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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성소수자 성폭력 피해자 '불편하다'는 군대, 뒤집힌 판결

작성일: 2019-08-08조회: 66

방혜린(군인권센터 간사, 예비역 해병대 대위)

2018년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2심 무죄 판결 당시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재판장 홍창식)은 무죄 판결의 이유로 진술 신빙성부족·항거 불능한 수준의 폭행 또는 협박 부존 등과 함께 "가해자가 피해자의 의사를 오해할 여지가 있었으므로 가해자에게 '강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피해자와의 신상 면담을 통해서 피해자가 레즈비언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1심 재판부는 이 점을 인정해 판결문에 인용하기도 하였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자신을 상대로 성애적인 개념에서 호감 내지 사랑하는 감정이 있었다는) 의사를 오해하였다, 피해자와 유사 연애 관계였다고 주장한 것이라면, 2심 재판부에서도 마찬가지로 1심 재판부에서 인정하였던 피해자의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해서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돌연 피해자가 레즈비언이라는 점은 2심 재판부에 이르러서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이 정도면 피해자의 성적지향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피해자의 성적지향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은 쟁점이었던 것처럼.

 

"성소수자는 빼주면 안 되냐?"

 

사건을 지원하게 되면서 사건과 관련해 선배 장교들의 반응을 듣게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는 얘기는 다름 아닌 공대위가 사용하는 사건의 공식명칭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해군 문제인 것, 가해자가 나쁜 놈인 것도 당연한데 굳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얘기해야 하냐는 것이다. 단순히 '해군 여군 성폭력 사건'이라고 명명해도 이 사건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왜 불편한 명칭을 사용하냐는 불만이었다. 이 불만 안에 숨겨져 있는 의도는 사실 '피해자가 성소수자'인 점이, '해군'에게는 불편하다는 것이다. 끔찍하고 악랄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해군인 것만큼 말이다.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없는 군대 내 성소수자

 

인구의 5~8%는 성소수자 인구라고 많은 통계가 말하고 있지만,(각주1) 군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주변에 성소수자 군인이 같이 근무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이뤄지는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차별, 탄압, 배제는 계급과 계층을 불문하고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문제임에도 그렇다. 대부분의 지휘관은 좁게는 동성애자, 넓게는 성소수자를 두고 '남자'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공동체'에서 혹여나 '군기'가 '문란'해지는 일이 발생할까 우려한다. 군인들의 인식체계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동성애자 남군에만 집중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점이 그러하니 관련 법령이 당연히 행위중심적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군형법 92조 6이 그렇고, 부대관리훈령이 그렇다. 동성애자 남군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고 필요하면 분리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처벌한다. 동성애자 여군이나 다른 성소수자를 고려하여 규정한듯한 법령 조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 「병역법」 제3조 1항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연한 법률적 지위를 가진 존재는 오직 남성에 한한다. 이 기조에 맞춰 병역법을 포함한 제반 법령들은 병역의무를 수행할 남성은 과연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인가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선별과정을 통과한 오직 '진짜 사나이'만이 신성한 병역의 의무인 '현역복무'를 수행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 군대는 더 이상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입대 결격사유가 될 수도 전역 사유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신체등급 기준에는 여전히 '성주체성 장애'가 결격사유로 남아있는 등 여전히 차별과 배제의 흔적들은 잔존하고 있다. 신체적으로 다른 군인과 다를 바가 없는데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진짜 사나이'에서 나를 관리하는 수많은 규정과 법령에 둘러싸인 '관리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들이 열심히 쌓아 올린 가부장적이고 초 남성적인 군대 문화 속에서 성소수자는 그 지위 자체로도 공고한 군대 사회를 해치러 온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얼마 전 군인권센터에서 있었던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 무죄 탄원 기자회견>에서 현역 군인인 피해 당사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내가 동성애자인지 모를 때에는 '훌륭하다', '참 군인이다.',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라고 치켜 주더니, 동성애자임이 발각되고 나서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군 기강을 문란하게 한 범죄자가 되었다."

