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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기괴한 규정들... 군대는 여전히 성범죄자에게 관대하다

작성일: 2020-11-12조회: 793

[김형남의 갑을,병정] 성폭력 대처 진일보했지만 아직도 미흡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군 복무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의미로 병사들이 읊는 자조다. 그렇다. 흘러가는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지언정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그렇게 국방부의 시계가 간 만큼 군대도 바뀌었다. 변화가 더디다고 느껴질지언정 바깥세상을 역행하여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국방부의 시계는 앞으로 가고 있다.

지난 8월 군이 징계 기준에 디지털 성범죄를 추가했다. 사건 초기 대응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거나 2차 가해를 하는 등 개별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군의 감수성에는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계속되는 성폭력 이슈를 다루면서 문제를 대하는 국방부의 자세가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군인·군무원 징계 양정 기준에 디지털 성범죄 개념이 등장한 일 역시 마찬가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군기가 빠져서 일어난 일?

몇 년 전만 해도 국방부는 법령 규정상에 '성군기 사고'라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사용하며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군기 문란으로 치부해왔다. 쉽게 말해 성폭력을 가해자들이 군기가 빠져서 저지른 사고쯤으로 인식해 온 것이다. 폭력의 피해자는 피해 당사자지만 군기 문란의 피해자는 군대 조직이 된다. 자연히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의 방향도, 초점도 다르게 설정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존재는 자연스레 지워진다. 홍길동이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애석한 마음으로 조선을 떠났듯, 숱한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성폭력이라 부르지 못하는 참담한 심경으로 군문을 떠났다. 간혹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았다.

2013년에는 육군 제15사단에서 남군 상관이 부하 여군을 10개월 가까이 괴롭히고 성추행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고, 2014년에는 육군 제17사단에서 사단장이 성추행 피해 여군을 집무실로 불러 성추행한 죄목으로 긴급체포 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군에서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용어 사용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도 거세졌다. 민간에서 성폭력을 '성 풍기 사고'라고 부르지 않듯, 군에서도 성폭력을 군기 문제가 아닌 젠더와 권력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지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국방부의 '군내 성폭력 범죄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7~2019년 3개년간 남군이 여군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기소된 사건은 158건에 달하지만, 여군이 남군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기소된 사건은 2건에 불과하다. 이 중 대부분은 가해자가 상급자, 피해자가 하급자였다.

잇따른 지적 속에 군은 2015년 1월 '국방부 군인·군무원 징계업무처리 훈령' 상 '성 군기 위반 사건'을 '성관련 규정 위반 사건'으로 모호하게 개정하였다가, 같은 해 9월 '성폭력 등 사건'으로 다시 개정하였다. 여전히 군 내 곳곳에서는 낡고 부적절한 용어를 혼용하고 있지만, 이제 적어도 성폭력 가해자를 '군기 위반자'라 부르진 않는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잘못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측면에서 군이 성 군기 사고를 성폭력이라 명명한 일은 의미 있는 변화였다.

 

 군부대 성범죄

▲ 군부대 성범죄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군기 사고로 치부하곤 한다. 군인의 디지털 성범죄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이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군에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는 2019년 7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육군 탄약지원사령부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부대 내에서 불법 촬영물 유포 계획을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니던 병사를 목격한 다른 병사의 신고로 다행히 유포를 막을 수 있었던 사례도 있었고, 안타깝게도 이미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어 피해를 입고 있었던 피해자도 있었다. 군성폭력상담소는 군에 장병 대상의 꾸준한 성인지 교육과 성폭력 범죄 예방 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그러나 언론의 반응은 달랐다. 군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빈발하는 현상을 2019년부터 전면 확대된 병사 핸드폰 사용과 결부해 기강이 해이해진 탓으로 몰아갔다. 부대 내에서 핸드폰을 쓰게 해주니 군기가 문란해지고, 불법 촬영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는 투였다. 이러한 주장은 'N번방 사건'의 공범 중 군인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층 더 많이 등장했다.

