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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해병1사단 지휘부, ‘무리한 수중 수색 지시’ 확인
- 해병대 故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브리핑 기자회견문 -
군인권센터는 경북 예천군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1사단 故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의 발생 과정과 경위, 사건 발생 이후의 후속 조치 등에 대한 제보, 진술을 확보하여 공개합니다.
이 사건은 구명조끼도 없이 수중 수색에 투입된 해병대원이 임무 수행 중 안타깝게 순직한 참사로,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건의 경위와 문제점이 규명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가족 역시 영결식 이후 입장문을 통해 ‘철저한 원인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같이 비통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일로부터 20일이 지난 현재까지 정부, 국방부, 해병대 등 책임 있는 국가기관 어디에서도 사고 원인은 물론, 경위조차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월 31일에는 예정된 수사 결과 발표가 취소되었고, 국회 국방위원회 보고도 연기되었습니다. 8월 2일에는 해병대 수사단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하였던 변사사건 수사기록 일체를 회수하였고, 같은 날 수사를 지휘하였던 해병대 수사단장이 불분명한 이유로 보직해임 되었으며, 국방부검찰단은 수사단장을 항명죄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7월 28일 해병대 수사단으로부터 수사 결과를 브리핑 받았던 유가족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뒤 8월 4일 “진상규명이 제대로 될런지, 사고원인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고한 재발방지 대책이 수립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심정”이라고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연일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고, 수사 과정도 석연치 않은 상황에서 군인권센터는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실체적 진실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확보한 제보를 종합하여 사건 발생 과정, 경위, 후속 조치 전반을 브리핑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브리핑 내용은 故채수근 상병 소속 대대 장병들의 제보, 진술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며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왔던 대민지원 임무 수행을 위해 운영된 채 상병 소속 중대 카카오톡 대화방 전체 내용도 확보, 참고하여 작성된 내용입니다.
확인 결과 이 사건은 물 속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부대를 수중 수색에 투입하여 발생한 예정된 참사가 명백합니다. 그리고 무리한 수중 수색은 사단장(소장 임성근, 해사45기) 등 해병대 1사단 지휘부의 지시에 의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7월 18일 첫 임무 투입 당시 사고가 발생한 포7대대는 수중 수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습지를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비가 와서 일렬로 서서 도로 변에서 하천을 보며 걸어가는 수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무를 끝내고 철수할 때 전파된 사단장 지시사항에는 물에 들어가라는 말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단장은 일렬로 임무 수행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하라며 포병부대가 비효율적이라고 질책하였고, 곧 이어 전해진 사단 전파사항은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시를 받은 현장 간부들은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행하자니 위험해 보이니 고충도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무리한 수중 수색 지시는 명백히 해병 1사단 지휘부에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입니다.
게다가 사단에서는 수중 수색 지시와 동시에 다음 날 국방부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이 현장 방문을 할 것이라는 전파만 3번을 반복해서 내렸습니다. 이처럼 상관과 언론에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수색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카톡방 내용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사고 당일의 끔찍한 참상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색 도중 물 밑의 모래 바닥이 쓸려 내려가면서 채 상병을 포함한 8명이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그 중 채 상병 인근에 있던 2명의 병사는 50m나 떠내려가다가 간신히 구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채 상병은 헤엄을 치다가 빠른 물살 속에서 떠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떠내려갔습니다. 상황을 가정할 수 없지만 구명조끼라도 입고 있었다면 물에 뜨지 못한 채 1분도 되지 않아 모습을 감추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단장, 사단 지휘부가 안전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이 무리한 지시를 한 경위가 무엇인지 국방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황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 해 놓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막고, 적법절차에 따라 민간에 이첩한 사건 기록을 도로 회수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모종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건을 책임지겠다고 했다가 사퇴는 아니라는 등 국민을 말장난으로 우롱하며 자기 책임 가리기에 전전긍긍인 해병 1사단장 임성근 소장부터 보직 해임해야 합니다. 책임 있는 사람이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데 1사단 장병 중 누가 용기내 사실을 진술 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을 목격하고,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정부도, 국방부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관련 보도자료
2023. 08. 08.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해병대 故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브리핑 자료
<군인권센터, 2023. 08. 08>
이 브리핑 자료는 2023. 7. 20. 순직한 해병대 제1사단 故채수근 상병 소속 부대 장병들의 복수의 제보와, 대민지원 간 운용한 소속 부대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을 바탕으로 확인된 사실을 정리한 내용임.
