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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한겨레] ‘페미’로 가득해야 할 군대

작성일: 2021-09-27조회: 465

[숨&결] 방혜린ㅣ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최근 군대 내 여군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한 대학 강연 자리에 나갔다가 해당 학교가 몇몇 학생으로부터 민원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 극단주의적이고 여성중심적인 ‘페미 강연’ 같은 것이 우리 대학에서 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 강연이 딱히 페미니즘 강연은 아니었지만, 강연 내용과는 별개로 페미니즘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군대에서 말이다.

(민원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든)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단순히 성차(性差)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여성의 권리 주장에 국한되지 않는 개념이다. 이제 페미니즘은 여러 단계와 시대를 거쳐, 과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오랜 시간에 걸쳐 구현해낸 사회질서와 계급에서 비롯한 폭력, 차별에 대해 기민성을 가지고 저항하고자 하는 이념과 의식구조에 더 가깝게 됐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단지 섹슈얼리티나 젠더의 차이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성에 대해 우리가 어떤 감수성을 가져야 하는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얘기하는 학문이자 실천이념이다. 페미니즘의 영역에는 인종, 사회적 계급, 성소수자, 가난, 노인, 아동, 환경, 평화, 동물복지 분야까지 교차된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 특히 군대를 둘러싼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적인 접근이 반드시 요구된다. 국내 그 어떤 조직보다도 초남성사회이며, 가부장적이고 중앙집권화된 지배권력 체계가 짜여 있고, 군기 유지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용인되며, ‘진짜 사나이’로 표준화된 정상 남성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일상화되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혹은 진짜 사나이가 그려내는 이상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먼 남성까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대개 이들은 피해자의 자리에 쉬이 놓이기 마련이다. 조직이 규정하고 요구하는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관리와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로 화제를 끌었던 <디피>(D.P.)에 특히 남성들이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조건에서 상위계급을 차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별뿐 아니라 재산, 가족, 성적 지향, 내향적인 성격, 장애 혹은 질병, 사회적 계층, 출신 학교나 학력, 심지어 고향까지. 사람의 사회적 처지라는 것은 너무나 촘촘히 구성되어 있어서 언제든 계급이 역전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서로 피해-가해의 크기와 정도는 조금씩 다르고,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였을지 몰라도 분명 피해자인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군대, 조직,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감각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피해자-가해자 위치가 구성되는 역학이 바로 차별과 혐오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정당한 계통을 통해 내려오는 명령과 지시가 아님에도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굴복해야 하고, 내향적이고 여성적인 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의 타깃이 되고, “까라면 까”라는 방식으로 부대를 운영하는 것 모두가 ‘군대’라는 이름으로 의심 없이 이루어져왔던 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게 군대 문제를 개선해나갈 때 가장 첫번째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흔히 군대 문화라고 일컫는 것부터 ‘여자는 왜 군대 안 가냐’는 질문에 국가가 내놓았던 결정까지 이 모든 것은 남성의 언어로 구성되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던 ‘진짜 사나이’ 규범을 통해 계급과 문화를 구성하고, 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자 소수자가 가진 특성들을 군인답지 못하다고 폄하하고, 차별을 명문화했던 것이 과연 당연한 건지. 이 시스템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군대가 우리를 때로는 피해자로, 가해자로 ‘임명’했던 것이 아닌지. 군대에 ‘페미’가 늘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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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29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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