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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군에선 아직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작성일: 2023-08-03조회: 495

군에선 아직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김형남의 갑을,병정] 군 인권 활동가의 시선으로 본 < D.P. > 시즌2 

지난 7월 18일 김지현, 지진희,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배우가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 D.P. >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 이정민
군무이탈죄, 쉬운 말로 탈영. '군형법'은 군인이 부대에서 이탈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하지 않으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 한국은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나라다. 숨을 데가 어디 있다고 탈영한단 말인가? 장차 어떻게 하려고? 보나 마나 답이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게 죄인 걸, 언젠가 잡힐 걸, 나가봐야 도리가 없단 걸 알면서도 탈영을 감행하는 이들이 있다. 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부대에 있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탈영병들은 저마다의 답 없는 질문을 안고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군대에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고, 그대로 두면 문제가 자기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그러나 도망도 해결책이 될 순 없다. 고장 난 테이프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놓는 일. 그게 탈영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D.P.병' 이야기다(D.P.는 Deserter Pursuit의 약자로 군무이탈체포조를 뜻하나 지금은 D.P.가 없다. 2022년부터 탈영병 체포는 간부가 전담한다). 같은 병사이지만 탈영병을 쫓아가 체포해 오는 게 이들의 임무다.

문제가 있어서 도망간 사람을 데려오려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된다. 하지만 병사에 불과한 D.P.는 그런 걸 할 수가 없다. 해결은 물론이고 해결 방법도 이들의 권한 밖이다. 그러니 뭐 때문에 도망갔는지 살필 이유도 없다. 그냥 강제로 잡아다 부대에 데려다 놓으면 그만이다. 다시 도망가진 않을지, 더 절망하진 않을지. 그런 염려는 이들의 일이 아니다. 일시 정지된 고장 난 테이프를 억지로 재생시키는 D.P.의 하루는 우리 군의 현실을 빼닮았다.

우리 군엔 고질병이 있다. 문제 해결 능력이 꽝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감추고, 왜곡하고, 때론 조작도 한다. 철책 뒤에 숨어서 폐쇄 조직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다. 드러난 문제도 겉핥기로 변죽만 울리다 세상의 관심이 줄어들 때쯤 마찬가지로 관심을 끈다. 최대한 책임지지 않고 대충 넘겨보려는 습성을 좀처럼 고치지 않는다. 그러니 비슷한 일이 자꾸 반복된다. 고장 난 테이프를 무작정 끝까지 재생하다 끊어 먹는 식이다. 끊어질 걸 알지만 일단 돌아가니 돌리고 본다.

그러니 너도나도 자꾸 도망간다. 누구는 탈영하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빚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D.P.>는 그들이 남기고 간 답 없는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한 드라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뭐라도 해야 바뀐다'며 답을 찾아 나서는 이들은 질문에 답할 이유도, 힘도 없는 D.P.다.

2021년에 공개된 <D.P.> 시즌1은 수많은 시청자의 씁쓸한 공감과 함께 흥행했다. 한국의 군인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자조와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란 질문을 다 안고 산다. 대부분 두 문장 사이를 쳇바퀴처럼 돌다 그대로 덮어두고 2년 남짓의 군 생활을 마무리한다. <D.P.>가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지나간 시간에 덮어둔 자조와 질문을 정확히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6화짜리 드라마로 다 끄집어낼 순 없었다. 풀지 못한 숙제가 남긴 묵직한 여운은 시즌2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은폐와 입막음
 

< D.P. > 시즌2에서 구자운 법무실장이 점잖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하급자들을 압박하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 넷플릭스
<D.P.> 시즌2에 등장한 이슈는 대부분 근 10년 내 병영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루리 일병의 총기 난사로 사망한 병사가 사실은 장기 손상이 아닌 구조 지연에 따른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설정은 2015년 육군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의사였던 유가족이 처음 의혹을 제기했었고, 현장검증 결과를 실시간으로 외부로 전한 군인권센터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이때도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집요하게 알아냈지 군이 먼저 알려준 바는 아니었다.

