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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특전사 9여단 병사 사망 사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
- 부적절 인사 조치, 선임의 폭언과 부대의 방치 속에 약물 과다 복용 사망 -
지난 2023년 4월 1일, 인천에 위치한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생활관에서 낮잠을 자던 병사가 몸이 경직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군은 수사 중이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을 밝히기 어렵다고 하였다. 이후 군인권센터는 사망한 A상병의 유가족을 상담·지원해왔고, 사망과 관련해 유가족이 갖고 있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 사망 원인
최근 확인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A상병은 알려졌던 것처럼 돌연사한 것이 아니고,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급성약물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복용 중이던 정신과, 신경외과, 감기약 등 14개 종류의 약물을 혈중농도가 치사량에 해당하는 양으로 다량의 에너지드링크와 함께 복용하였다고 한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A상병은 사망 당일 오전 가족과 면회를 한 뒤 13:20 경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14:18 경 화장실에서 약물과 에너지음료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생활관에 모포를 쓰고 누워 있다가 15:16에 경련이 발생하고 심정지에 이른 것을 다른 병사들이 발견하여 응급처치 후 인근 민간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소생하지 못하였다.
군인권센터가 유가족과 함께 확인한 A상병의 면담일지, 신인성검사 결과지, 의무기록 등에 따르면 A상병은 전입 초기부터 부대 문제로 인해 군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나 간부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사망 역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인재(人災)였다.
2. 부적절한 인사 조치에 따라 발생한 부대 생활의 어려움
2022년 6월 입대한 A상병은 수송 특기를 부여 받고 8월 특수전사령부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수송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A상병은 입대 전 부사관 입대를 준비하던 중 손목, 발목 부상을 입었고, 훈련소에서도 민간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은 바 있었다. 증세가 계속 악화되어 운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소속 부대는 전입 1개월여 만에 전입신병이었던 A상병의 보직을 수송병에서 행정병으로 임의 변경하였다. 그러나 해당 부대에는 편제 상 행정병이 없었고, 관행적으로 행정보급관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명목 하에 비편제 행정병을 수송병 중에 뽑아서 운용하고 있었다.
비편제 보직에 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사를 주특기도 변경하지 않고 임명하였기 때문에 선임병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고 한다. 발목 통증이 심한 A상병이 평소 군화가 아닌 운동화를 착용하고, 다른 병사들은 쓰지 않는 여단 본부 중앙 계단을 사용하거나, 제설 작업이나 훈련 등에서 열외 되면 이를 두고 뒷담화를 하고, 중앙 계단을 이용하지 말라던가, 왜 작업이나 훈련을 안 하냐고 핀잔을 주는 등 지속적으로 폭언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임들은 A상병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했고, 병원을 다녀오는 모습을 보며“연기가 늘었다”고 비꼬고 눈치를 본다며 “눈치 보는 거 죽여버리고 싶네”라고 폭언하였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던가, 카카오톡에서 선임들의 말에 ‘옙’이 아닌 ‘예’라고 대답하였다며 흡연장으로 불러내 생트집을 잡아 싸가지가 없다고 비난한 사실도 확인된다. 의무기록에는 A상병이 ‘사람들이 뒤에서 뿐 아니라 앞에서도 욕을 한다’고 괴로워하는 내용도 써있다. 주로 괴롭힌 선임들은 4명 정도로 파악된다.
행정병 업무 수행에도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행정병은 A상병 한 명이었는데 평소 행정병이 해야 할 일은 물론, 행정보급관 등 간부가 해야 할 일까지 상당수 A상병에게 떠넘겨졌다. A상병의 카카오톡 대화기록을 통해 불침번, 당직 근무표 작성, 휴가/외출/면회 등 출타 현황 관리, 사격훈련 인원 편성, 코로나 확진자 관리, 진급 조사, 종교활동 조사, 체육경기 조사, 식수 인원 조사, 분대장 업무 조사, 근무자 신고, 각종 교육 및 행사 수요 파악 등 간부가 해야 할 행정 업무의 다수를 A상병이 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러한 업무는 대부분 일과 후 개인정비시간이나 주말에 했다.
특히 A상병은 불침번 등 근무표를 작성하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주변인들에게도 고충을 호소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A상병은 후임병이 오래 들어오지 않아 상당기간 병사들 사이에서 최하급자였다. 몇몇 선임병들은 순번대로 작성된 불침번 근무에 불만을 표하며 지속적으로 A상병을 들볶았다고 한다. 근무표 작성은 명령권이 있는 간부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모두 행정병에게 떠넘긴 탓이다.
3. 간부들의 무관심과 방치
전입 신병들은 자대 배치 직후 ‘신인성검사’를 실시한다. 복무적합도와 심리상태를 검사하는 것이다. 중대장 등 지휘자급 간부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면담을 실시하고, 필요시 도움·배려병사로 지정하는 등의 인사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 A상병은 이미 검사 결과상으로 자살위험군, 우울, 관계고립 등의 문제가 식별되어 ‘관심’ 대상으로 분류되어있었다. 그런데 소속 부대 중대장, 행정보급관 등은 면담은커녕, 검사 결과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어려움 속에 선임들로부터 꾀병 환자 취급을 받았고, 행정보급관이 해야 할 일까지 도맡아 일과 이후, 주말에도 선임들의 눈치를 보며 행정병 업무를 수행하던 A상병의 누적된 스트레스는 2023년 2월 23일에 이르러 폭발하고 만다. A상병은 팔목, 발목 문제로 2023년 2월 말에 있었던 혹한기 훈련 산악행군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선임병들이 뒷담화 뿐 아니라 앞에서도 욕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 괴로워하던 A상병은 투신을 결심하고 부대 건물을 오르내리던 중에 다른 병사에게 발견되어 제지당했고, 오후 12시 경 죽지 못한 것에 화가 나 유리창을 깨서 손을 크게 다쳤다. A상병은 국군수도통합병원 정형외과에서 손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입원 시에 A상병은 처음으로 군의관에게 부대에서 겪은 부조리를 얘기하며 자살 시도를 하다가 손을 다친 것이라고 사실대로 이야기했고, 불안-우울척도 검사 중증 우울, 불안 상태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병원은 정신과로 추가 입원을 시키지 않고 A상병을 2월 25일 자로 퇴원시켜 부대로 복귀시켰다.
