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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홍정기 일병에 눈시울 붉혔던 한동훈 장관, 국가배상법 개정 언제 할 것인가?
- 입법예고 후 무소식...... 홍 일병 유가족 국가배상청구소송 이중배상금지로 1심 패소-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31단독, 판사 윤성현)은 지난 13일, 고 홍정기 일병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을 원고 패소 판결했다. 소를 제기한 것이 2019년이니 장장 4년 만에 결론이 난 것이다.
홍정기 일병은 2015. 8. 4. 병사로 입대하여 10. 21.부터 육군 2사단 32연대 수송대에서 근무하였다가 2016. 3. 24. 골수성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유가족은 사단 의무대의 무성의한 오진, 전면전 작계시행훈련으로 인한 진료 여건 미보장, 큰 병원에 빨리 가보라는 민간 병원의 진단을 무시하고 며칠 간 부대 내에 환자를 방치했던 소속 부대의 무책임한 대처 등으로 홍 일병이 발병 한달 만에 급속히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여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홍 일병은 2016년 3월 초부터 증상을 호소하였으나 군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18일이 지난 3. 24.에야 뒤늦게 상급 군병원으로 외진을 가던 길에 의식을 잃고 그대로 사망하였다.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 진단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유가족은 군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인정을 요구하였으나, 군이 이에 응하지 않아 국가배상 소송에 이르게 되었다. 소송의 명목은 유가족의 위자료 청구이지만, 실제로는 국가배상을 통해 책임을 인정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에 의하면 군은 2016년 10월경 의료과실을 범한 군의관 2명에게 대해 각각 감봉 3개월과 1개월의 징계를 처분해놓고 유가족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군의관의 의료 과실 책임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에 따라 국가배상 책임도 발생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2023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확보한 징계의결서에는 홍정기 일병의 이름을 살아있는 홍 일병 형의 이름으로 잘못 표기해놓기까지 했었다.
뿐만아니라 법원은 지난 2월, 피고 대한민국이 홍 일병의 죽음에 군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하라는 취지의 화해 권고를 했으나 국방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재판부는 홍 일병의 죽음에 군의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확인했었음에도 불구하고, 판결에서 국가 책임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아예 하지 않았다. 홍 일병이 순직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보상을 받게 되어 유가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는 헌법상 이중배상금지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국가배상, 보상 중복 요구를 차단하고자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헌법에 삽입한 악법인 헌법 제29조에 인해 군인은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해 보상 외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법원은 피해를 입은 군인 당사자 뿐 아니라 유가족의 위자료 청구권도 이중배상금지 대상에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존치되고 있는 것은 맞으나 법원의 판단은 비겁하다. 국가 책임 소재를 판단조차 하지 않았고, 유가족 위자료 청구권도 과거 판례에 매여 진일보한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법리만을 살펴 군에 면피용 판결을 쥐어준 재판부에 유감을 표한다.
한편, 재판부는 판결을 하면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 5월 24일 홍 일병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국가배상법」을 개정하여 유가족 위자료 청구권을 이중배상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던 상황을 언급하며 아직 법이 개정되지 않아 이를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 한동훈 장관은 5월 24일 기자회견 이후 다음 날인 25일에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7월 4일에 종료했다. 한 장관은 6월 5일 순직교도관 충혼탑 제막식 추도사에서도 홍 일병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법무부는 유튜브 쇼츠로 이 장면을 홍보하며 국가배상법 개정의 의지를 밝혔으며 한 장관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입법예고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배상법 개정안은 국회에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법제처 심사는 진행되었는지, 관계 부처 간 협의는 어찌 되고 있는지, 법안이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 상정되기는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야심차게 입법을 준비한 듯 발표하더니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1심 판결이 났고, 홍 일병 유가족은 패소했다. 사람들은 법이 개정된 줄 알고 있고 한 장관은 대중의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홍 일병과 그 가족의 억울함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홍 일병 유가족은 지난 10월 4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로부터 순직 재심사 결과 순직 유형이 3형에서 2형으로 변경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임무 수행을 직접적 원인으로 하여 질병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는 종전의 입장을 바꿔 임무 수행과 질병 악화의 연관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결과다. 그러나 순직 유형 하나를 변경하는데 걸린 시간이 장장 8년이다. 긴 시간을 기다려 순직 유형을 하나 바꿨더니, 이제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 받기 위해 법이 바뀌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이 나라는 대체 언제까지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기약없는 기다림을 강요할 것인가?
한동훈 장관과 법무부는 생색만 내지 말고 조속히 입법 절차를 마무리하여 홍 일병 유가족을 포함해 마땅히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받아야 함에도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묶여 배상 청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숱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결하라.
2023. 10. 19.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홍정기 일병 유가족 입장문
안녕하세요, 홍정기 일병 엄마 박미숙입니다.
지난 5월24일 대한민국 법무부 브리핑에서 한동훈 장관님이 하신 말씀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유튜브 법무부티비에서 저희 유가족에게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으로서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셨던 말씀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이중배상원칙의 불합리를 합리적인 법으로 바꾸어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과 경찰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배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말, 우리 정기가 생전에 ‘군 복무란 대한민국같이 좋은나라에 태어난 운을 보답하는 것’이라 글 썼던 것을 발췌해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모습, 그래서 좋은나라 대한민국에 걸맞는 제도를 만들 고치겠다고 남겼던 약속도 기억합니다.
국방부장관에게 듣고싶던 사과를 법무부 장관이 해주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여러 번 강조하고, 또 법무부에서도 홍보도 많이 하길래 법 개정에 진심인가 보다, 열의가 있나보다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저희는 국가배상소송 1심 재판에서 이중배상금지와 상관없이 국가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법이 바뀌면 훨씬 수월할테니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내 아들의 일로 불합리한 법이 합리적으로 바뀌게 된다면 그것 또한 위로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자꾸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법안이 발의되질 않았습니다. 법안 낸다고 한 것이 5개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지가 벌써 3개월이 지났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1심 선고가 잡히더군요. 결국 이대로 바뀌지 않은 법으로, 이중배상금지라는 악법을 적용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참담합니다.
국민 앞에 서서 약속한 것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무얼 믿고 국민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까? 매번 기대하게 하고, 또 실망하게 하는 것이 국가가 자식을 군에 보냈다가 잃은 부모들을 대하는 반복되는 태도입니다. 대체 왜 이러는 것입니까?
한동훈 장관님. 홍정기 일병 엄마입니다. 다시 한번 강하게 요청드립니다. 직접 말씀하셨던 그 약속, 빨리 지켜주십시오. 국민들 앞에서 이중배상금지 조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우리 정기 이야기에 목메어 하시던 모습이 꾸며진 것이 아니라 진심임을 보여주십시오. 법은 강자에게는 준엄하고 약자에게는 따뜻한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법과 재판을 통하여 얻고 싶은 것은 배상금 얼마가 아닙니다. 우리 정기의 죽음이 국가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라는 것, 그리하여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단지 그 뿐입니다.
정기가 떠나고 8년, 소송을 시작한 이래로 벌써 4년. 이제 이 싸움을 끝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홍정기와, 홍정기를 닮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끝내주십시오. 간곡히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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