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미디어그룹, 채널 A,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뉴스타파의 본 보도자료 인용을 불허합니다.
여인형·이진우 등 내란수괴의 수족이 된 군사령관들 엄벌 촉구
-내란 핵심임무수행자 엄벌은 내란종식위해 필수불가결–
여인형, 이진우, 박안수, 문상호, 곽종근
이들은 2024년 12.3 비상계엄(이하 ‘비상계엄) 당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수족이 되어 친위 쿠데타의 최선봉이 되었던 군사령관들입니다. 재판은 참 길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가 종료된 지 2달만에 시작된 중앙지역군사법원의 첫 공판으로부터 무려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고, 이들에 대한 선고는 오는 9월 21일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재판 피고인 5인은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오용되어 군이 헌정질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역사적 과오를 반복했습니다. 4.19 혁명부터 80년 광주를 지나 87년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완성된 민주주의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국민의 군대가 언제든 권력의 편에서 시민과 민주주의를 짓밟을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을 그날 이후로 대한민국 전역에 흩뿌린 것입니다.
이에 특검은 피고인 각각에 대해 여인형 징역 30년, 이진우 징역 30년, 박안수 징역 25년, 문상호 징역 20년, 곽종근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12.3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던 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회로 달려나갔던 시민들은 언제든 무장 군인들의 총부리에서 탄환이 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목숨을 걸고 반란군에 맞섰습니다. 시민들이 막아세운 것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1경비단, 특수전사령부 예하 1공수여단, 707특수임무단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예들이었습니다. 오로지 맨몸과 소화기, 목청만으로, 전투태세를 갖춘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처절하게 저지하며 막아세웠습니다.
그러나 국회 경내에서의 봉쇄를 도맡은 수방사령관 이진우는 이 모습을 두고 “당시에 차 안에서 보면 딱 모습이 ‘미국 의회 폭동’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재판 내내 헌정질서수호를 위해 목숨걸고 반란군을 막아세운 시민들을 두고, 도리어 ‘그들로부터 국회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이진우는 45년 전 79년 12·12사태 당시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인 수도경비사령부의 사령관이 었던 장태완 장군과 같은 직책에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장태완 장군은 가용가능한 병력을 최대로 모아 신군부의 반란세력에 끝까지 처절하게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45년 후 그 후배인 피고인 이진우는 장태완 장군과는 반대로 수방사 휘하 장병들로 하여금 국회 경내에 투입되도록 지휘·독려하며 내란에 몰아넣었고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국회와 인근의 상황을 보고하는 등 이번 비상계엄의 성패를 가를 수 있었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자신의 명령으로 출동시킨 부하들을 두고 “사랑하는 부하들이 너무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있다”며 그 반대편에서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겪어낸 시민들을 나몰라라 내팽개치고 우롱했습니다. 또한 “이제 계엄 선포되면 김앤장부터 5대 로펌 선임해서 물어본 뒤에 검토 받아보고 다른 부대 출동하는지 눈치보고 행동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비상계엄을 통해 불러일으킨 국난을 가벼히 여겼습니다.
국군장병들이 평소 상관을 신뢰하고 작전수행에 있어 망설임이 없도록 독려시킬 책무를 가진 자는 바로 비상계엄 당시 국군 최고위직에서 휘하 장병들을 관리·감독할 직무상 책임이 있던 피고인들입니다. 동시에 장병들로 하여금 작전명령이 적법한지 의심의 여지를 군 전반에 싹틔운 것도 바로 피고인들입니다. 여전히 군부독재의 어두운 멍에를 청산하고자 제대로 조망되지도 않는 내부에서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장병들이 있는가 하면 피고인들은 지난 신군부의 과오를 재탕하여 다시 수십 년에 이를지도 모르는 군의 청산과 쇄신의 필요성을 초래했음에도 이를 가벼이 비웃는 것입니다.