1. 대민지원 투입 및 사고 이전 임무 수행 과정
(1) 작전 지역 이동 (2023. 7. 17. 월요일)
- 점심 경 대민지원을 나간다는 통보가 부대 내에 이루어졌고, 장병들은 14:00~15:00 어간 짐을 싸기 시작하였음. 대민지원 기간, 방식, 취침 방식 등 구체적 내용이 전파되지 않았고 간부들도 상황을 잘 모르는 듯 하여 텐트, 모포, 포단, 베개, 전투복, 체육복, 기타 생필품을 모두 챙겼음. 출발 전 복장은 체육복 상의, 전투복 하의, 정찰모, 군화였음. 임무 수행은 최소 1주일, 12일, 15일, 한 달 등 이야기가 무성하였음.
- 15:00 경 포병7대대(채수근 상병 소속 대대) 정비고 앞에 여단 인원을 집합시켜 여단장, 대대장 교육을 실시하였음. 교육 내용은 주로 격려였고, 15:30~16:00 사이에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였음. 병력 수송은 외부에서 대절한 관광버스 10여 대를 사용하였음.
- 19:00 경 숙소인 경북 문경 소재 STX리조트에 도착하였음. 리조트에서 생활하고, 새벽에 나가서 대민지원을 하고 복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었음. 도착 후에는 방 배정, 세탁 안내를 받았음. 식사의 경우 조식은 상황에 따라 리조트 급식, 또는 각자 숙소에서 전투식량을 취식하고, 중식은 임무 수행 장소에서 예천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하여 도시락, 소보로빵, 물 500ml를 지급 받아 노상에서 취식, 석식은 리조트 급식으로 진행하였음.
* 물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파악됨. 조식으로 먹을 전투식량을 전 날 밤에 배급하는데, 이 때 500ml 생수도 같이 배급하였다고 함. 장병들은 생수를 다 마시면 생수통에 정수기로 물을 채워서 들고 나가 오전 과업 시 사용하고, 다시 중식 때 물 500ml를 배급 받아 오후 과업 시 사용하였다고 함. 여분의 물은 없었고, 물이 모자란 인원은 다른 인원들과 나눠 마셨다고 함. 보급이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기본적인 생수 지원도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임.
- 22:42에 중대 카카오톡 채팅방에 아래와 같은 해병1사단장(소장 임성근, 해사 45기) 지시사항이 전파되었음.
(2) 작전 투입 1일차 (2023. 7. 18. 화요일)
<2023. 7. 18. 해병대 7여단 일일작전활동 계획>
- 05:00 기상, 리조트 방에서 전투식량 취식 후 05:45 지하 1층 주차장에 집결. 05:15에 중대원들에게 처음으로 석관천 일대 수변 실종자 수색정찰이 임무라는 사실이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전파되었음.
- 대민지원 투입 시 부대에서 챙겨온 장비는 삽(긴삽), 갈퀴, 무릎 아래까지 오는 파란색 고무장화가 전부였고 구명조끼는 없었음. 장병들은 실종자 수색이 아닌 수해복구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함. 갈퀴는 몇 개 없었고 대부분 삽을 배분 받았음.
- 전날 올 때와 다르게 대절버스가 아닌 군용 수송 트럭을 타고 이동하였음. (9.5T, 표준5T, 상용5T 등) 수송용 트럭은 위에 검정 천으로 위, 옆, 뒷면을 모두 덮어 가리게 되어있어서 내부가 몹시 더움. 버스가 아닌 불편한 군용 트럭으로 이동하는 것은 군인이 이동하는 것이 눈에 띄게 하기 위한 거라는 말을 전해 듣고 이야기 한 사람도 있었음.
- 06:30 숙소 출발하여 08:00 수색 현장에 도착하여 바로 임무에 투입되었음.
- 이동 중 사단장이 떠들거나 웃는 모습 외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스카프로 얼굴을 두르고 작업하라는 지시를 전파하였음. 덥고 습한 날씨에 외부 시선을 의식한다고 장병들에게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작업을 하라는 이상한 지시를 내린 것임.
