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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 [오마이뉴스] 남자 군대 갈 때, 여자들 사회봉사하라는 이들에게

작성일: 2021-04-15조회: 33

 [김형남의 갑을, 병정] 여성 징병 말하는 자, 여성 징병에 관심 없다 

▲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입영장병들이 가족들에게 큰절하고 있다. 2019.1.7

ⓒ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단골손님이 있다. '모병제'란 손님이 그렇다. 인구가 나날이 감소하는 마당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모병제는 복잡다단한 병역 제도의 전반을 둘러싼 논의를 납작하게 만드는 프레임이기도 하다.

병역 의무는 국가가 안전 보장이란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구성원인 국민에게 부과하는 의무다. 따라서 병역제도의 설계는 국가와 시민의 안전보장을 위해 우리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지,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자원이 어디에 얼마나 필요한지, 자원의 수급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징병제와 모병제는 이중 인력자원의 수급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모병제 논의가 선거철에만 반짝하는 이유는 이슈메이커들이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 안전 보장이란 병역 제도의 본질적인 목표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실적인 대안이 나올 수가 없다. 고작해야 모병제를 하면 돈이 얼마 더 든다더라 정도의 지엽적인 논의만 오가다 끝난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방부는 모병제의 '모'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국방부 어디에서도 모병제와 관련한 심층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모병제는 필연적으로 병력 감축 문제와 맞닿는데 국방부가 덩치 줄이는 일에 긍정적일 이유가 없다. 그러니 매번 '핵무기 등 북한의 위협이 여전한데'로 시작하는 시기상조론을 읊는다.

모병제를 정말 도입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이런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 한국을 둘러싼 안보 환경은 어떠한가.

- 안보 환경 속에서 설정해야 할 목표와 전략은 무엇인가.

- 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한국군의 방위 능력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 방위 능력을 갖추는데 병력이 50만 명이나 필요한가.

어떤 질문에는 사회 전체의 숙의가 필요할 것이고, 어떤 질문에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병역 제도 개편은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 정책을 설계하는 가운데 제시되어야 하는 '방법론'이다.

아무 때나 갖다 붙이는 '여성 징병'

이슈메이커들은 이미 이것을 안다. 하지만 싼값에 청춘을 사들여 홀대하는 병역 제도에 화난 사람들을 자극해 표로 만드는 일에 모병제 전환은 잘 먹히는 언어다. 그러니 선거철이 되면 모병제가 단골 손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얄팍한 수에 복잡한 고민이 수반되긴 어렵다.

요즘은 여기에 한술 더 뜨는 이들이 생겼다. '여성 징병'을 말하는 이들이 그렇다. 남성 청년들이 사회의 화두에 오르면서 사시사철 아무 때나 갖다 붙인다.

 

 

류근 시인이 SNS에 남성이 군대 가 있는 동안 여성에게는 사회봉사를 시키자는 발상을 적어 논란이다. 국민 모두가 빠짐없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발상은 병역 의무와는 개념부터 다르다.

이야말로 헌법 개정 사안이다. 대한민국이 설정해 온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주장을 하는 이의 내용 면면을 보면 이런 토론을 하자고 던진 화두로 읽히지는 않는다. 남성이 병역 의무로 고생하니 여성도 고생하자는 취지라면 더 덧붙일 말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른 납세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진 않는다. 세금은 법률이 정한 납세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만 낸다. 그렇다고 세금 낼 일이 없는 사람을 두고 헌법이 정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진 않는다. 국가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합의된 영역에서 정해진 세금을 걷을 뿐이다. 필요와 합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을 두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도 난센스다. 국가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합의된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부과할 뿐이다. 국민개병제는 모든 사람에게 다 군인이 될 것을 요구하는 제도가 아니다. 국가가 정해진 방식으로 국민에게 군인이 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일 뿐이다.

모두가 군대에 가야 헌법 정신에 입각한 공정한 병역제도라는 발상은 국민개병제를 곡해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군대에 가지 않는다. 남성들 중에도 군대에 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얼마간의 기초훈련만 받은 뒤 회사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는 이들이 있고, 국위를 선양한 문화예술인이나 체육인은 병역 의무를 면제받기도 한다.

각각의 제도에 대한 찬반 의견은 차치하고, 그들이 군대에 가기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이롭다는 사회적 판단과 합의가 지금은 그렇다. 물론 국가는 필요에 따라 이러한 제도들을 변경하고 조정하기도 한다.

국가 안보라는 큰 틀에서 고민해야

그렇기에 정말 '여성 징병'을 염원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이들도 앞서 말한 네 가지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여성 징병 역시 모병제와 마찬가지로 병역제도 개편의 한 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징병을 주장하며 정치의 언저리를 도는 이들은 이런 데에 관심이 없다.

어떤 사람은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하자고 하면 그 짧은 시간에 전투 기술을 어떻게 숙달하고 훈련하느냐는 비판을 하다가, 돌연 여성 징병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면 여성도 군 복무를 하면 남성의 군 복무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평등해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어떤 사람은 모병제를 하면 인건비가 늘어 국가 예산이 부담된다고 반대하다 여성도 다 징집해서 비전투분야의 업무를 맡기자고 한다. 앞뒤가 안 맞는 주장들이 나오는 건 병역 제도의 근간이 되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고민해 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여성 징병을 이야기하는 이슈메이커들은 국가 안보라는 큰 틀 속에서 여성을 진짜 징집하는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싼값에 청춘을 사들여 홀대하는 병역 제도에 화난 사람들을 자극해 표로 만드는 일에 잘 먹히는 언어를 하나 더 찾았을 뿐이다. 국방부는 여성 징병제도 모병제와 매한가지로 고민하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https://news.v.daum.net/v/20210415114200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