피고인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장병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아님에도 피고인들의 범행이 야기한 군에 대한 질타를 그저 묵묵히 감내하며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형 피고인은 스스로 벌인 비상계엄의 여파를 두고 계엄을 극복하고 회복하려는 양심적인 국군장병들과 시민들을 자신의 증언대에서마저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위헌위법한 포고령 1호를 발령하여 군인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조성하고도 “전 하나도 몰랐다”고 증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정보사령관 문상호는 노상원에게 쥐여줄 요량으로 미리 선발한 정보사 요원들을 정보사 모 여단에 배치해두고도 “노상원에게 이용당했다”고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직 특수전사령관 곽종근만이 “온몸으로 저항하시는 시민분들을 보며 현장에 있던 부대원들의 양심이 일깨워졌다”며 국민 앞에 사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휘했던 특전사 장병들이 국회 및 선관위 등지에 일으켰던 폭동행위가 지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년 8개월 간 이들에 대한 재판 기일에 참석하여 이들의 법정에서의 태도, 변론 취지들을 종합하여 시민들에게 여과없이 알리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상당수의 피고인들은 법정을 우롱하거나 특검 측에 역정을 내며 정상적인 소송진행을 방해하기도 하는 등, 이 재판 진행되어온 내내 본인들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전혀 그 의미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아예 용서를 받을 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이에 탄원합니다. 피고인들은 군 장성들로서 각 부대의 사령관과 참모총장을 포함하여 최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 직위에 맞게 위법 부당했던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장병들을 독려하여 항전하기는 커녕, 내란을 사전에 모의하고 계획대로 출병시켰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헌정질서의 수호를 위해 복무해야 할 사명을 지닌 국군으로 하여금 도리어 헌정질서를 파괴하도록 몰아넣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그 죄질에 걸맞은 강력한 처벌을 내리기를 탄원합니다.
시민탄원 참여링크: https://actnow.do/KMwX
2026. 09. 03.
군인권센터
※ 조선미디어그룹, 채널 A, 아시아경제, 한국경제, 뉴스타파의 본 보도자료 인용을 불허합니다.
여인형·이진우 등 내란수괴의 수족이 된 군사령관들 엄벌 촉구
-내란 핵심임무수행자 엄벌은 내란종식위해 필수불가결–
여인형, 이진우, 박안수, 문상호, 곽종근
이들은 2024년 12.3 비상계엄(이하 ‘비상계엄) 당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수족이 되어 친위 쿠데타의 최선봉이 되었던 군사령관들입니다. 재판은 참 길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가 종료된 지 2달만에 시작된 중앙지역군사법원의 첫 공판으로부터 무려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고, 이들에 대한 선고는 오는 9월 21일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 재판 피고인 5인은 대한민국에서 계엄이 오용되어 군이 헌정질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역사적 과오를 반복했습니다. 4.19 혁명부터 80년 광주를 지나 87년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완성된 민주주의 체제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국민의 군대가 언제든 권력의 편에서 시민과 민주주의를 짓밟을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감을 그날 이후로 대한민국 전역에 흩뿌린 것입니다.
이에 특검은 피고인 각각에 대해 여인형 징역 30년, 이진우 징역 30년, 박안수 징역 25년, 문상호 징역 20년, 곽종근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12.3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던 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국회로 달려나갔던 시민들은 언제든 무장 군인들의 총부리에서 탄환이 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목숨을 걸고 반란군에 맞섰습니다. 시민들이 막아세운 것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1경비단, 특수전사령부 예하 1공수여단, 707특수임무단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예들이었습니다. 오로지 맨몸과 소화기, 목청만으로, 전투태세를 갖춘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처절하게 저지하며 막아세웠습니다.
