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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채 상병 사망의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생존 장병에 대한 2차 가해를 중단하라”
- UN 고문방지위원회 제6차 정기심의 권고에 부쳐 -
지난 7월 10일과 11일 스위스 유엔제네바본부(UNOG-United Nations Office at Geneva)에 모인 UN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는 우리나라에서 계속되는 군 사망사고 책임 축소 및 피해회복 방해 시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유엔의 경고를 경청하여 이제라도 채 상병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조치에 협조하고, 군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군대 내 모든 차별을 종식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깊이 있게 검토한 UN 고문방지위원회는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을 해석하고, 고문 사건을 조사하거나, 각 국가의 고문 방지, 처벌, 피해구제 실태를 검토하고, 권고를 의결할 수 있는 조약기구입니다. 해당 조약은 국회 비준에 따라 1995. 2. 8.부로 우리나라에서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습니다.
UN 고문방지위원회는 2차례 정부 대표단(법무부, 국방부, 경찰청 등)과의 질의응답을 거쳐 7월 19일 우리나라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했는데, 군인권보호관이 설치된 사실과 각종 정부 조치를 확인하면서도, 군내 폭력과 사망이 이어지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군 관련 권고를 포함한 위원회의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 문안이 7월 26일 UN 공식 누리집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2017년 채택된 3-5차 통합 최종견해 이후 7년 만에 나온 종합 권고입니다.
우선, 위원회는 군내 고문 및 모든 사망 사건을 제도적 또는 위계적으로 유관 혐의자와 철저하게 분리된 독립적 체제에서 조사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를 둘러싼 외압에 있어서 UN 인권기구가 우리 정부를 향해 던진 강력한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국무위원들과 국회의원들의 합작으로 채 상병 사망사건 및 수사외압 특검법이 폐기되었는데, UN은 가해자 등으로 지목되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독립된 기구가 군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인권이라고 명확하게 언명한 것입니다.
위원회는 1차 가해자만이 아니라 지휘계통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을 규명하여 법의 심판을 받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이미 중차대한 책임 문제를 따지는 전쟁법(국제인도법)에서도 지휘책임에 관하여 확립된 법리를 갖고 있고, 국제인권 기준에 비춰 보더라도 군인의 피할 수 있는 죽음이 인권침해임은 누차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번 UN 권고 역시 지휘계통상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UN 고문방지위원회는 군인과 법집행공무원(검사•판사•군인•경찰•교도관 등)이 고문 및 가혹행위를 식별하고 기록, 조사하여 책임자 처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이스탄불 규약>에 따라 의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시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군인의 생명권 침해라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엄정하게 조사하고 국제적으로 확립된 법리에 따라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를 구현하기 위한 질적 준비 또한 주문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군내 자살 및 성폭력, 구타, 가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군 생활의 높은 압박감 등 근본원인을 해결하고, 관련 사건을 유형화하여 기록하고 연구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 군은 군인의 자살에 관한 정보를 총계 수준에서 공개하고 있으며, 성별, 연령, 계급, 보직, 사유/배경, 수단 등에 대하여는 관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보건복지부가 2021년 <2013-2017 전국 자살사망 분석 보고서>를 발간한 것에 비하여도, 미국(Annual Report on Suicide in the Military), 캐나다(Report on Suicide Mortality in the Canadian Armed Forces), 호주(AIHW Report on Defence and Veteran Suicide), 독일 의회 국방감독관(우리나라 군인권보관제도에는 없는 불시부대방문권을 갖고 있는 등 군대를 감시하는 권한이 강함) 연례보고서와 비교하더라도 너무 제한적인 정보입니다.
위원회는 2022년 4월 대법원 판례변경 및 2023년 10월 헌재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성인 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6(추행)을 폐지할 것을 재차 권고하였습니다. 지난 2021년 미 국방부 군성폭력 독립조사위원회는 기존 연구 등을 종합해 성차별 등이 만연한 군대에서는 성폭력 발생 위험이 더 높고, 타인종이나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태도나 신념에 대처하는 것이 군내 반(성)폭력 조직문화 달성에 있어서 중요함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 군도 이제 유엔 국제인권법 기준과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사생활의 비밀,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데 앞서 나감으로써 평등한 군을 만들고 더 안전한 군대로 거듭나야 합니다. 현행 군형법 상으로도 동성 간 성폭력은 강제추행죄 등으로 처벌 가능하기 때문에 합의 하 성관계를 처벌하는 조문을 별도로 마련해두고 있는 것은 분명 차별적입니다.
UN과 국제사회가 우려할 만큼, 우리 군은 2022년 11월 육군 12사단 GOP에서도, 2023년 7월 해병 1사단 수해복구 현장 경북 예천에서도, 2024년 6월 육군 51사단과 육군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도, 끊임없이 지휘책임을 축소하거나 죽음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려 하며 고인의 명예를 더럽히고, 생존 전우들과 유가족들에게 생채기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2차, 3차 인권침해를 단절시켜야 할 국제법상, 헌법상, 상식상의 의무를 지고 있는 정부와 집권여당 및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진상규명은 커녕 신속하고 공평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원하는 유가족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하거나 심지어 방해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이번 심의를 마치면서 이상 권고 중에서 군내 고문, 가혹행위, 자살 사건 및 사망 사건에 대한 권고의 이행상황을 2025년 7월 26일까지 보고해 줄 것 또한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시민들의 노력으로, 채 상병 2주기 전에는 이 모든 무도함이 바로잡히고, 유엔과 국제사회에도 당당한 군인권 선도국가로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우리의 조치를 보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군인권센터 또한 흔들림 없이 군 인권침해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붙임. 고문방지위원회 제6차 최종견해 군인권 권고 발췌번역
2024. 7. 29.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