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8월 27일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임관식에서 신임 부사관들이 경례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2017년, 병사로 군대를 전역하고 1년쯤 지났을 때였다. 함께 근무했던 군무원의 결혼식에 갔더니 오랜만에 만난 간부들이 많았다. 안부를 나누던 중에 '군인권센터에서 일하지 않느냐?'고 묻는 부사관이 있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잠시 망설인 그는 최근 국방부에서 하달된 공문이 하나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공문은 직업군인의 관사 보증금을 최대 900%, 9배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내용이었다. 당시 민간투자사업방식(BTL)로 지어진 86㎡ 관사 아파트의 보증금은 1170만 원이었다. 국방부의 계획대로였다면 1억 530만 원으로 인상될 터였다.
군인권센터가 문제를 제기하자 국방부는 관사 공급 대비 수요자가 많은 상황에서 신축 부지가 부족하니 간부들을 민간 주택에 살게끔 하려는 장기 계획의 일환이라 밝혔다. 대신 관사 및 간부 숙소에 살지 않는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월 8만 원의 주택수당을 30만 원으로 증액하고, 군인공제회에서 전세금의 70%를 저리에 대출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사를 싼값에 제공해온 건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주거가 안정적이지 않은 직업군인들을 위해 마련된 배려 조치였다. 군부대는 서울 도심에도 있고 강원도 산간에도 있다. 어디에 근무하냐에 따라 주거비 부담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에서 주거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들쑥날쑥한 부담은 오롯이 군인들의 몫이 된다. 떄문에 군인들이 주거 고민 없이 근무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관사나 간부 숙소를 제공해온 것이다.
그런데 보증금을 9배 올리고, 민간 주택 전세금 저리 대출을 신설하고, 주택수당을 올리겠단 건 사실상의 '관사 퇴거 명령'이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목돈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군인공제회에서 돈을 빌려 민간 주택에 나가 살면서 주택수당으로 이자를 보전하라는 것이다. 군이 군인의 주거 문제 해결을 개별 군인에게 떠넘기려 한 것이다. 당시 국방부는 77% 수준의 관사 거주 인원 비율을 40%까지 낮추는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근무지에 따라 주거 부담이 제각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간부들은 근무지를 이동할 때마다 집과 대출을 알아보러 뛰어다녀야 할 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갑자기 이자 수입이 생긴 군인공제회밖에 없게 된다. 다행히 이 계획은 일선 간부들의 반발 속에 기획재정부 협의 과정에서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직업군인들 입장에선 국가에 배신감을 느낄 법한 해프닝이었다.
직업군인들의 주거 문제는 여전히 화두다. 관사가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왕에 있는 관사들도 노후한 곳이 많아 사람이 실제로 살기엔 어려워 보이는 경우도 많다. 좀처럼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주거 수요 충족은 물론, 환경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국방부는 수도권 노후 관사를 철거 후 신축하는 조건으로 신축분에 청년 공공주택을 포함하는 고육책을 내기도 했다.
올해부터 관사 및 간부 숙소에 살지 않는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주택수당이 27년 만에 2배 인상되었다. 그간 우리 군은 관사가 모자라 민간 주택에서 거주하는 군인에게 관사 거주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월 8만 원씩 주거비를 보전해줬다. 1995년에 8만 원이었는데, 2022년이 되어서야 16만 원으로 오른 것이다. 8만 원이나 16만 원이나 요즘 금리와 주거비를 고려하면 턱도 없는 금액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마저도 27년 만에 간신히 이뤄진 인상이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 강원도 인제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에서 훈련하는 군 장병들. 자료사진. ⓒ 육군
한편, 올해 예산안에 함께 반영될 것으로 보였던 직업군인 당직비 인상은 무산됐다. 통상 14시간 당직 근무를 서는 직업군인들이 받는 당직수당은 1만 원이다. 국방부는 직업군인의 당직수당을 일반공무원과 마찬가지로 3만 원으로 인상하려 했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대신 국방부는 2027년까지 당직비를 현실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외에도 직업군인의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의 상당수가 무산되거나 삭감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병사 월급을 올리느라 간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말하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이다. 간부 처우를 개선하려면 병사 처우가 내려가야 하고, 병사 처우를 개선하려면 간부 처우가 내려가야 하는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직업군인들의 처우가 열악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노동조합도, 직장협의회도 결성할 수 없는 직업군인들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직업군인들에겐 떠나거나, 참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 역시 직업군인 처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떠날 사람 떠나도 인구 대비 병력 자원이 충분해 다시 충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인구절벽에 대비해 점차적으로 병사를 줄이고 간부를 늘리자며 부사관 정원을 늘려뒀는데 부사관 지원율은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 이미 정원의 20%가 비어있는 상태다.
호의호식하려고 직업군인이 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는 곳이 일정치 않고,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임관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공무원과 달리 정년도, 연금도 보장되지 않는다. 나라와 시민을 위한 희생을 어느 정도 각오하지 않는 한 택할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국가가 무한한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열악한 관사, 현저히 부족한 근무 지역 인프라, 현실성 없는 수당 같은 문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지 군인들의 헌신으로 때울 계제가 아니다.
예로부터 배고프고 살기 힘든 군인이 나라를 잘 지켰다는 말은 들어본 바가 없다. 직업군인도 사람이고, 이들에게 군대는 엄연한 '직장'이다. 견디기 힘들면 구성원이 떠나고, 갈만한 직장이 아닌 것처럼 보이면 새 사람도 오지 않는다.
헌신과 희생의 화신 같은 신화적인 이미지에 기대선 군대를 유지할 수 없다. 나랏돈 아끼려다 군대가 비는 꼴을 목도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군대가 '당연히' 유지될 거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