그런데 중대장은 A상병이 손을 다쳐 병원에 간 직후인 14시 30분 경 자해시도에 따라 그간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않은 일에 대해 문책을 당할 것을 걱정했는지 부랴부랴 신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면담일지를 소급작성하기에 이른다. 2022년 9월 7일 자로 신인성검사 결과를 확인하여 ‘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 면담을 진행한 것처럼 허위로 면담일지를 꾸몄고, 혹한기 훈련 직전인 2023년 2월 8일 자로 산악행군 열외와 관련하여 병사들에게 ‘A상병이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교육할 예정’이라는 내용과, ‘평소 실수가 많지만 지속적으로 지도한 결과 차츰 좋아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내용을 꾸며서 써넣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면담 기록 상 자대 전입 후 첫 면담에서도 중대장은 A상병의 부모와 통화한 일이 없음에도 모친과 통화하였다고 적어놓고, 통화한 내용까지 꾸며서 허위로 면담일지를 작성해놓았다고 한다.
4. 자해 시도 사건 발생 후에도 이어진 방치
자해 시도 사건 이후에도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은 A상병을 제대로 보호, 관리하지 않았고, 병영부조리를 식별하였지만 은폐하였다.
A상병이 부대에 복귀하고 이틀 뒤인 2월 27일에 중대장은 A상병과 면담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부대원들이 폭언, 뒷담화를 하여 생활이 어렵고 무섭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게다가 면담일지에 행정병 업무를 진행하며 심리상태가 악화되는 상황이 왔다는 자신의 판단까지 적어두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A상병의 업무를 조정하지 않았고, A상병은 계속 행정보급관이 해야 할 행정업무를 그대로 수행했다. 또한 부조리에 대해서 인지하였음에도 신고를 하지도, 상관에게 보고하지도 않았다.
행정보급관 역시 A상병의 상태를 모두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계속 자신의 일을 떠넘겼고, 병사들에게 A상병의 개인 가정사를 노출시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병영부조리에 대한 조사를 자기 선에서 자체 종결하고 묻어 은폐한 정황도 확인된다.
A상병은 2월 27일에 전출을 요구하기도 하였는데,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은 전출을 가게 되면 이등병부터 다시 생활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말을 하며 이를 만류하였고, 전출을 가게 되면 신상과 관련된 사항을 그 부대에도 다 알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여단의 조치도 미흡했다. 여단 신상관리위원회는 A상병의 상황을 인지하여놓고도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중대장에게 각별히 관심을 가지라는 당부만 하였을 뿐이다.
5. 막을 수 있었던 사망
3월 6일 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무기록에 따르면 A상병은 현재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약물 과다 복용 같은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군의관은 A상병의 자살사고, 충동에 대해 동행한 간부에게 설명하고 전우조 편성 등을 통한 적극적 주의관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부대는 병장 1명, 상병 1명으로 구성된 전우조를 편성하기는 하였으나 편성만 했을 뿐 당사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거나 선정 사실조차 통보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병장은 아예 타지에 훈련을 나가있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약물 과다 복용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에서 약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A상병이 약물에 중독될 정도로 과다복용 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처럼 A상병은 자해 시도와 군의관의 주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대의 방치 속에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6. 결론
A상병의 죽음은 명백한 인재다. 비편제 보직 배치, 간부 업무 전가 등으로 A상병을 병사들 사이에서 고립시켰고, 신인성검사 결과 미확인, 면담 미실시 등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조기에 식별하지도 못했으며, 자해시도라는 극단적 형태로 이를 인지하였음에도 방치에 가깝게 관리하다 결국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자해시도 이후로 면담일지 등을 조작하고 부조리를 은폐하는 일에 공을 들일 시간에 A상병을 관리, 보호하는 일에 힘을 썼다면 끔찍한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누구나 낯선 군 생활에 부적응 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식별하고 관리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어 두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도와 시스템을 운영해야 할 주체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병력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이는 다 무용한 것이란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군의 특성 상 제도와 시스템을 잘 갖추어두는 것 못지않게 군 수뇌부가 장병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인권을 보장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이러한 어이없는 사건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근 빈발하는 사망 사건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점검하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군사경찰은 현재 사건을 수사하여 중대장, 행보관, 폭언을 한 선임병들과 여단 참모장, 본부근무대장 등을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중 행정보급과는 8월 전역을 앞두고 있다. 빠른 조사를 통해 형사 입건, 징계 절차 등을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단 지휘부에도 부대 관리의 책임이 있지 않은지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한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막지 못한 일의 책임만큼 큰 것은 없다.
2023. 6. 8.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