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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병사가 여군 간부를 '계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

작성일: 2023-06-03조회: 683

병사가 여군 간부를 '계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

[김형남의 갑을,병정] 공군 '계집노트' 사건과 여군에 대한 왜곡된 인식 

지난 5월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공군의 한 비행단 병사들이 만든 '계집파일'을 발견하고 상부에 처음 보고한 병사를 인터뷰했다. 유튜브 'CBS 김현정의 뉴스쇼' 화면 갈무리. ⓒ CBS
여군이 등장하는 뉴스 기사에 달리는 단골 댓글은 '여군을 뽑지 말자'다. 기사 내용이 어떻든 상관이 없다. 사관학교 여생도가 최우수 졸업생이 되었다는 기사에도, 여군이 임무 수행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기사에도, 여군이 성폭력을 겪었다는 기사에도, 여군이 죽었다는 기사에도 '그러니 여군을 뽑지 말자'는 댓글이 달린다.

얼마 전, 공군 한 비행단에서 병사들이 당직실 컴퓨터에 '계집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두고 돌려본 사실이 알려졌다. 그 노트엔 여군 간부들의 신상과 사진을 모아두고 레이싱걸 같다며 외모를 품평하는가 하면 입에 담기도 민망한 성희롱을 코멘트로 달아뒀던 것으로 파악된다.


노트를 만들고 본 사람들은 이미 전역했고 노트 파일은 전역하면서 삭제한 모양인데, 병사들이 당직 근무를 설 때 다음 당직자에게 전달하는 신송노트 파일에서 소위 '계집노트'의 존재가 드러났다고 한다. 한 병사가 그걸 발견했고, 간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보고받은 간부는 2차 가해 운운하며 피해자 여군들에게 직접 연락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그러고선 한 달 넘게 지휘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 한술 더 떠 파일을 지우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며 미적거리는 통에 제보한 병사가 언론에 폭로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공군은 뒤늦게 부랴부랴 노트 작성의 주범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보고 계선에 있는 2명의 간부를 징계 의뢰했다.

그런데 이 기사에도 어김없이 여군을 뽑지 말자는 댓글이 달렸다. 여군이 없으면 애초에 이런 일도 없었을 거란 얘기다. 이상해 보이지만 병영의 일상에서 낯선 논리는 아니다.

피해자에게서 문제 원인 찾는 폐습

예전에 일일 결산 회의를 사우나에 가서 하는 지휘관들이 있었다. 회의 참석자가 모두 남군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부대에 여군이 전속 오면 오붓한 '사우나 회의'는 할 수 없게 된다. 아마 지휘관은 부대에 여군이 없었으면 그런 불편도 겪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여군을 뺀 채 결산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부대에 여군이 오면 훈련 나갈 때 종전과 달리 여성 막사와 화장실, 샤워실을 더 마련해야 하니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에도 여군이 없었으면 덜 수고로웠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2021년 고 이예람 중사는 성추행과 2차 피해를 겪은 뒤 새로운 부대로 전속을 갔다. 그러나 새 부대엔 '저 여군은 아무나 신고한다, 조심해야 한다'는 황당한 소문이 퍼져있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고질적인 폐습은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폐습도 '여군이 없었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인식에서 출발한다. 여군이 있으니 성추행도 벌어지고, 전도유망한 군인이 가해자가 되어 고초를 겪는다는 것이다.

'군인'이 아닌 '여성'으로 타자화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부사관 임관식'에서 신임 부사관들이 경례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여군을 없애면 일거리와 문제가 없어질 거란 왜곡된 인식이 군 안팎에 여전히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연원은 깊다. 여군들의 병과는 오랫동안 '여군'이었다. 1990년까지 그랬다.

병과는 임무를 중심으로 '보병', '기갑', '수송', '보급' 등으로 나뉘는데 여군의 임무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엔 다수의 여군이 행정 업무를 보고 비서 일을 했다. 당연하게 남성의 공간인 군대에 '여성의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해서 여군을 뽑아둔 것이다.

이처럼 남군의 필요에 시작점이 찍혀 있으니 자꾸 '군대에 여자가 필요하냐?'는 질문으로 회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조직에서도 '여성이 필요하냐?'는 이상한 질문은 유효하지 않다. 사람 중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으니 어느 조직에나 남성도 여성도 자기 의지에 따라 존재할 수 있는 것뿐이다.

사회 저변에서 '군대에 여자가 필요하냐?'는 이상한 질문이 유효한 이상 여군을 상대로 벌어지는 범죄와 차별의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병사들이 상관인 여군 간부를 '계집'이라 부르며 노트를 만들어 성희롱할 수 있었던 건 병영에서 여군이 '군인'이 아니라 '여성'으로 타자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계집파일을 만드는 이들도, 2차 가해 운운하며 피해 여군에게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한 간부도, 뉴스를 보고 여군을 없애자고 댓글 다는 이들도 다 그런 인식에 터 잡고 있다. 타자는 언제든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다. 그리하여 여군은 여전히 군대에서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다.

지난해 기준으로 여군은 전체 간부의 8% 정도에 불과하다. 한창 여군 정원(TO)을 늘리는가 싶더니 다시 제자리걸음이다. 정원을 두는 것부터 문제다. 군인이 될 능력과 자격만 갖췄다면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 운운하며 여군을 타자화하지 못한다. 여성이 남성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지 않듯, 여군도 남군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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