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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국립묘지에 묻힌 ‘조선인 일본군’의 묘를 파묘하라

작성일: 2020-06-04조회: 3246

※ 조선일보, TV조선 등 계열언론사, 채널A, 아시아경제, 세계일보의 본 성명 인용을 불허합니다.
 

[성명]

 

국립묘지에 묻힌 ‘조선인 일본군’의 묘를 파묘하라

- 현충원에 묻힌 56명 친일군인, 일본군 영관급 중역만 11명 -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삶을 희생한 호국영령을 참배하기 위하여 현충원을 찾는다. 그런데 현충원에는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부역한 군인들이 56명이나 묻혀 시민들의 참배를 받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32명, 국립대전현충원에 24명이 있다. 이들은 광기 어린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전쟁 범죄에 가담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5조에 따라 국제 평화의 유지를 위해 노력하며,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헌법에 반하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현충원에 묻혀 추앙받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 56명 중 20명은 일본군, 36명은 만주군이며 만주군 중 14명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과 만주국에서 정식으로 군사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일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자가 25명,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한 자가 3명, 만주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자가 5명, 중앙육군훈련처를 졸업한 자가 19명이다. 계급도 다양하다. 일본군과 만주군을 통틀어 영관급(일본군: 좌관급, 만주군: 교관급)에 이른 자가 11명이고, 이 중 국군의 대령에 해당하는 대좌, 상교까지 오른 자가 3명이나 된다. 식민 치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출세가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3명을 빼고는 모두 위관급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본국에서 받은 훈장이 7개, 만주국에서 받은 훈장, 기장이 16개다. 즉,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군인들은 식민지 조선인으로 일본에 끌려가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 충실하게 복무했다.

 

 일례로, 광복 후 초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하여 후일 국무총리까지 지낸 김정렬은 일본 육사를 54기로 졸업하여 육군항공사관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은 뒤 1941년 필리핀 공격 작전에 참여하여 태평양 전쟁에 뛰어든다. 1942년에는 248전대 신설 책임을 맡았고, 1944년에 자바 솔로 전대장을 대행하였으며 1945년에는 비연전대에서 근무하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해안을 담당하였다. 6대 육군참모총장과 8대 국방부장관을 지낸 이종찬은 일본 육사를 52기로 졸업하여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여 1943년에는 소좌(소령)에 이르렀고, 이듬해에는 공병 제15연대장 대리로 지휘관이 되었다. 이종찬은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금치훈장까지 받았다. 이처럼 이들은 일본의 침략 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역할 하며 일본군으로서 활약했다.

 

 어이없게도 일제가 패망한 줄도 모르고 충성을 다해 전쟁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1948년 당시 여순사건 계엄사령관을 지내고, 육군 1군단장을 역임한 김백일은 만주국 상위로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항일무장세력들과 싸웠는데, 일제가 패망한 줄도 모르고 1945년 8월 20일까지 소련군을 상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성적우수자로 추천되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 57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만주군을 두루 거치며 소련군 진격 저지 작전에 참가하였다가 일제가 패망한 줄도 모르고 8월 17일까지 작전에 임하였다.

 

 대를 이어 일제의 침략 야욕에 부역하며 호의호식한 이들도 있다. 4대 국방부장관을 지낸 신태영은 1914년 일본 육사를 26기로 졸업하여 시베리아 전쟁에 참여하였고, 조선군에 배속되어 활동하였으며 만주사변 논공행상으로 욱일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1938년에는 중좌(중령)까지 진급하여 용산 정차장 사령관을 지냈다. 한편, 신태영의 아들인 신응균은 194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본 육사를 53기로 졸업하여 1943년 대위가 된 뒤 1944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후에는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안병범은 1914년 일본 육사를 26기로 졸업하여 시베리아 전쟁에 참전한 뒤 영친왕부 무관으로 근무하다 대좌까지 진급하였다. 안병범의 아들인 안광수는 패망 직전에 일본 육사를 58기로 졸업하였고, 해방 후에는 5.16 쿠데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과 주미한국대사를 지냈다. 현충원 묘비에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라 새겨져 있는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은 1914년 일본 육사를 26기로 졸업한 뒤 시베리아 전쟁, 중국 제남사건, 중일전쟁, 팔로군 진압작전 등 숱한 전쟁에서 전공을 세우고 대좌까지 진급하여 1943년 진저우 정차장 사령관, 1944년 용산 정차장 사령관을 지냈다. 신태영, 안병범, 이응준은 식민 치하의 조선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일본군의 중역까지 맡았고, 국군으로 복역한 기간보다 일본군으로 복역한 기간이 훨씬 길다. 사실상 현충원에 일본 군인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부자가 함께 일본군에 투신하였던 신태영은 1943년 <경성일보>에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다.”라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해 한 몸 바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고 싶다는 뜻을 기고 한 바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가고 싶은 일본군을 대한민국 현충원에 안장해둔 것이다.