물론 가해자의 손에 스마트폰이 있었기 때문에 불법 촬영물을 쉽게 유포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가 스마트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그런 논리라면 디지털 성범죄의 확실한 예방책은 전 국민 스마트폰 압수가 된다.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디지털 성범죄를 가능하게 만든 요인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과 성차별이지 전 국민의 95%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건 군대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성범죄는 매우 복잡한 형태의 신종 성폭력이다. 그 원인을 '기강 해이'로 납작하게 만드는 순간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만다.

이 와중에 군이 징계 기준에 디지털 성범죄를 명문화한 것은 연이은 군인의 디지털 성범죄를 기강 해이가 아닌 성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유의미한 신호로 보인다. '국방부 군인·군무원 징계업무처리 훈령'에 따르면 간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면 심한 경우 파면에 이르고,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예외 없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받게 된다. 병사들도 강등 아니면 군기 교육을 받는다. 형사 처벌은 징계와는 별도의 절차로 이뤄진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유의미한 신호, 그러나...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은 촬영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소지만 하고 있어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군 징계 기준은 촬영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때만 소지를 징계 대상 행위로 판단한다. 상위법이 범죄로 규정한 행위를 행정부처 훈령이 축소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불법 촬영물은 한 번 유포되면 회복이 어려운 광범위한 피해를 낳는다. 소지만 해도 처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 소지를 징계 대상으로 보지 않은 것은 군이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은 훈령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신뢰관계인 관련 조항을 비틀어놨다. '국방부 군인·군무원 징계업무처리 훈령' 제28조에 따르면 피해자가 징계위원회에 신뢰 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하게 할 수 있는데, 종전에는 제한이 없었던 것을 개정 훈령에서는 부대가 지정한 상담관 또는 피해자의 가족으로 좁혀두었다.

신뢰관계인은 피해자가 참고인으로 신문을 받을 때 여타의 사정으로 불안, 긴장을 느낄 수 있어 동석하는 사람이다.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가 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굳이 군이 정해줄 까닭이 없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도 신뢰관계인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징계 과정에 외부인의 개입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는 처사다. 다시 종전의 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외에도 군이 정의하는 '성폭력 등'에는 일반 사회에서 성폭력으로 보지 않는 괴상한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훈령 상 병사에 대한 징계 '적법성 심사 기준'에는 '성폭력 등'에 성폭행과 항문성교, 기타 성추행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놓았다. 성폭행과 기타 성추행은 그렇다고 쳐도 항문성교는 생뚱맞다. 국가 법령이 성관계 체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사생활 침해가 아닌가. 무슨 수로 적발하여 처벌하려는 것인지도 알 도리가 없다. 누구와 항문성교를 해야 처벌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휴가 나가서 여자 친구와 항문성교를 하면 처벌받는 것인가?

개정 전 훈령에 항문성교 대신 계간(鷄姦)이라는 단어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아마 군의 의도는 동성 간 성관계를 징계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계간은 동성 간 성관계를 비하하는 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관계를 성범죄에 해당하는 성추행과 한 묶음으로 보고 징계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이처럼 모호한 조문으로 누구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법문에 속어를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성소수자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어 수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성폭력을 대하는 군의 인식 체계에는 여전히 되짚어 보아야 할 점이 많다. 일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성범죄에 유난히 관대했던 오랜 역사의 업보다. 정책 결정권자의 방향과 의지가 무색하게 일선 부대에서는 성폭력과 성차별에 무감한 경우도 많다.

성범죄 사건 수도 여전히 많다. 지난 3년간 군인이 성범죄로 기소된 사건이 961건이나 된다. 2017년 369건, 2018년 297건, 2019년 295건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505건이 민간인 대상의 성범죄다. 군 전반의 성인지 감수성과 예방 교육 시스템도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 군대도 변한다. 지나온 시간이 이를 입증한다. 사회보다 몇 발짝 뒤처지는 한이 있을지언정 변화의 흐름을 거꾸로 탈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굳이 뒤처질 까닭이 있겠는가. 외부의 지적에 귀 기울이고, 피해자들의 처지에서 두 번, 세 번 고민한다면 만연한 성폭력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대는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군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9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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