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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끝내 ‘윤 일병 사건’의 국가 책임을 부인한 대법원을 규탄한다!
- 대법원, 항소심의 명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심리도 없이 ‘불속행 기각’ –
대법원(제3부, 재판장 대법관 노정희, 안철상, 이흥구)은 지난 2022. 9. 29. ‘2014년 육군 제28사단 故윤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상고심을 본안 심리도 하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이로써 사법부는 故윤승주 일병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종 부인하였다. 윤 일병이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 8년,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5년 만의 일이다.
유가족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기 위해 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처음 소를 제기한 것은 윤 일병 3주기 무렵인 2017년 4월이었다. 윤 일병 사건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참혹한 구타, 가혹행위로 비극을 빚어낸 가해자들을 엄히 처벌하는 일이었다. 둘째는 사인 조작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육군은 2014년 4월 7일 윤 일병 사망 직후 사인을 ‘폭행에 따른 사망’이 아닌 ‘기도폐쇄 질식사’로 공표했다. 검시도, 부검도 하기 전에 사인부터 정했다. 그로부터 4개월간 유가족은 윤 일병이 냉동만두를 먹다 목이 막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법의관은 육군의 발표에 따라 사인을 끼워 맞췄고, 군검찰은 가해자들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기소했다.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4년 7월 31일의 일이다. 수사기록을 입수한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전모를 폭로했다. 가해자들은 장시간 폭행으로 의식을 잃어가던 윤 일병을 계속 구타해 혼수상태에 빠트렸다. 명백한 살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육군은 공익제보자의 보고, 목격자의 증언, 초동수사를 통해 모든 정황을 파악해놓고도 사인을 조작했고, 살인죄도 적용하지 않았다. 병사가 대낮에 부대 내에서 선임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몰고 올 후폭풍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폭로가 없었다면 윤 일병 사건은 병영부조리에 따른 사고사 정도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사인이 바로잡혔으며, 주 가해자는 살인죄로 처벌되었으나 그 과정에서도 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유가족은 사인 조작에 연루된 이들을 모두 고발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았던 군검찰은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다. 군사법원에 재정신청도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군은 필사적으로 맞섰다. 사인 조작을 인정하는 순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을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국가배상 소송은 군에 의해 진상을 규명할 방도가 가로막힌 유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였다. 그러나 사법부 역시 진상에 관심이 없었다. 1, 2심 재판부 모두 기록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제34-3 민사부, 권혁중·이재영·김경란)는 기초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판결문을 썼다. 재판부는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병원에 후송된 시점을 사망 시점이라 명기하였으나, 윤 일병은 후송으로부터 하루가 지난 4월 7일 16:30 경에 사망했다.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다루면서 사망 과정도 파악하지 못하고 판결에 임했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다른 판단들이 사실관계에 기반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 한편, 국가배상소송 피고(육군본부) 대리인을 맡은 군법무관은 대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윤 일병이 2014. 4. 7. 오전에 사망하였고 소속 대대장 8:53에 헌병대에 이를 신고하자 즉시 헌병대가 상해치사를 적용하여 가해자 수사에 착수’했다며 사실관계를 100% 창작해냈다. 대대장은 4.7. 8:53에 공익 제보로 인지하게 된 폭행 사실을 뒤늦게 신고한 것이며, 윤 일병은 한참 뒤인 16:30에 사망했고,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것은 군검찰이 가해자들을 기소한 5.2.의 일이다. 유가족을 제외한 모두가 얼마나 불성실한 태도로 소송에 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군 관계자들은 이 사건 재판 과정에서 과거 군에서 한 진술이나 발언과 배치되는 거짓말을 상당수 늘어놓았다. 그런데 1, 2심 재판부는 관련자들의 거짓말만 인용하여 군의 조직적 사인 조작, 사건 은폐 시도를 ‘합리적인 재량에 위임된 행위’로 포장해줬다. 유가족 측은 이들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다수 제출했지만, 살펴보지도 않은 듯하다.
