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 7월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추모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지난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 연합뉴스
지난 11월 6일 있었던 장군 인사에서 고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책임자로 거론되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정책연수생으로 발령받았다.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 해병대 장교가 맡을 수 있는 소장 보직은 부사령관, 1사단장, 2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장 네 개로, 해병대에는 소장이 네 명 뿐이다. 그런데 임 사단장이 느닷없이 정책연수를 감에 따라 소장 자리 하나가 비게 되었다. 결국 부사령관은 준장이 대리하게 되었다.
당초 임 전 사단장은 전비태세검열실장으로 발령받을 예정이었으나 국방부에 따르면 본인이 고사하고 외곽에서 해병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보직과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고위공무원이 자기가 맡아야 할 보직이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공부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보직을 고사하고 연수를 떠났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는 채 상병 사망 책임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마당에 새 보직을 받게 되면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수사에 집중하기도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 전 사단장은 국민 세금으로 다달이 장성 월급을 받으면서 서울 모 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향후 수사에도 대비할 예정이다.
'별'자리 만드는 꼼수
▲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 사진공동취재단
장성급 지휘관의 인력 운영이 국방부 맘대로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2024년도 국방부 소관 예산안 검토보고'중 장교 인건비 예산과 관련한 문제 지적에 따르면 국방부 국방정책실은 산하에 '한미동맹70주년회담준비TF', '전시작전권전환TF', '전략사령부창설지원TF'를 두고 있다. 해당 TF들은 국방부 직제에 반영되지 않는 임시 조직이다. <국방조직 및 정원 관리 훈령>에 따르면 임시 조직은 담당 사업을 소관하는 부서가 없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세 TF는 사실상 '상설기구'처럼 운영되고 있다. 한미동맹TF와 전시작전권TF는 2007년부터, 전략사령부TF는 2018년부터 TF 명칭만 시기별 사업에 맞춰 바꿔가며 조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세 TF가 맡은 임무는 원래 국방정책실 상설 조직에서 이미 나누어 맡아 보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미 정식 조직에서 하고 있는 일을 15년 가까이 임시 조직에 중첩해서 맡기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세 TF장은 대대로 모두 육군 준장이 맡고 있다. 그런데 부서 내에서는 이들의 직함을 각 TF장이 아니라 각각 국제정책관, 방위정책관, 정책기획관의 차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종합하면 국방부는 국방정책실에 TF장이라는 껍데기를 씌워 꼼수로 상설 조직의 정식 직제에 없는 차장 자리를 세 개 만들고, 육군 장성 별자리로 운영해 온 것이다.
2013·2018·2019년에 감사원이, 2013·2016년에 행정안전부가, 2021년에 국회가 반복적으로 국방정책실 차장직을 없애거나 정식 편제로 예산안에 넣어 국회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지적하였으나 시정되지 않고 있다.
2018년 기준 우리 군의 장군 수는 427명이었다. 육군이 그 중 70% 가까이를 점했다. 2018년 정부는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군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병력을 60만 명 수준에서 50만 명으로 감축하면서 장성 수를 100여 명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육군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반발에 밀린 정부는 감축 규모를 76명 수준으로 줄였다. 우여곡절 끝에 장성 수는 2022년에 이르러 목표치인 360명에 다다랐다. 하지만 이는 인건비가 책정된 예산안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 장성 수는 370명이었다. 10명이나 되는 장성 보직을 비편제로 운영한 것이다. 그러더니 정권이 바뀐 뒤인 2023년에는 아예 장성 편제를 370명으로 늘려서 비편제 장성 10명을 정식으로 편제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근 20년 사이 장성 수가 늘어난 건 이때가 처음이다.
장군이 많으면 나라가 지켜지나
우스갯소리로 우리 군의 장성들을 휴전선에 일렬로 세우면 1km에 한 명씩 배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50만 병력을 장군 수 370명으로 나누면 1351명이다. 장군마다 계급과 맡은 일이 다르고 모두 야전 지휘관은 아니니 이런 계산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병력 대비 장군 수가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상부 구조 개편은 쉽지 않아 보인다. 병력은 줄어들고, 부대 수도 줄어드는데 아무도 지휘관 수는 줄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책 부서에 이런저런 장군 자리를 만들고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임무를 쪼개서 새 사령부를 창설하고 장군 보직을 늘리는 식이다.
올해 예산안에서도 고위 장교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천태만상이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던 일들을 뒤엎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지만 장군 수를 도로 늘리고, 감축 계획도 보이지 않고, 수년간 지적된 비편제 장군 보직을 버젓이 운영하는 윤석열 정부의 인력 운영 방침은 납득하기 어렵다. 장군이 많으면 나라가 지켜진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