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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군의관이 헬기에서 떨어졌는데 국가유공자 아니다?

작성일: 2022-08-25조회: 346

군의관이 헬기에서 떨어졌는데 국가유공자 아니다?

[김형남의 갑을,병정] 이원화된 차별적 보훈 체계, 통합해야 

2021년 7월 12일 오전 10시 36분쯤 경기도 포천시 육군항공대대 활주로에서 의무후송헬기 '메디온' 1대가 환자를 태우기 위해 착륙하던 도중 불시착했다. ⓒ KBS
2021년 7월, 응급환자 후송을 위해 의무후송헬기 메디온이 육군항공대대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 불시착한 사고가 있었다. 육군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조종사의 상황 오인이었다고 한다. 탑승자들은 불시착 과정에서 헬기 폭발 위험성을 이유로 모두 긴급 탈출했다.

5m 상공에서 떨어진 사람 중에는 군의관 A씨도 있었다. A씨는 골절 및 근육 파열을 입고 철심을 박아 넣는 수술을 받았으며 재활 치료도 꾸준히 받았으나 현재까지도 후유증이 남아있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도 겪었다. 결국 A씨는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의병 전역했다.
 

전역한 A씨는 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지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8월 초, 대전지방보훈청은 헬기 사고 당시 A씨가 군의관으로서 응급 환자를 후송하던 업무는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이 아니므로 업무 중 사고로 다쳤지만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냥 '통상적인 직무수행'을 하다 다치면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 A씨는 보훈보상대상자가 되었다.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요건은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을 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이다. 보훈 당국은 관련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러나 모두 어려운 말들이다. 국가유공자는 무엇이며, 또 보훈보상대상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국가 수호, 안전보장, 국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보훈에 등급 매겨 차별하는 방식

'보훈보상대상자' 제도가 도입된 건 2012년이다. 그전까지는 '국가유공자'로 일원화되어있었다. 당시 법률상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순직군경, 공상군경의 정의는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 중 사망 또는 상이를 입은 사람'이었다. 글귀만으로 보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의다. 그러나 불만이 많았다. 보훈처가 교육훈련, 직무수행의 범위를 너무 좁게 봤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사망하거나, 직무상 스트레스나 상급자의 갑질, 폭력을 겪다 자살하거나, 직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치병에 걸리는 등 명확하게 직무수행 '중' 사망한 것이 아닌 경우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놓고도 유공자가 되지 못한 이들이 보훈처를 상대로 수년에 걸쳐 소송전을 벌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국회에서도 유공자의 인정 범위를 넓히기 위한 논의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생긴 것이 '보훈보상대상자' 제도다. 당시 정부는 국가유공자 인정 범위를 넓히기보단, 보훈 제도를 하나 더 신설하는 방향을 택했다.

18대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부가 설명한 '보훈보상대상자' 제도의 도입 취지는 기존의 국가유공자 제도를 이원화하여 보훈대상자 중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은 국가유공자로, '단순히 보상이 필요한 사람'은 보훈보상대상자로 구분하여 보훈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법률에는 이렇게 쓸 수 없으니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 유무'라는 애매한 개념을 끌어다 쓴 것이다. 그렇다면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이며, 그냥 보상만 해주면 될 사람은 누구인가? 실로 모호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제도 형성 과정을 적나라하게 요약하면 공무를 보다 죽거나 다쳤다는 이유로 감히 아무나 '국가유공자'로 예우받게 해달라고 떼를 쓰니 그렇게 둘 순 없고, 항의하는 까닭은 나랏돈 타먹으려는데 있는 것 같으니 '단순하게 보상이 필요한 사람'들을 묶어 둘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이다. 국가유공자의 인정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보훈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자는 제안에 보훈에 등급을 매겨 차별하는 방식으로 화답한 셈이다. 

국가와 다투는 참담한 풍경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이들이 본인이나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이 '단순하게 보상이 필요한 사람'으로 묶이는 것을 모욕적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국가유공자 지정 여부를 두고 벌어지던 소송전은 국가유공자냐, 보훈보상대상자냐, 비해당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새로운 양상의 소송전으로 번졌다. 곳곳에서 내 부상과 내 자식의 죽음이 '국가 수호'와 직접적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변호사를 선임해 국가와 다투는 참담한 풍경이 펼쳐졌다.

언론에 회자가 많이 되는 사건은 때에 따라 재지정 신청, 소송 등을 통해 결과가 뒤집히기도 한다. 이런저런 진상규명을 목적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재조사를 통해 권고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개별 사건을 바로잡는 일 못지않게 제도의 맹점을 들여다보고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정부의 보훈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으면 비슷한 사례는 계속해서 양산될 뿐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과 그 가족을 '부상과 죽음을 빌미로 나랏돈 타 먹으려는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지난 9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용산 미군기지 반환 부지에 호국보훈공원을 조성해 한국판 '내셔널 몰'을 조성해 보훈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한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은 멋진 공원을 보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삶을 책임지는 매일의 모습에서 감사와 존경도 싹트는 것이다. 

박 처장은 같은 날 공무 관련성이 강하게 추정되나 직접 입증이 어려운 질병에 대해서도 공무 관련성을 적극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청년 의무복무자와 제대군인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라는 지시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모호하나, 그 방향이 진정성 있는 구체적 정책으로 구현되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를 이원화하여 헌신을 차별하는 그릇된 제도도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세상에 '돈만 줘도 되는' 헌신은 없다. 예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를 통합하고, 국가유공자 인정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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