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 사진공동취재단
군인들은 해마다 체력검정을 한다. 기준을 세워두고 급수를 매긴다. 직업군인들은 선발할 때도 체력검정을 한다. 기준에 미달하면 임관을 할 수 없다. 임관 후에는 체력검정 결과가 인사평정에도 반영된다. 기준 미달로 불합격하거나 검정에 응하지 않으면 징계나 인사 불이익을 받는다. 전투원들의 체력을 관리하는 일이니 별달리 이상할 건 없다.
한편, 군에서 민간인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군무원들도 체력검정을 한다. 국방부 군무원정책과에서 송옥주(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 따르면 군무원을 상대로 체력검정을 하는 이유는 '개인 건강 및 체력관리 차원'이며, 군인과 달리 검정 결과를 인사 평정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군무원은 선발할 때 체력검정을 하긴 하지만 합격 여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군인과 달리 요구되는 체력 조건은 없는 것이다. 군무원은 전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군에서 민간인이 해야 할 일을 맡아보는 공무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처럼 선발 시 체력 조건을 걸지 않았고, 인사 평정에도 반영하지 않으니 군무원은 체력 검정 결과에 따라 불이익한 조치를 받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군인이건 군무원이건 체력 수준에 따라 인사 불이익을 주려면 채용할 때부터 '직무 수행에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 유지가 요구된다'는 조건을 걸고 선발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군인은 체력검정 결과가 임관 가능 여부에 영향을 주고, 군무원에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뽑을 땐 아무 말 없다가 뽑아 놓고 나서 이런저런 조건을 요구하며 불이익을 주는 건 '취업 사기'나 다름없다.
그런데 최근 군 곳곳에서 군무원이 체력검정 결과가 미달되었다는 이유로 경고 등의 인사 불이익 처분을 받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경우도 왕왕 보이고 있다는 것이 현직 군무원들의 전언이다. 국방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정책은 아니지만, 부대 별로 지휘관 재량 하에 군무원 체력검정을 군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질의한 송옥주 의원실에 국방부 군무원정책과가 답변한 바에 따르면 '국군의 특성상 군무원의 경우도 기본적인 체력관리가 필요하고, 현역과 함께 일과시간에 체력단련 시간을 보장하여 건강관리와 체력증진 동기부여 및 조직의 화합과 단결 차원에서 체력검정을 실시'한다며, '2020년부터 현재까지 체력검정 불합격, 미응시 등의 사유로 징계를 받거나 받을 예정인 군무원은 없다'고 했다. 덧붙여 '군무원 신분에 맞는 체력검정 시행방안을 검토 예정'이란 계획도 밝혔다.
군무원으로 뽑아놓고, 군인처럼 쓰겠다?
▲ 11일 오후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바라본 국방부 청사. ⓒ 권우성
하지만 실제 체력검정 결과에 따라 경고장을 받거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는 군무원들이 있어 국방부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부대장 재량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 군무원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선발할 때는 요구하지 않던 체력 기준을 복무 중간에 갑자기 적용해 불이익 처분을 운운하니 군무원 입장에서는 황당할 법하다.
이처럼 은근슬쩍 군무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 조건을 요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방부가 군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민간인력이 아니라 '군인 대체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감소와 직업군인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간부 지원율이 떨어지고, 편제 대비 충원률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군인이 모자란 상황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전투와 관계없는 업무를 맡고 있는 군인의 편제를 줄이고, 대신 이러한 비전투업무를 맡아볼 군무원 정원을 대폭 늘렸다. 군인은 전투 임무에만 전념하고, 그 밖의 지원 임무는 민간인력에게 넘기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편제 대비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자 국방부는 갑자기 잔뜩 뽑아 둔 군무원을 '군인화'하는 희한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군인이 서야 할 당직근무를 군무원에게 나눠 맡기고, 위병소 근무에 투입하며, 일부 부대에서는 군인이 가야 할 이런저런 교육과 훈련에 군무원들을 투입한다. 개인 화기 지급도 검토했다. 민간인인 군무원에게 개인 화기를 지급하는 것은 국제규약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군무원으로 뽑아놓고 군인으로 쓰는 건 사실상 취업 사기다.
군무원 체력검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체력검정 결과로 인사불이익을 주거나 징계나 그에 준하는 처분을 하겠다는 건 결국 군무원을 군인과 똑같이 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군무원 관련 정책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슬금슬금 변하고 있다. 뽑을 땐 제시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준과 임무가 하나둘씩 끼워넣기식으로 추가되고 있다.
직업군인 지원자가 감소하면 이를 늘릴 대책과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뜸 직종이 다른 군무원에게 군인이 할 일을 떠맡기는 것은 매우 이상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경찰관 부족하다고 경찰청에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방범 순찰을 맡기는 격이다. 군무원으로 뽑아놓고 군인으로 쓰겠다고 하면 군무원들이 남아있을 리 없다. 이미 직을 떠나는 군무원들이 계속 늘고 있다. 국방부는 언제까지 언 발에 오줌을 눌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