그러나 국회 경내에서의 봉쇄를 도맡은 수방사령관 이진우는 이 모습을 두고 “당시에 차 안에서 보면 딱 모습이 ‘미국 의회 폭동’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재판 내내 헌정질서수호를 위해 목숨걸고 반란군을 막아세운 시민들을 두고, 도리어 ‘그들로부터 국회를 보호하려고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이진우는 45년 전 79년 12·12사태 당시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인 수도경비사령부의 사령관이 었던 장태완 장군과 같은 직책에 있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장태완 장군은 가용가능한 병력을 최대로 모아 신군부의 반란세력에 끝까지 처절하게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45년 후 그 후배인 피고인 이진우는 장태완 장군과는 반대로 수방사 휘하 장병들로 하여금 국회 경내에 투입되도록 지휘·독려하며 내란에 몰아넣었고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국회와 인근의 상황을 보고하는 등 이번 비상계엄의 성패를 가를 수 있었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자신의 명령으로 출동시킨 부하들을 두고 “사랑하는 부하들이 너무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있다”며 그 반대편에서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겪어낸 시민들을 나몰라라 내팽개치고 우롱했습니다. 또한 “이제 계엄 선포되면 김앤장부터 5대 로펌 선임해서 물어본 뒤에 검토 받아보고 다른 부대 출동하는지 눈치보고 행동해야 한다”며 자신들이 비상계엄을 통해 불러일으킨 국난을 가벼히 여겼습니다.
국군장병들이 평소 상관을 신뢰하고 작전수행에 있어 망설임이 없도록 독려시킬 책무를 가진 자는 바로 비상계엄 당시 국군 최고위직에서 휘하 장병들을 관리·감독할 직무상 책임이 있던 피고인들입니다. 동시에 장병들로 하여금 작전명령이 적법한지 의심의 여지를 군 전반에 싹틔운 것도 바로 피고인들입니다. 여전히 군부독재의 어두운 멍에를 청산하고자 제대로 조망되지도 않는 내부에서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장병들이 있는가 하면 피고인들은 지난 신군부의 과오를 재탕하여 다시 수십 년에 이를지도 모르는 군의 청산과 쇄신의 필요성을 초래했음에도 이를 가벼이 비웃는 것입니다.
피고인들과는 달리 대다수의 장병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아님에도 피고인들의 범행이 야기한 군에 대한 질타를 그저 묵묵히 감내하며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형 피고인은 스스로 벌인 비상계엄의 여파를 두고 계엄을 극복하고 회복하려는 양심적인 국군장병들과 시민들을 자신의 증언대에서마저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위헌위법한 포고령 1호를 발령하여 군인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조성하고도 “전 하나도 몰랐다”고 증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정보사령관 문상호는 노상원에게 쥐여줄 요량으로 미리 선발한 정보사 요원들을 정보사 모 여단에 배치해두고도 “노상원에게 이용당했다”고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직 특수전사령관 곽종근만이 “온몸으로 저항하시는 시민분들을 보며 현장에 있던 부대원들의 양심이 일깨워졌다”며 국민 앞에 사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휘했던 특전사 장병들이 국회 및 선관위 등지에 일으켰던 폭동행위가 지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1년 8개월 간 이들에 대한 재판 기일에 참석하여 이들의 법정에서의 태도, 변론 취지들을 종합하여 시민들에게 여과없이 알리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상당수의 피고인들은 법정을 우롱하거나 특검 측에 역정을 내며 정상적인 소송진행을 방해하기도 하는 등, 이 재판 진행되어온 내내 본인들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전혀 그 의미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고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아예 용서를 받을 태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이에 탄원합니다. 피고인들은 군 장성들로서 각 부대의 사령관과 참모총장을 포함하여 최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 직위에 맞게 위법 부당했던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장병들을 독려하여 항전하기는 커녕, 내란을 사전에 모의하고 계획대로 출병시켰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헌정질서의 수호를 위해 복무해야 할 사명을 지닌 국군으로 하여금 도리어 헌정질서를 파괴하도록 몰아넣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그 죄질에 걸맞은 강력한 처벌을 내리기를 탄원합니다.
시민탄원 참여링크: https://actnow.do/KMwX
2026. 09. 03.
군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