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유행한 말 중에 ‘좋아 빠르게 가’가 있다. 줄여서 ‘좋빠가’라고도 한다. 공약 소개 영상에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사이다 같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춘 후보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빠가’는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의 핵심기조가 됐다.
정부의 주요 사업 대부분이 갑자기, 전격적으로 시작된다. 의대 정원 확대, R&D 예산 삭감, 수능 킬러 문항 배제, 여성가족부 폐지, 경찰국 신설… 생각나는 것만 떠올려도 그렇다. 논란이 있건 말건 대통령실에서 하달되면 실무 부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대로 직진한다. 예상되는 문제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나 플랜B 같은 것을 세워두기보단 일단 일을 시작하고 발생하는 문제를 풀면 된다는 식이다. 대통령이 좋다며 마음먹은 일은 무조건 빠르게 가야 한다. 그걸 효율적이고 추진력 있는 국정 운영이라 여기는 것 같다.
반대 세력을 다루는 방법도 비슷하다. 이건 ‘좋아 빠르게 나가’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국정 기조를 비판하던 국회의원이,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입장을 요구하던 의사가 입이 틀어막혀 끌려나갔다. 이건 단순한 과잉 경호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람들을 ‘대통령의 공적 업무를 방해한 업무방해 현행범’이라 규정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이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을 비판하는 불순 세력은 국가와 법이 지켜야 할 국민의 울타리 밖에 놓인 ‘범죄자’다. 그래서 재빠르게 입을 막고 사지를 들어 내보내는 것이다.
‘좋아 빠르게 가’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의 핵심기조는 반대 세력에겐 ‘좋아 빠르게 나가’로 적용된다. 주요 사업은 전격적으로 시행되고, 반대는 입이 틀어막히고 들려 나간다. 대화와 타협은 없다. 따를지, 떠날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면 반발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무조건 수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타협과 조정을 거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에는 그런 게 없다. ‘입틀막’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대개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반발 세력이 나타나면 대화의 여지가 없다. 정부가 제시하는 안을 따를지, 안 따를지 양단간에 결정할 것을 요구한 뒤엔 일단 협박하고 법으로 엮어서 수사한다. 온갖 여론전으로 대상을 악마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뿐인가. 대통령이 원치 않는 법은 성격이 어떻건 국회에서 이송되기 무섭게 거부권을 행사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오체투지를 해도, 목숨 걸고 단식을 해도, 길에 나앉아 울부짖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빨리, 더 빨리. 정책 추진도, 반대를 치우는 일도 늘 속도전이다. 어찌 됐든 대통령 가시는 길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이런 식의 정부 운영이 계속되면 국가 공동체는 유지될 수가 없다. 대통령과 함께 빠르게 갈 수 없는 모든 이를 다 끌어내고 나면 결국 그 자리엔 대통령 혼자 남게 될 테고, 문밖엔 내보내진 사람이 가득할 터다. 묻는다. 그러면 그때부턴 어디가 문밖인가? ‘좋아 빠르게 나가’는 누가 들어야 할 말인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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