- 이 날 작업은 습지대에서 이루어졌음. 간부 1~2명을 포함하여 6~7명을 1개 조로 편성하여 진흙밭, 풀숲에서 수색을 진행하였음. 갈퀴로 풀을 뜯어내고, 뭉쳐있거나 의심되는 곳은 찔러보거나 걷어냈으며 삽으로 찔러보며 걸어다녔음.
- 08:40 경 10분 간 휴식하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음. 습지에 들어가 수색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 이에 장병들은 1m 이상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서서 하천 주변 도로를 걸어 가며 물에 떠다니는 물체를 식별하는 수색을 진행하였음. 의심되는 것이 발견되면 중대장, 또는 인근 간부에게 보고하고, 주변에 간부가 없으면 휴대폰으로 보고하게 하였음. 2시간 가량 진행하였음.
- 11:00 차량을 타고 예천종합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운동장 밖에서 13:00까지 중식을 먹고 휴식하였음.
- 13:00에 예천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13:30에 수색 현장에 도착하였음. 비가 많이 와서 오전과 마찬가지로 도로변을 걸었음. 주로 갓길로 걸었고, 선두와 말미에 간부가 서서 지나가는 차량을 안전 통제하였음. 15:30~16:00 사이에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하여 군용 트럭을 불러 차내에서 대기를 하다가 16:30에 철수하여 리조트로 이동하였음.
- 철수 도중 사단장의 질책이 담긴 지시사항이 전파되었음. 사단장은 해병대가 눈에 확 띄는 옷차림을 하라고 했고, 경례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였으며, 포병은 일렬로 서서 작업하지 말고 4인 1조로 찔러가며 바둑판식 수색 정찰을 하라고 질책하였음. 당일 일렬로 작업한 것은 비가 와서 습지대, 물가에서 작업을 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비효율적이라 질책한 것임. 현장의 상황과 괴리되었을 뿐 아니라 장병 안전에 관심이 없고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음.
- 아울러 철수 도중 대민지원이 한달 작전으로 시행되고, 다음 날인 7월 19일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장관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점이 전파되었으며, 대민지원이 아닌 호우피해복구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는 지시도 하달되었음.
- 숙소 도착 이후 18:11에 19일 8시에 사단장이 보병 1개 부대, 포병 1개 부대를 현장 작전 지도한다는 전파가 이루어졌고, 실종자 발견 인원에게 14일 휴가를 준다는 내용, 바둑판식으로 무릎아래까지 물 속에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하라는 지시, 장관과 사령관이 온다는 내용도 또 전파되었음.
- 물속에 들어가서 탐색하라는 지시와 사단장, 사령관, 장관이 방문할 예정으로 기본자세를 철저히 유지하라는 지시는 이 날 저녁 점호 시간에도 또 전파되었음.
- 이어서 전파된 대대장 강조사항은 주로 안전과 관련된 염려와 내용이었음. 특히 사단 지시에 따라 물 속에 들어가게 된 상황을 고려한듯 안전을 최우선하라며 허리 아래쪽까지만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도 포함되어 있었음. 4인 1조로 다니고 일렬로 다니지 말되 물 속에는 들어가라는 내용 등 대대장 지시 사항에 사단장 질책 사항이 모두 반영된 것으로 보아 해당 대대에서 전 날과 달리 물 속에 대원들을 투입 시킨 것은 명백히 사단 지시에 의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함.
- 이어서 중대장은 카톡방에 21:50 ‘내일 7대대 총원 허리까지 강물 들어갑니다.’, 21::54 ‘휴대폰 침수 조십합시다.’라며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였음. 이전까지는 물에 들어갈 계획이 없었다가 사단 지시로 사고일인 19일부터 물에 들어가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임.
- 21:54에 중대장이 다음 날 복장 지침이 담긴 사진 파일을 카톡방에 남겼음. 복장은 체육복 상의, 전투복 하의 위에 우의나 판초우의를 걸치고 장화를 신는 것이었음. 물에 들어가는데 우의와 장화를 신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맥락 상 우의를 입히는 것은 18일처럼 비가 와도 철수하거나 도로변을 일렬로 걷지 말고 천변, 수중에서 수색 작업을 하라는 뜻이고, 장화를 신기는 것은 물 속에 들어갈 준비를 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구명조끼 등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음.