 

군대 내 소수자로서 이중고를 겪는 성소수자 여군

성소수자 여군은 여기서 여군이라는 특수성까지 더해진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이후 여군과 관련하여 보직 전면 개방, 전방 접경지역 여군 소대장 배치 등 제도적인 면에서 진일보하였지만, 여전히 여군은 성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일단 수적인 부분에서 남군과는 압도적인 차이가 나고 (공교롭게도 여군의 비율 또한 5~7% 남짓이다), 오랜 기간 보직·진급 등에서 차별대우 받았으며, 군대 사회 내에서 '약자'로서 강요되는 역할과 위치가 있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진짜 사나이의 사회를 구성하는 것에 훼방이 되는 것처럼 여군의 여성성 또한 군대 내에서 용인되지 않는 정체성이다. 불과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여군 부사관들은 결혼하면 전역을 해야 했다. 여전히 여군들은 자신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외적으로 '군인다워지길' 요구당한다. 명예남성화된 여군들이 그래도 여군의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여군 창설 70주년을 앞둔 현재까지도 여군 사단장 하나 나오지 않고 있다.

 

여성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인 정체성을 가진 여군은 결국 자신의 안정적인 복무를 위해 자신을 더더욱 숨기는 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가진 모든 정체성을 버린 척해야 한다는 점에서 답이 하나뿐인 선택지를 택하는 것조차 어려운 과정일 수밖에 없다. 어느 하나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과 직업군인으로서의 소명과 군에 대한 충성·조직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많은 성소수자 여군들이 갈팡질팡하며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가상의 수많은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지 않는 많은 이유와 만나는 사람은 있다면서 왜 소개를 안 해주냐는 무례한 질문 사이에서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이 사건은 혐오범죄이다.

 

그렇기에 성소수자 여군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자신의 직속 상관·지휘관에게 밝힌다는 것은 내가 이 사실을 드러내면서까지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함과 동시에, 내가 이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나 자신으로서 복무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행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고민을 거쳐 각오를 다지고 군에 입대하였는지 지휘부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길 바라는 일종의 신호인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참했다. 레즈비언인 것을 빼고는 다른 군인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업무적으로는 더 뛰어났을지도 모르는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은 "남자랑 관계를 안 해봐서 그런 것이다. 남자 경험을 알려주겠다."라고 하며 성폭력을 가했다. 이것은 가해자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문화 내에서 성소수자를 인식하고 있는 체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던 일이다. 오랜 기간 군인들이 쌓아온 군대 문화와 그 조직 속에는 여군도 없고 성소수자도 없다.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비정상이고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며 드러나면 다시 정상의 범주 내로 돌아오게 '교정'하거나 배제한다.

 

이 사건은 단순한 성폭력 사건이 아니다. 성소수자라는 것을 밝힌 피해자를 소위 '교정강간'(각주2)한 부서장, 이를 알고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함장, 연인관계라 생각했고 피해자가 호감을 느낀다고 착각했다며 주장하는 걸 곧이곧대로 들어준 고등군사법원,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소수자 정체성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실, 그리고 이 사건을 지칭하면서 '성소수자'는 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군인들까지 이 모두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존재를 지우는 행위에 가담한 것이다. 이 사건은 군대 문화가 성소수자 군인에게 가한 일종의 국가폭력이자 혐오범죄(hate crime)다.

 

이제 이 사건은 대법원의 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의 2심 재판 결과를 두고 많은 논란과 쟁점이 있었지만, 앞으로 남은 단계에서는 이 사건이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일 뿐 아니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탄압·배제해왔던 군대 조직 차원에서 발생한 혐오범죄이며, 2심 법원인 고등군사법원 또한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 가담하여 중범죄자들에게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군인은 성별과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폭력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법원이 이번 사건이 성소수자 여군에 대한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나아가 군대 내 성소수자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 대해 진일보한 판결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주 1) 2017년 미국 갤럽이 34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LGBT 인구조사>, 2018년 일본 하쿠호도DY 연구소가 1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소수자 의식조사> 참조

2)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치료'해준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강간, 추행을 말한다. 그러나 '교정'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고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논란이 있어 "소위 '교정강간'"으로 표기하였다.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토론회 자료집 참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9836&isPc=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