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홈 > 뉴스 > 뉴스레터

[기고글] [한겨레] 피해자를 위한 군대는 없다

작성일: 2021-08-14조회: 51

[한겨레S] 거듭되는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

피해자는 무력감 학습, 가해자는 대담해져

지난 6월8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분향소에 고 이아무개 공군 중사의 어머니가 딸을 떠올리며 쓴 편지가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군인권센터에 고충을 호소하는 상담 건수는 한해 2천여건 정도다. 수많은 상담이나 제보들이 모두 제각각 사연과 사건을 담고 있지만, 하나 공통된 점이 있다면 바로 “부대에는 절대 비밀로 해달라”, “익명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피해자가 (변호인이나 신뢰관계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군과 같이 물리적·문화적으로 폐쇄적인 조직은 아무리 가려도 피해자가 어느 정도 특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병사들은 24시간 영내에서 지내기 때문에 ‘신고자로 특정될 경우’ 압박이 훨씬 크다. 군인권센터가 받는 유효상담 중에서도 공론화 과정이나 법적 대응에 이르는 상담 건수가 훨씬 적은 이유이다.

피해자가 대응을 포기하는 이유가 다양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고를 해도 이후 피해자를 보호할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신고를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피해자가 조직을 이탈했으면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다. 실제 국방헬프콜의 경우, 접수된 신고 내용 중 군사경찰에 인계한 것보다 지휘관에게 넘긴 건수가 훨씬 많다. 수사기관이 사건이 발생한 부대 지휘관에게 ‘알아서 해결해보라’며 떠넘기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과거와 달리 요즘 피해자들은 대개 처음엔 군대 안에 마련된 내부 경로를 통해 피해 사실을 호소한다. 하지만 국방헬프콜 사용 빈도를 보면, 2017년 6만4149건에서 2020년 5만8378건으로 큰 감소추세에 있다. 이번 공군 성폭력 피해자 사망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피해자 보호 움직임보다 어떻게 하면 부대를 보전할 것인가 하는 논리가 먼저 작용하자 신고 자체를 꺼렸음을 알 수 있다. ‘무사고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군이 사건 수 자체를 줄이려고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경향도 있다. 상급부대의 감찰과 조사가 두려워 피해자를 회유하고, 신고를 못하게 방해하는 행위도 피해자가 끝내 대응을 포기하는 주요 원인이다. 결국 피해자는 만신창이가 되고, 단체생활에 균열을 냈다는 이유로 ‘꼰잘러’(사고를 고발하거나 신고한 이를 비꼬아 일컫는 군대 은어) 취급을 받으며 군생활이 끝날 때까지 지속적인 2차 피해 상황에 놓이고 만다.

이런 상황이 잦아지는 게 위험한 이유는 피해자가 학습하게 될 무력감 때문이다. 앞선 피해자가 고립되고 끝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끝없는 2차 피해에 놓이는 것을 본 다른 피해자들이 신고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신고되지 못한 사건은 음지로 숨게 된다. 더 나쁜 상황은 가해자도 ‘학습’하는 경우다. 어차피 신고되지 못할 사건이란 생각으로 가해자의 행위는 더욱 대담해지고 잦아질 것이 자명하다. 이 끝없는 굴레에서 군은 ‘내부의 적’ 때문에 망가지고 병들어간다. 줄어드는 신고 건수에 대해 군이 ‘이만큼 문제 해결을 했다’고 자찬할 게 아니다.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숨고 있는가’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2013년, 2014년, 2017년, 2021년 5월에도, 드러나지조차 못한 어떤 해, 어떤 달에도 피해자들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

공군 성폭력 사망사건이 여론화된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사건 수사도 수사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신뢰회복에 군이 어느 수준까지 노력해왔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 국방부 장관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민간이 참여한 수사심의위원회를 꾸렸다고, 군특임검사를 도입했다고, 민관군 합동위원회를 꾸려 과제 선별을 했다고 군은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군인권센터에는 “익명이 보장되냐”고 묻는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과연 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병들의 신뢰를 얼마나 회복했을까?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예비역 해병대 대위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076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