- 그러자 21:57에 간부 1명이 ‘안전 재난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라며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가 없습니다. 참고하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카톡방에 남겼음.
- 이에 중대장도 21:58, ‘1사단 회의 간 분위기 전체가 그런거였는데 건의 하겠습니다.’, 22:05 ‘저도 우려되는게 많아서 이야기하고 오겠습니다..’ 22:16 ‘물가에 가게 될 경우 전투화로 변경 요청한 상황입니다. (지침 대기중) 여유분 문제도 있음’이라고 카톡을 남겼음. 상부에 장화를 신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건의한 것임.
- 그러나 19일 05:32에 카톡방에 전파된 최종 복장은 ‘장화, 우의, 공격배낭, 정찰모, 갈퀴’로 현장 간부들의 우려가 섞인 건의사항은 묵살되었음.
(3) 작전 투입 2일차 (2023. 7. 19. 수요일)
- 05:30에 기상하여 조식을 먹은 후 06:10에 집결하였고, 06:30에 출발하였음. 이 날은 군용트럭이 아닌 대절버스로 이동하였음.
- 08:00 이전에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 도착하였고, 중대장이 조편성을 진행한 뒤 안전교육을 실시하였음. 중대장 등 현장 간부들은 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염려가 많았던 것으로 보임. 물에 깊게 들어가지 말고, 가급적 물가 인근에서 수색하고, 허리 높이 이상으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강조함. 전날 허리까지 들어가라 했으나 물살을 보고 안전에 유의하여 얕게 들어가도 되니 깊게 가지 말라는 당부도 하였다고 함. 상부에서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하니 안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에서 대대장 이하 현장 간부들은 계속 안전을 강조하고 있었음. 그러나 애초에 물에 들어가면 안될 위험 상황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수중수색을 투입하게 된 상황에서 현장간부들이 보장할 수 있는 안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
2. 사고 경위
(1) 사고 상황
- 간부 포함 4~6명이 1개 조를 이뤄서 내성천 보문교 수중을 걸어다니며 갈퀴, 삽으로 물 속을 찔러보거나 긁어보면서 나뭇가지, 떠내려오는 물체 등을 수색하였음. 무릎 아래로 잠길 정도로만 걸어다니고 있었으나 장병들이 지형에 익숙하지 않고, 흙탕물이라 물 아래가 보이지 않아 걸어 다니는 도중 갑자기 목까지 물이 차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다고 함.
- 08:30~40 경 채수근 상병 소속 조와 다른 2개 조가 수색 과정에서 만나 합류, 합동으로 수색을 진행하기로 하였음. 12~13명 정도가 함께 다니며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사단장 지시대로 바둑판식으로 1m 이상 떨어져서 수색을 하라고 하였음. 이로 인해 장병들은 원래 서로 팔 뻗으면 잡힐 거리에서 작업을 하다가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고 함. 사단장 지시대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버프(스카프)도 착용하고 있었음.
- 병사들 중 선임들은 후임들에게 바닥이 모랫바닥이기 때문에 갑자기 확 꺼지거나 물살에 의해 모래가 쓸려내려 파이는 경우가 있으니 찔러보며 천천히 가라고 하였고, 선임들이 깊은 곳에서 수색을 하겠다고 하는 등 서로 조심하며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음.
- 그러던 중 맨 앞에 가던 병사 B가 발을 내딛었는데 머리까지 푹 빠졌다가 떠오름. 이에 뒤따라가던 병사 C는 갈퀴를 B쪽으로 건네며 잡고 나오게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함. (갈퀴의 길이는 100~120cm) 이 때 B 뒤에 있던 채수근 상병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인지 B쪽으로 가다가 물에 빠졌고, 이어서 C도 빠졌음. 뒤따라 오던 5명도 모두 물에 빠졌다고 함. 물에 빠진 인원은 총 8명임.
- 수변에서 누군가가 몸에 힘을 빼라고 소리를 질렀고, 채수근 상병과 B는 입영(몸을 세운 상태로 안 가라앉게 헤엄을 치는 자세)을 하며 수면 위아래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고 있었고, C는 자유형, 평영, 입영 등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함. 수변에서 누군가 배영을 하라고 소리를 쳐서 B와 C는 배영을 하였으나 채 상병은 20초 가량 물 위아래로 오르내리다가 물 속으로 사라졌다고 함.