 

 이렇듯 일본군에 투신하였던 이들은 일제 패망 직후 돌변하여 국군 창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몇몇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까지 보인다. 관동군 헌병 이등병으로부터 시작하여 특출한 항일 세력 첩보 능력으로 오장(하사)까지 진급한 김창룡은 1946년 소련군에 체포되어 전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탈옥에 성공하여 서울까지 내려온 뒤 국방경비대 5연대 병사로 입대한다. 그러나 관동군 헌병 출신이란 이유로 업신여김을 받자 탈영을 했고 몰래 3연대로 재입대, 하사가 되었다. 이후에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순사건 당시 박정희를 검거하여 소령으로 특진하였다가 초대 특무부대장(현재의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이 된 뒤 암살당한다. 박정희 정부 하에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일권은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육사를 졸업하여 만주군 간도헌병대 대장으로 근무하다 일제가 패망하자 만주의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워 만주군 내 조선인 간부들을 모아 신징에 만주교민보안대를 만들어 스스로 사령관에 취임했다. 그러던 중 소련군이 신징에 이르자 정일권은 보안대의 명칭을 ‘동북지구 광복군 사령부’로 둔갑시켜 독립군 행세를 하였다. 이를 간파한 소련군은 보안대를 해체시키고 그를 체포하여 시베리아로 유형 처분을 내렸으나 정일권은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탈출에 성공, 서울로 도망 와 미 군정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한다.

 

 이처럼 56명의 친일군인은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로 15인, 육군사관학교로 19인, 해군사관학교로 1인, 특별임관으로 21인, 즉 전원이 다시 국군에 임관하였고, 이들 중 육군이 46명, 공군이 5명, 해병대가 5명이다. 이 중 46명이 장군까지 진급했다. 해군을 제외한, 육군, 공군, 해병대의 창설 멤버가 친일파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 56명 중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자가 6명,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자가 2명,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자가 3명이고, 초대 육군참모총장(이응준), 공군참모총장(김정렬), 해병대사령관(신현준)은 모두 친일군인이다. 심지어 육군참모총장은 생존 중인 백선엽(7, 10대 총장)을 제외하고는 1대부터 9대(이응준, 채병덕(중임), 신태영, 정일권(중임), 이종찬, 이형근)까지 모두 친일파로 현충원에 묻혀있고, 해병대사령관은 1, 2, 3대(신현준, 김석범, 김대식)가 모두 친일파로 현충원에 묻혀있다.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의 초대 교장도 친일군인이며 56명 중에는 국방부장관을 지낸 자가 4명(신태영, 이종찬, 임충식, 유재흥)이고, 대통령도 1명(박정희) 있다.

 

 대한민국 국군은 그 뿌리를 광복군에 두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정작 창군의 주역으로 현충원에 모셔놓고 떠받드는 대상은 대부분 친일파들이다. 임관을 앞둔 사관생도들은 현충원을 방문하여 호국영령을 참배한다. 국군을 이끌어 갈 이들이 침략전쟁에 가담하여 부귀영화를 탐한 이들에게 왜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최근‘민중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쥔 자의 사명’이라며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일을 미화한 백선엽이 자기 장지를 대전 현충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았다. 빈 자리가 없는 서울 현충원을 대신해 대전에 가는 것을 대단한 배려처럼 이야기한다. 친일 행적에 대한 한마디 사죄도 없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 함께 일제에 부역했던 동료들이 버젓이 현충원에 들어가 시민들의 참배를 받고 있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보훈은 국격이다. 국가가 어떤 사람을 기억하고, 존경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일제의 전쟁범죄에 부역한 군인, 목숨 걸고 독립군 토벌에 나선 반민족행위자들을 현충원에 두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조선인 일본군’들을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묻어둘 것인가. 더 이상 시민들이 전범 부역자들을 기억하고 존경할 까닭이 없다.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친일 군인을 포함한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이장하라.

 

[별첨] 국립현충원 안장 친일군인 명단 세부자료

친일파 백선엽 대전현충원 안장 반대 서명하러 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jSS5jk  

2020. 06. 04.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