰이 내란범은 무슨 연유로 1년이 넘도록 소환조차 못하고 있는지 그 까닭이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보다 못한 북미민주포럼, 4.16인권평화해외연대 등 미주 한인 동포들과들과 군인권센터가 현상금 1,000만원을 걸고 조현천을 수배하고 있으나, 정작 수사 당국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국내 송환은 난망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이 사건의 모든 키를 조현천이 쥐고 있는 마냥 언론에 공표하며 모든 수사를 중단하고 조현천 송환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소강원 당시 기무사 참모장, 기우진 당시 기무사 3처장 등 계엄령 문건 작성에 연루된 중간 책임자들은 현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고 10월 22일에는 변론 종결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의 혐의가 탄핵 이후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작전 계획으로 둔갑시킨 것과 관련한 것이긴 하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실체를 밝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시 민·군 합동수사단은 문건 작성에 관여한 실무자들에 대한 수사까지 모두 마쳤다. 조현천이 없어 계획의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윗선은 어디까지 인지 밝히지 못할 수는 있으나, 촛불 무력 진압 사태의 얼개는 추가 수사를 통해 충분히 밝혀낼 수 있음에도 조현천이 없다는 이유로 수사 자체를 모두 중단한 점은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위수령」 폐지는 제도를 악용하여 총구를 시민에게 돌리려 한 이들에 대한 인적청산이 있을 때 비로소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군대가 정치에 개입할 여지가 충분히 많다. 쿠데타 모의 세력은 쿠데타를 가능케 하는 법령이 있어 내란을 모의 한 것이 아니다. 쿠데타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법령을 동원했을 뿐이다. 실제 계획 수립 과정에서 국방부 법무관리관이었던 노수철이 법무 검토를 해준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 있다. 위수령을 폐지하고 계엄령을 손본다고 쿠데타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숱한 관련자들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제2, 제3의 군부 쿠데타 모의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위수령」 폐지 1주년을 기하여 21세기에도 군부 쿠데타가 모의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2019. 09. 11.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