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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성폭력 피해자에게 자력구제 강요하는 군사법원을 해체하라

작성일: 2018-11-21조회: 129

성폭력 피해자에게 자력구제 강요하는 군사법원을 해체하라

-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군사법원 무죄 판결 규탄 성명 -

2018년 11월 8일과 19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사상 초유의 성폭력 사건 강간 가해자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였다. 성범죄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외면해 온 군사법원의 오랜 적폐가 되살아 난 것이다.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이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지난 2018년 3월에 있었던 여군의 첫 미투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해군 소속의 여군 장교를 1 · 2차 직속상관이 잇달아 강간한 것이다. 해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1심에서 두 가해자 모두에게 강간치상죄를 적용하여 1차 가해자인 부서장 박○○ 소령에게 징역 10년, 2차 직속상관인 함장 김○○대령에게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8일에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대령에게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데 이어, 19일 박○○ 소령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의 1차 가해자인 박○○ 소령은 당시 부서에 전입 온 피해자가 성소수자인 것을 인지하고도 ‘네가 남자랑 관계를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라며 교정강간을 벌였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임신과 임신중절수술까지 겪었다. 피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2차 상급자인 지휘관 김○○ 대령에게 피해 및 수술 사실을 보고했는데 함장은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강간하였다. 실로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애인, 피해자의 가족들은 군사법원의 어처구니없는 무죄 판결에 불복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건의 내용과 항소심 판결 요지를 공개하였고, 이를 본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11월 20일 자로 청원에 서명한 시민은 16만 명에 이르고 있다.

고등군사법원(재판장 고등군사법원장 준장 홍창식)은 두 재판 모두 시종일관 사건 발생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였다. 피해자의 진술 중 지엽적인 부분이 다른 이의 진술과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이를 물고 늘어졌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강간 행위에 ‘왜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는지’ 의심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사건 당시 피해자가 업무상 위력 관계로 인해 심리적 억압상태에 놓여있어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이 점이 강간·강제추행 요건인 항거 불가능한 수준의 폭행·협박에는 해당될 수 없다며 1심 판결을 모조리 뒤집어 버리고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무죄 판결로 인해 가해자들은 복직도 가능해진 상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군복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처럼 법이 성폭력 피해자를 외면한다면 성폭력 피해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자력구제뿐이다.

가해자의 변호인과 고등군사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갖가지 저열한 수를 동원하기도 하였다. 피해자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정에서 증언하는 가운데 당시 상황을 시연해보라는 몰상식하며 반인권적인 요구까지 받았다. 피해자는 당시 지휘관의 숙소 가구배치의 묘사 뿐 아니라 가해자가 어떻게 옷을 벗겼는지 까지 증언하는 수모를 겪었다. 가해자의 가족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관사 구조 상 이상한 행위를 할 수 없는 구조다.”, “피해자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떠벌리고 다니며 2차 가해를 저질렀는데, 재판부가 이에 가세한 셈이다.

군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사법원 형사공판 성범죄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성범죄로 보통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군인은 총 1,279명인데, 이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건은 148건에 불과하며, 해임 · 파면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 벌금형이 347건, 무죄와 공소기각은 83건에 달하였다. 군인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고, 「군형법」 상 성범죄 처벌 조항인 제92조부터 제92조의8에 해당하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이에 준하는 행동 등은 유기징역으로 처벌하게 되어있다. 군인의 성범죄를 더욱 엄히 처벌하고자 하는 취지다. 그러나 군사법원은 군인 성범죄자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하기 위해 「군형법」이 아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무더기로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고등군사법원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항소심에 올라간 527건 중 1/3인 154건이 감형을 받았다. 이처럼 군사법원이 성범죄자들을 엄호하는 상황에서 국방부가 성폭력 TF를 구성하고 지나간 사건을 재조사 해본 들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군사법원의 전관예우 행태도 문제다. 가해자 측은 고등군사법원의 군판사와 해군본부 법무과장을 지냈던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였다. 가해자 측 변호사는 선 · 후배 군판사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근무연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영관급 예비역이다. 고위 군 법무관 출신 예비역 변호인에 대한 전관예우로 의뢰인인 성범죄자에게 감형을 해주는 못된 관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온 군사법원의 악습이다. 이를 이용한 예비역 군 법무관 출신들로 구성되어있는 군 성범죄 전문 로펌까지 나타났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법률대리인으로 갓 임관한 국선변호인을 선임하는 상황에서 재판은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등군사법원의 판결은 군대 내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특히 고위장교 · 장성들의 군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이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가 지난 3월부터 달마다 외쳤던 ‘성범죄 척결을 위한 노력’은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엄벌을 내려야 할 군사법원이 본분을 망각하고 앞장서 성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피해자가 군을 신뢰하고 성범죄 피해를 신고할 수 있겠는가.

군사법원은 이번에도 성범죄자의 방패가 되어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고 가해자를 엄호하였다. 가해자는 자유의 몸이 되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재판장을 나섰고 같은 시간 피해자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았다. 뿌리까지 썩어 고장나버린 군사법원이 존치되는 한 제 2, 3의 피해자가 속출하게 될 것이다. 2013년, 남군 상관의 성추행으로 피해자 여군이 자살한 사건에서 군사법원은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가 군인권센터가 나서 지원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게되자 2심에 이르러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번 기회에 평시 군사법원을 반드시 폐지시키고 성범죄를 포함한 일반 형사사건 재판을 민간법원에서 진행하게끔 해야 한다.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문재인 정부가 만든 개헌안에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유체이탈 판결로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 군사법원을 즉시 폐지하라. 

군인권센터는 그간 피해자의 신뢰관계인으로 사건을 지원해왔고,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가해자 박○○ 소령의 판결문이 확보되는 대로 이를 토대로 피해자 법률 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각 시민사회단체에 공동대응을 위한 연대체 구성도 제안할 계획이다.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군인권센터는 군내 성폭력 피해자가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성폭력 피해 군인이 군으로부터 독립적인 전문 상담기관에서 안심하고 상담한 뒤 사건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군성폭력상담소(가칭)’ 설립을 추진하고자 추진단을 구성하였다. 군인권센터는 2013년부터 상담소 설립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자금 문제로 인해 개소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 판단,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이번에는 반드시 상담소를 개소하고자 프로젝트 모금에 돌입하였다. 군성폭력상담소가 군내 성폭력 피해자의 버팀목이 될 수 있게끔 각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 군성폭력상담소(가칭) 설립 프로젝트 모금 URL : https://www.socialfunch.org/msvhs

2018. 11. 21.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