가혹행위를 겪다 자살을 시도 한 조석봉 일병 사건을 우울증에 의한 사고로 둔갑시키는 장면에선 2021년 상관의 성폭력과 2차 가해로 사망한 이예람 중사 사건을 떠올렸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중사가 성폭력이 아니라 부부 싸움 때문에 사망했다며 출입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흘린 공군본부 공보장교에게 사자명예훼손죄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 거짓말은 유가족에게도 전해져 오랜 혼란과 고통을 낳았었다. 아직도 군에서는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31일에도 해병대는 예정되어 있던 예천 내성천 실종자 수색 중 채수근 상병이 사망한 경위에 대한 수사 결과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했다. 해병대사령관이 채 상병 영결식 직후 외부에 사고의 진상을 제보하는 대원들을 '단결 저해'라 질타하며 방관하지 않겠다는 지휘서신을 내렸다는 보도도 있었다. 은폐와 입막음은 드라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D.P.> 시즌2에서 구자운 법무실장이 점잖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하급자들을 압박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수사선상에 올랐던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자신을 수사 중인 후배 군검사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건 뒤 사건 관계 내용을 얘기해 보라며 압박했다.

그 역시 점잖은 목소리로 하급자들에게 부적절한 압력을 행사했다. 전화를 받았던 후배 군검사는 법정에서 당시 정황을 증언하며 이 중사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애도를 표했다.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장면도 익숙하다. 지금도 군 법무관들이 피고석에 앉아 갖가지 이유로 배상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군대에서 죽었다고 다 군대 책임이냐는 항변 역시 판박이다.

2016년에 군의 의료과실로 사망한 홍정기 일병의 유가족은 7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군은 처음엔 의료과실 책임을 부인하다가 이젠 이중 배상 금지 규정을 들먹이며 배상할 수 없다고 한다.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까지 열고 홍 일병 사례를 언급하며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아쉬움과 기대
 

넷플릭스 < D.P. > 시즌2 안준호역의 정해인(왼쪽)과 한호열역의 구교환 ⓒ 넷플릭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D.P.> 시즌2 등장인물들이 군과 줄다리기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선 2014년 '윤 일병 사망 사건'이 생각났다. 당시 육군은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을 검시, 부검도 하지 않고 냉동만두를 먹다 기도가 막혀 죽었다고 발표했다.

구타가 직접 사인이라는 진실은 여러 가해자 중 한 명의 변호인이 알아냈다. 변호사는 진실을 밝혀야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의뢰인을 설득해 냈고 군인권센터가 그걸 폭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해자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바뀌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3개월 뒤의 일이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아팠을 날 것의 현실이 투사된 장면마다 한 올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싸우고, 번민하고, 눈물 흘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쳤다. <D.P.> 시즌2 말미에 박범구 중사가 군인권센터 신혜연 간사에게 그런 말을 한다. '답이 없는 질문에 계속 필사적으로 부딪힌다.' 주인공 안준호를 두고 한 말이다. 아마 내가 떠올렸던 모든 얼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 모든 얼굴을 캐릭터 하나에 다 담으려다 보니 좀 버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병사의 위치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며 조금씩 고민을 키우던 안준호가 시즌을 건너가며 현실의 피해자, 유가족, 활동가, 제보자의 정체성을 한꺼번에 쥐고 가니 뭔가 건너뛴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른 캐릭터들도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D.P.> 시즌2가 시즌1에 비해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하지만 <D.P.>가 남긴 울림은 여전히 묵직하다. 모든 아쉬움에도 이 드라마를 복기하는 이유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제작진은 회차를 거듭하며 탈영병들이 두고 간 일관된 질문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군대가 요지부동이라지만 그래도 안 바뀐 건 아니다. 매번 변화가 충분치 않고 더디며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터라 아플 뿐이지만. 그러나 중요한 건 그러한 변화가 저절로 온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군대의 안팎으로 같은 질문을 놓지 않고 버텨온 숱한 '안준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쩔 수 없다'와 '어쩔 수 없는 걸까'를 오가며 조용히 성장하는 안준호에게서 철옹성 같은 군대와 마주해 온 모든 이들의 얼굴을 본다. 이번 시즌도 보는 이의 덮어둔 자조와 질문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D.P.> 시즌2도 숨 가빴던 전개의 끝에 허무한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쫓아가고, 도망가고, 맞고, 때리고, 굴렀는데 시작이나 끝이나 바뀐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마치 바뀌지 않는 군대처럼.

하지만 바뀐 것이 있다면 캐릭터, 군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시즌1, 시즌2의 시작, 그리고 끝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들의 모습은 분명 달랐다. 그들의 성장이 다음의 변화를 만들 것이다. 매번의 실패와 죽음에서 만났던 자책과 번민과 고뇌가 우리 군에 변화의 씨앗을 심었던 모습을 되새김하면서, 시즌2에 느꼈던 아쉬움을 다음의 기대로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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