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군사법원, 동성애자 색출 불법수사에 날개를 달아주다
-동성애자 군인 A대위 유죄 판결에 부쳐-
2017년 5월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재판장 이재호 대령, 주심군판사 정의성 중령, 군판사 백경훈 소령)은 군형법 92조 6 추행죄 위반을 사유로 동성애자 A대위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차별과 혐오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법 정의를 질식시킨 것이다.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판결의 근거가 되는 추행죄는 피해자는 없고 가해자만 존재하는 이상한 법률이며, A대위의 범죄 행위는 업무 상 관계없는 상대와 사적 공간에서 합의 하에 가진 성관계였다. 상대가 동성이란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범죄의 낙인을 찍은 것이다. 10년 넘게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을 역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군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 하에 A대위를 위시한 동성애자 군인들의 성관계 사실을 캐내기 위해 온갖 불법을 자행해왔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함정수사까지 벌이며 성소수자들을 색출한 뒤 동성 간 성관계 사실을 자백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들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자 피해자들이 음란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허위사실까지 퍼뜨리며 색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시키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군사법원은 A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불법수사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다. 애초의 수사가 위법함에도 압수수색, 체포, 구속영장까지 발부해주며 이 사태를 방조해온 군사법원은 오늘의 판결로 마지막 남은 체면까지 걷어차버렸다. 40,605명의 시민들이 무죄 석방을 호소하였음에도 법관으로서의 영혼을 팔아버린 군판사들의 면면은 한국 사법 역사의 오점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군사법체계 민간이양의 당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사법정의를 옹호해야 할 법원이 도리어 육군참모총장에게 아부하며 불법의 편에 서 인권을 말살시킨 오늘의 판결은 국민적 공분 속에 폐지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색출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도 계속하여 예고되고 있어 현실은 매우 참담하다. 이처럼 이제 성소수자들에게 군대는 안전하지 못하다. 아웃팅 위험에 상시 노출되있던 성소수자들은 이제 아무때나 색출 당해 본인의 사생활을 추궁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떠안게 되었다. 병역 의무 이행 자체가 전과로 이어질 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하지 못한 군대는 이성애자들에게도 안전할 수 없다.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고 삶을 지울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군인권센터는 피해자 지원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위헌적 동성애 처벌법인 군형법 92조 6 폐지와 그릇된 권력에 사법권을 허락하고 있는 군사법체계의 조속한 민간 이양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현재 재판을 앞둔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법률지원을 통해 법정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은 어느 지역출신이든, 누구를 사랑하든, 어떤 종교를 믿든 존중받아야 하며, 국가는 그 존엄성에 등급을 매겨서는 안된다.
2017. 5. 24.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