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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군사법원에서 목격한 경악스러운 광경

작성일: 2021-07-08조회: 406

[김형남의 갑을,병정] 2021년에도 군 사법체계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처음 군사법원에 방청을 갔을 때의 일이다. 헌법에는 재판은 공개가 원칙이라 쓰여 있지만 군사법원 방청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다. 대부분 부대 안에 있어 하루 전에 미리 방청을 통보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렵다. 

출입에 걸리는 절차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재판 시작 30분 전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법정에는 나처럼 일찍 온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처음에는 군사법원 관계자인 줄 알았다. 그는 마음대로 법정 안을 돌아다니며 검사석도 한 번 훑어보고, 판사석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법정을 나가 사무실로 들어가선 믹스 커피를 한 잔 받아 마셨다. 관계자들과 화기애애한 대화도 나눴다. 

재판이 시작되고 보니 그가 피고인 변호사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을 듣고 경력 검색을 해보니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였다. 짐작컨대 군에서 일하던 시절의 추억이 살아나 검사석이며 판사석을 돌아본 모양이었다. 법원 관계자들과도 면식이 있어 보였다. 아마 선·후배 사이일 것이다. 

민간 법원에선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본 경험이 없어 낯설고 이상했다. 피고인의 전관 변호사가 법정을 안방 드나들 듯 돌아다니고, 공판을 앞두고 군 판사, 군 검사, 법원 관계자를 만나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법원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재판에 막강한 영향력 행사

군에서는 지휘관에게 법률 조언을 해주는 법무참모, 기소와 수사를 맡은 군 검사, 국선 변호인을 맡은 법무관, 군 판사가 옹기종기 인접한 사무실에 모여 일을 한다.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 검찰총장이 한 데 모여 일하며, 점심시간엔 밥도 같이 먹는다고 가정해 보면 군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다. 공정하지 않은 사법체계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떠안는다. 하여 공정하지 않은 군 사법체계의 피해자는 관할에 속하는 모든 군인들이 된다.

군 사법체계 개혁은 1993년 군 법무관 20명이 군 사법제도 개선 건의를 직접 제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논의다. 세부적인 사항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개선 과제로 꼽히는 내용엔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언제나 핵심은 지휘관의 지휘권으로부터 수사와 재판을 독립하는 것이지만 번번이 장성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장성들은 수사와 재판은 지휘권 확립의 원천이라 굳게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대통령이 수사와 재판이 통치권 확립의 원천이라 주장하면 국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군은 '군의 특수성'을 이유로 이 황당한 주장을 근 30년간 이어왔다. 그리고 그 30년 동안 군의 엉터리 같은 수사와 재판이 수도 없이 많은 피해자들을 벼랑 끝에 내몰고, 그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 중사 사망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2021년에도 군 사법체계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철옹성 같던 군 사법체계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적이 있다. 2014년 육군 제28사단에서 윤 일병 구타·가혹 행위 사망사건이 발생한 뒤의 일이다. 이때 군은 심판관 제도와 관할관 확인조치권을 사실상 포기했다. 

심판관 제도는 판사가 아닌 일반 장교 중에 관할관, 즉 부대 지휘관이 임명한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다. 관할관 확인 조치권은 판사의 판결에 지휘관이 결재를 해줘야 효력이 생기게끔 해놓은 제도다. 

이 과정에서 지휘관은 자유형, 재산형, 자격정지형에 대해 선고된 형의 3분의 1 미만의 범위에서 감경을 결정할 수 있다. 판사도 아닌 일반인이 법봉을 두들기고, 그 결과마저 지휘관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5년 전만 해도 군대 내에 버젓이 살아있었다. 군 사법체계에 대한 여론의 무수한 질타 속에 두 제도는 2016년 군사법원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사문화된다. 

그러나 이 두 권한은 사라졌으되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지휘관은 군 판사 인사에 개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군 판사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원하면 언제든 재판 진행 상황도 보고받을 수 있다. 굳이 심판관을 재판정에 집어넣고, 감경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지휘관이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군 입장에서는 포기해도 될 법한 권한을 내어준 것에 불과하다.

최근 국방부는 군 사법체계 개혁안이라며 고등군사법원(2심 법원) 폐지안을 들고 나왔다. 무슨 대단한 개혁인 마냥 선전하지만 이 역시 2016년의 개혁과 마찬가지 성격이다. 1심 보통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항소 법원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것은 군 사법체계 개혁의 본질에서 한참 빗겨간다. 수사와 재판에 관한 권한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군 사법체계가 밥줄인 이들

왜 군은 군 사법체계, 구체적으로는 수사권과 군사법원을 이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여기에 얽힌 이해관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지휘관은 부대 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수사의 범위와 내용, 심지어 재판의 방향까지 모두 지휘해야 부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군 법무관과 군사경찰에겐 군 사법체계가 밥줄이다. 특히 장기 군 법무관에게는 전역 후 안정적인 수익 창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송사에 휘말린 군인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군 법무관 출신 전관 변호사다. 군에 인맥이 넓을수록 유능한 변호사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장기 군 법무관 입장에선 군 사법체계가 유지되어야 전관 타이틀이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으니 군 사법체계 개혁에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 된다. 군 사법체계 유지에 이해관계가 걸린 이가 너무 많으니 반대도 극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에 군 사법체계 개혁에 반대하는 논지를 제시하는 학자나 법조인의 경력을 뒤져보면 대부분 예비역 장성이나 장기 군 법무관 출신 법조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사 사망 사건의 면면에서 드러난 군사경찰, 군검찰, 군 법무 라인의 부실 수사, 의도적 사건 은폐, 조작 지시 등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에 부끄러울 지경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군 사법체계 개혁이 화두에 올랐다. 또 다른 죽음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같은 논쟁과 슬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군 사법체계 개혁은 피해 갈 수 없는 과제다.  

군사범죄 비중 8% 불과

군사법원 1심 법원이 다루는 연간 접수 사건은 2019년 기준 총 2839건이고, 군사범죄는 이 중 약 8% 정도다. 92%는 형법 주요범죄, 성범죄, 폭력 범죄, 교통 범죄 등 비 군사 범죄다. 군사법원에 기소된 사건의 수로 미루어 볼 때 사건 수사를 맡은 군사경찰, 수사·기소를 맡은 군 검찰도 실제 다루는 사건 대부분 비 군사 범죄이고, 군사 범죄의 수는 얼마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군사 범죄로 인하여 평시에도 군 수사기관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 사법체계 개편의 핵심은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심급에 따른 관할 분리는 부차적 문제다. 그러자면 심급에 따른 관할이 아닌 범죄 유형에 따른 관할 분리가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여러 형태의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평시 군사체계를 모두 민간으로 이양하는 안(권은희 의원안), 평시 비 군사 범죄에 대한 수사·재판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안(김진표 의원안), 성폭력 범죄에 대한 재판 관할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안(박주민 의원안), 고등군사법원만 폐지하는 안(민홍철 의원안) 등이다. 

국민의 요구는 분명하다. 군에서 더 이상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평시 군 사법체계를 민간으로 이양하든지, 그것이 정말 어렵다면 비 군사범죄 관할이라도 민간으로 이양하는 방향으로 법률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국회가 국방부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그 후과는 또 다른 죽음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에도 국방부의 반대가 극심하다고 한다. 발목을 잡아도 할 일은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중사의 억울한 죽음 앞에 대한민국이 져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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