- 그러는 사이 채 상병, B, C는 2~3분 가량 계속 떠내려가고 있었고 B, C는 50m 정도 떠내려가다 간신히 수변 근처에 이르러 B, C의 순서로 시간차이를 두고 각각 간부들이 꺼내줬음.
(뒤에 있던 5명은 땅이 그리 깊이 꺼지지 않았던 것인지 많이 떠내려가지 않고 수영을 해서 그에 앞서 빠져나왔다고 함.)
- 다른 간부, 장병들은 물론 방금 물에서 건져진 B, C 역시 바로 물살을 따라서 채 상병을 구하러 뛰어갔으나 정찰모 2개와 장화만 떠다닐 뿐이었고 채 상병은 보이지 않았다고 함.
(2) 사고 직후
- 사고 발생 직후 한 간부가 119에 신고하였고, 이어서 소방,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였으며 119구급대가 하류에서부터 위로 보트를 타고 올라오거나 드론을 띄워 수색하였고, 해병대전우회에서도 지원을 나왔다고 함.
- 채 상병을 구하러 뛰어다니다 망연자실한 장병들은 천변에 주저앉아 있거나 계속 뛰어내려 갔음.
- 여단에서 정훈장교가 나와서 언론 대응을 하는 듯 하였고, 사건 발생 이후 1~2시간이 지난 뒤 한 간부가 인원들을 집합시켰음. 장병들이 기자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풀숲으로 데려가서 버스에 태웠고, 14:00~15:00 경까지 버스 안에서 대기하였다고 함. 이후 리조트로 복귀하였음.
- 물에 빠졌다가 생존한 7명 등 현장 인원들은 복귀 후 16시 경 점심을 먹고 군사경찰 수사관의 조사를 받았음. (진술서 작성). 이후 따로 생존 병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바는 없다고 함.
- 생존자 및 현장 간부들은 다음 날 오전 다른 인원보다 일찍 포항에 위치한 대대로 복귀하여 유가족과 집단으로 면담을 진행했다고 함.
- 정확한 일자는 확인되지 않으나 포7대대장은 보직해임 된 것으로 파악됨
3. 정리
- 7월 18일 사고 발생 부대에서 진행하지 않았던 수중 수색이 시작된 계기는 7월 18일 18시 11분에 전파된 사단 지시 사항에 따른 것이 명백함.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
- 사단 지시사항은 그에 앞서 16시 22분에 전파된 사단장 지시사항 중 ‘책임지고 찔러가면서 확인할 것, 바둑판식 수색정찰을 실시할 것’에 근거한 것이며, 사단장은 사고 발생 부대가 소속된 포병 부대가 비효율적이라며 콕 짚어 시정을 요구하기도 하였음.
- 오히려 대대장, 중대장 등 중간 지휘 간부는 18일 밤부터 19일 오전에 이르기까지 수중 수색 안전 문제를 염려한 정황이 확인되며, 물에 들어가더라도 얕은 곳에 들어가라고 지시하거나 장화 착용의 위험성을 건의하는 등 사단장이 질책을 하고 연달아 사단 지휘부에서 수중 수색을 지시한 상황에서 권한 범위 안에서의 노력을 해보려고 한 것으로 보임.
- 뿐만 아니라 임성근 사단장이 실종자 구조 임무 투입 장병들에게 내린 지시는 대부분 복장 통일 강조, 해병대 소속인 것이 눈에 띄게 의상 착용하기, 웃는 모습 보이지 않게 스카프로 얼굴 가리기, 차량 주차 정돈하기 등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을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음.
- 확인된 사실관계만 보아도 이번 사고는 임성근 사단장 이하 해병 1사단 지휘부가 대민지원 과정에서 ‘해병대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도출하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지시를 남발하다가 발생한 것이 분명해 보임.
- 그럼에도 해병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국방부장관이 결재까지 한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가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폐기, 번복되고 경찰에 넘겨진 수사기록이 회수되고, 정당한 수사를 진행한 수사단장 등이 항명죄로 입건되어 수사를 받는 처지에 이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까닭에 강한 의구심을 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