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방부·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 장관을 교체하는 2차 개각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3일 국방부 장관 교체 계획이 발표되었다. 9월 초 국가안보실 임종득 2차장과 임기훈 국방비서관 교체 계획이 알려진 데 이어 이종섭 장관까지 군 관련 안보라인이 한꺼번에 모두 교체되는 것이다.
인적 쇄신의 이유를 설명할 만한 안보 정책의 큰 변화가 가시화된 것도 아니고, 장관의 일신에 문제가 생긴 상황도 아닌 데다가, 지난 한 해의 업무 전반을 감사받는 국정감사를 앞에 두고 갑자기 장관을 교체한다니 말이 많았다. 구설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난맥상을 정리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전면에서 퇴장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안보라인 교체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개각 과정의 면면에는 전례 없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이 장관의 거취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온 것은 9월 7일부터였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안을 발의했고, 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당 지도부가 국방장관 해임 건의나 탄핵소추를 추진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자로 사단장 포함 8명을 경찰에 이첩하고자 한 해병대수사단 수사 결과를 이종섭 장관이 국방부조사본부에 재검토시켜 대대장 2명으로 축소한 행위를 '군사법원법' 등을 위반해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탄핵 요건인 '직무집행 상의 위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날인 8일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이 장관 해임을 촉구하며 해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탄핵 절차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해외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새벽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여권에서는 대통령이 귀국과 동시에 개각을 검토할 것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르면 12일 또는 13일에 개각이 진행될 거란 말이 무성했다. 당초 예정되어 있던 것도 아닌데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이 귀국하기 무섭게 개각 계획을 보고 받고 바로 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장관직 버리는 '꼼수'
1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 장관 탄핵 추진 의지를 천명했고, 민주당은 12일 의원총회에서 탄핵소추안 당론 발의를 의결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 이 장관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장관직에서 물러날 수 없고 대통령도 이 장관을 해임할 수 없다.
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게 될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고, 국정조사와 특검 등도 추진하고 있는 입장에서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인물인 장관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진상규명이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장관 교체를 '이 장관 빼돌리기'로 규정하고 탄핵을 통해 붙잡아 두려 한 것이다.
그러자 정부의 행보도 빨라졌다. 12일 오전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이 참석한 국무회의가 시작된 후 이 장관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국방부는 이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것이 맞냐는 기자들의 취재에 "확인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이 장관의 사의 표명이 사전에 주변과 상의하고 이뤄진 일이라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이날은 야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탄핵안 당론 발의를 논의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장관이 사표를 내고 대통령이 이를 수리하면 탄핵소추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야당의 탄핵안 발의가 가시화되자 긴박하게 장관 자리를 비우려고 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이 장관 사의 표명의 이유로 탄핵안이 가결될 시 '안보공백'이 우려된다는 점을 꼽았다. 여러모로 궁색한 해명이다. 장관이 탄핵되면 차관이 직무대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장관의 사표가 수리되어도 후임 장관이 인선되고 검증 과정을 거쳐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을 때까지 차관이 직무대리를 한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비슷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탄핵은 국회의 권한으로, 고위공직자 등이 직무상의 위법행위를 했다고 판단될 때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 파면 여부를 정하는 헌법 절차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통한 장관의 수사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인 상황에서 탄핵 위기에 처하자 '안보 공백'을 운운하며 사표를 써서 장관직을 버리는 것은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이날 민주당은 탄핵안 당론 발의를 결론짓지 못했다. 장관이 사표를 내고 대통령이 언제든 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탄핵의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당내에서 갑론을박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체 무엇을 감추기 위해
▲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그러자 12일까지만 해도 갑자기 사의를 표명하며 긴박하게 돌아가던 장관 거취 문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3일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장관의 사의를 수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여성가족부, 문화체육부, 국방부 3개 부처에 대한 개각 계획을 발표했다. 사표 수리 대신 정상적인 인사 교체 수순을 밟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장관의 사의 수리를 거부하기로 한 이유는 '안보공백'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사표를 낸 사람은 '안보공백'이 우려되어 사의를 밝히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는 사람도 '안보공백'을 우려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민주당도 탄핵안 당론 발의를 철회했다. 장관 탄핵에 따른 안보공백론을 들고나온 여권으로 인해 역풍을 맞을까 염려하는 의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해외 공관에 대사나 대통령 특사로 파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정감사, 국정조사, 특검 등을 앞두고 장관 교체에 이어 해외로 내보내기까지 하면 이 장관은 사실상 채 상병 사망 사건 국면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셈이 된다.
이종섭 장관 교체는 윤석열 정부의 채 상병 수사 외압 주요 증거 인멸 행위나 다름없다. 대통령 및 대통령실 수사 개입에 관계된 이들이 모두 교체 대상이 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책임을 묻기 위해 해임, 경질하는 것과 꼬리 자르기를 통해 위법행위의 실체를 감추기 위해 해임, 경질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이종섭 장관이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해병대수사단의 업무상과실치사 범죄인지통보 과정에 위법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은 이 장관 본인이 부인하고 있을 뿐, 여러 정황을 통해 분명해지고 있다. 명백한 직무상의 위법 행위로 탄핵 사유다.
정치적, 법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할 장관이 꼬리 자르기로 뒤로 빼돌려지는 기막힌 상황이 국민들이 다 보는 앞에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게다가 차기 장관으로 거론되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그간 국회에서 수사 외압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장관 등이 수사에 관여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냐는 식의 주장을 펼쳐왔다. 이런 사람이 장관이 된다면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체 무엇을 감추기 위해 한 나라의 장관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갈아치운단 말인가. 한번 잘린 꼬리는 다시 붙이기 어렵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유야무야 된 것은 분명 실기(失期)다. 정권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장관 인사를 우습게 만든 정부나, 그 앞에 무력한 국회나 모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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