게다가 증인 출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요 관련자들을 부르기 귀찮아했다. 굳이 불러서 뭐하겠냐는 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증인으로 불러도 당사자가 출석을 거부하고 서면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서를 써서 보내면 그대로 인정해줬다. 민간 법원에 관련자들을 불러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보려던 유가족의 기대는 이렇게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믿었던 유가족은 2022년 7월 12일, 하급심 판결이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점, 관계자들의 거짓말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상고를 제기했다. 유가족은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여 관련자들을 모두 법정에 세워 놓고 위증죄를 고지한 채 증인신문을 진행, 사건의 진상을 밝힐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사건도 들여다보지 않고 심리불속행으로 기각을 결정했다. 온 나라를 분노하게 했던 윤 일병 사건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된 2심 판결문으로 그대로 확정되어 역사에 길이 박제될 것이다. 사인 조작 역시 단순한 실수요 해프닝 쯤으로 매듭지어질 것이다.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군에서는 여전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보단, 진실을 감추고 거짓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발생하였던 ‘공군 故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에서도 성폭력, 2차 피해로 사망한 피해자를 부부간 불화에 따른 사망으로 둔갑시키려다 실패한 정황이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까닭은 하나다. 조작에 성공하면 좋은 일이고, 설령 실패해도 거짓말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군 내부에 만연히 퍼져있기 때문이다. 불성실한 사법부가 낡은 판례에 갇혀 진실을 외면하는 한, 이러한 폐습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유가족은 사인 조작에 대해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사과받은 적이 없었다.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데 사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피해자에게는 차갑고 냉혹한 법이 유독 가해자에게만 따뜻하고 합리적이라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절규만 아프게 허공을 맴돈다.
하지만 진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이 힘껏 버텨낸 8년은 윤 일병을 기억하며 아파하고, 분노했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낸 시간이었다. 이들의 기억이 모여 반드시 진실을 올곧게 세워낼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진실 앞에 게을렀던 사법부 역시 반드시 준엄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유가족의 원통한 마음에 변함 없이 연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故윤승주 일병의 명복을 빕니다.
[ * 재판 주요 쟁점 : 2022-06-15 자 군인권센터 보도자료 ‘윤 일병 사건 사인 조작 의혹, 당시 검찰관-고등검찰부장 진술 엇갈려’ 참조 ]
[별첨] 故 윤승주 일병 어머니 발언문
2022. 10. 4.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별첨] 故 윤승주 일병 어머니 발언문
안녕하세요, 윤승주 일병의 엄마, 안미자입니다. 승주가 세상을 떠나고 지난 8년 동안 정말 많은 송사를 겪었습니다. 가해자들을 합당한 죄로 처벌받게 한 일, 승주는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던 보훈처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일, 승주의 죽음을 만두 먹다 질식한 것으로 꾸며낸 자들을 모조리 고발했던 일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수사기관과 법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윤 일병과 관계된 정보를 숨기고 내놓지 않으려는 군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했던 적도 셀 수 없이 많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녔습니다. 승주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밝힐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 쉽게 일이 풀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방해하고 막아서는 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승주를 잃은 일만으로도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 힘들었지만, 마음 놓고 슬퍼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이 있었기 때문에 힘껏 버텨왔습니다.
이제 법적인 절차가 다 끝났다고 합니다. 법원은 끝끝내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처음 민간법원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습니다. 군에서는 국방부의 제식구 감싸기로 승주의 죽음을 조작하려 했던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는데, 민간은 좀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판사라는 사람들이 기록도 보지 않고 재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들은 기록만 봐도 뻔히 알 법한 이야기들도 몰랐고, 판결문에 우리 승주가 떠난 상황 하나를 제대로 적지 못해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생떼쯤으로 취급하면서, 군에서 나온 사람들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판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법은 대체 누구의 편인지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습니다. 하급심이 저지른 실수들을 바로잡아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심리도 해보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하더군요. 군대에 간 젊은이가 맞아 죽었는데 국가가 조직적으로 그 원인을 조작하려고 했었습니다. 이게 재판 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별 것 아닌 일입니까? 대법관들이 보기엔 그렇습니까?
‘군대에서 떠나는 아이들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우리 아이가 떠나기 전까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더군요. 그건 국가가, 법이 이 아이들의 죽음을 막고, 돌보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대법원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법원으로부터 원통한 결과를 받아들었고, 이젠 법적으로 더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다고 하지만 헛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국가와 법이 저희를 외면할 때 함께 손잡아주고 싸워주었던 단체들과 시민들을 기억합니다. 이만큼 밝혀낸 것도, 그래서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8년의 시간은 참 길고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승주의 죽음을 가지고 장난치려 했던 이들도 어딘가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요. 그래도 그들도 사람이니 양심이 있을 것입니다.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지만 가책을 느끼겠지요. 느끼기 바랍니다. 일평생 승주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승주로 인해 군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걸 작은 위안으로 삼습니다. 승주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라봅니다. 긴 싸움을 내 일처럼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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