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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선착순 이런 건 시키지 않았습니다”, 유가족까지 속인 중대장
- 사건 발생 상황 축소 전파 의혹 신빙성 높아져… 의료 후송 판단에도 혼선 빚었을 것 -
군인권센터는 육군 12사단 박 훈련병 얼차려 가혹행위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사건 초기 가해자 중대장이 유가족에게 사고 발생 상황을 거짓으로 축소하여 설명한 녹취 파일을 입수하여 이를 공개한다. 센터는 이미 지난 6월 12일, 망인의 의료기록 일부를 공개하며 사건 초기 중대장이 사고 상황을 축소 전파하여 의료 혼선을 빚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오늘 공개하는 녹취로 인하여 이러한 가능성은 더욱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
박 훈련병이 쓰러지고 다음 날인 5월 24일 오전 9시 51분 경에 강릉아산병원 인근 카페에서 중대장과 유가족 간에 이뤄진 대화를 유가족이 녹취한 바에 따르면 중대장은 이 때 자신이 지시한 얼차려에 대해 유가족에게 거짓말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시기는 아직 박 훈련병이 사망하기 전이다.
연병장을 몇 바퀴 돌게 했냐는 유가족의 질문에 중대장은 “제가 지시한 거는 세 바퀴였습니다.”라며 “두 바퀴를 돌다가 세 바퀴 돌 때쯤, 그러니까 한 바퀴, 두 바퀴 뛰고 세 바퀴를 한 50M 정도 갔을 때 쯤 쓰러졌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때 유가족들은 예전에 어디선가 군대에서 ‘선착순 뛰기’ 같은 걸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무심코 “그러면 빠른 속도로 선착순처럼 이런 식으로 돌렸나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러자 중대장은 “아닙니다”라며, “쓰러질 당시에 선착순 이런 걸 시키지 않았고 딱 세 바퀴만 열을 맞춰서, 제대로 맞춰서 같이 뛰어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속도 같은 거 통제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어진 대화에서도 중대장은 세 바퀴를 뛰고 들어오는 것만 지시했다고 반복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중대장은 박 훈련병에게 선착순 뛰기는 물론, 완전군장 하 팔굽혀펴기 등 가혹한 얼차려를 지시한 당사자다.
5월 24일의 거짓말은 사건 발생 이후 중대장이 사고 상황을 어떤 식으로 진술하고 다녔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적어도 중대장은 5월 24일 유가족에게 상황 설명을 한 시점까지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숨기고 “연병장을 3바퀴 뛰게 하였는데 2바퀴를 뛰고 난 후 박 훈련병이 쓰러졌다”고 축소 진술했을 것이다. 유가족 앞에서까지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아 사고 발생 직후 소대장이나 군의관에게 가해 사실을 소상히 얘기했을 가능성은 낮다.
실제 5월 23일 사고 발생 직후인 17시 54분에 사고 현장에 없었던 소대장이 중대장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 후송 사실을 최초로 알린 통화 녹취에 따르면, 이러한 정황은 더욱 신빙성을 갖는다. 소대장은 “(연병장) 세 바퀴 도는 도중에 좀 몸이 신체적으로 힘들었는지 그런 반응이 와서 지금 후송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소대장은 사고 당시 상황을 중대장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소대장 역시 중대장으로부터 ‘세 바퀴 뛰던 중 쓰러졌다“는 축소된 사실만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중대장의 거짓말은 군의관에게도 똑같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군의관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환자 상황을 보고하여 후송 지침을 하달 받았을 것이고, 이어 속초의료원 의사, 강릉아산병원 의사에게도 왜곡된 정보에 근거하여 환자 발생 상황을 알려줬을 것이다. 실제 두 민간병원의 의무기록 상에도 사고 당시 상황은 ‘연병장을 뛰다가 쓰러짐’ 정도로만 적혀있다. 중대장의 거짓말로 인해 연병장 세 바퀴를 돌다가 중간에 쓰러졌다는 왜곡된 사실만 의료 체계를 따라 전달됨으로써 의료인들이 과도한 신체활동으로 열사병이 발생했을 것이라 짐작하기 보다는, 날씨가 더워서 쓰러졌다고 오인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이는 의료인들의 판단에 혼선을 주기에 충분하고, 헬기를 띄우지 않는 등 후송이 안이하게 이루어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 수사를 맡았던 강원경찰청은 6월 12일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틀 뒤 기자들에게 ‘속초의료원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건 중대장이 아닌 군의관’이라 동문서답을 하며 중대장의 거짓말로 인해 사건 초기 의료 판단에 혼선에 생겼다는 의혹을 일축해버렸다. 군의관이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고 속초의료원 의사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한 것인지는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중대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이처럼 중대장은 유가족을 기만하면서까지 자기 죄를 숨기려고 했을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의료인들의 판단에 혼선을 빚고 초기 환자 후송에 악영향을 주는 등 박 훈련병의 사망에 여러 영향 요인을 끼친 바 있다. 반드시 중형으로 벌해야 할 것이다.
[별첨1] 중대장-유가족 간 녹음파일
[별첨2] 소대장-유가족 간 녹음파일
2024. 7. 24.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