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홈 > 뉴스 > 뉴스레터

[기고글] [오마이뉴스] '군인다움'이 고환과 음경입니까

작성일: 2020-02-06조회: 483

한국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부사관이었던 변희수 하사가 소속부대를 넘어 군단장의 지지와 승인까지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역을 하게 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고환 및 음경의 결손'이 현역 군인의 선발 기준인 '질병 및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 기준'과 관련 법령에 따라 심신장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군인권센터는 법적 성별정정 절차를 눈앞에 두고 있는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를 남성의 성기를 상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심신장애 전역대상자로 분류한 것은 트랜스젠더 혐오이며, 성별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맞섰다. 하지만 육군은 규정에 맞춰 의무조사를 시행했고, 예정대로 전역심사위원회를 강행했다.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린 당일, 육군은 3년을 근무한 변희수 하사에게 하루아침에 전역 처분을 내렸다.

나는 총 9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 여군 출신이다. 막 여고를 졸업한 19살 겨울, 국방부와 군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군에 입대하여 교육 기간을 포함해 내리 9년을 복무했고, 2017년에 군문(軍門)을 나섰다. 나는 해병대를 전역했다. 이러한 배경을 꺼내게 된 것은, 초남성적인 '군대문화'라는 것이 여군, 나아가 모든 성소수자 군인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당연히 변희수 하사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군인다움은 어떻게 소수자를 억압하나 

여군으로 복무를 하는 내내 내가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고된 훈련도, 출·퇴근의 경계가 모호할 지경으로 많은 일도, 잦은 대기도, 철책을 맞대고 있는 북한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다른 남군들에게는 한 번도 요구된 적이 없을 '군인다움'을 증명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었다.

임관 경로를 불문하고 육, 해, 공, 해병대 모든 여군이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남군들보다도 훨씬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군에 입성했다. 군 생활 내내 내가 얼마나 잘난 군인이 될 수 있는지, 남군들의 자리를 뺏어서 여군인 나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 과연 마땅한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했다. 뭔가 실수라도 하거나, 머리의 정돈 상태가 불량하거나, 여군의 화장 문제가 구설수에 오르기라도 하면 선배 여군들이 집합을 시키는 것은 부지기수의 일이었다. 집합해서 듣는 얘기는 뻔한 얘기였다. "군인답지 않은 행동 하지 마라"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군인이라는 것은 무엇이기에, 누가 표준이고 기준이기에 1년 내내 군인으로서 허투루 복무한 적 없는 나에게 계속해서 실체조차 모호한 군인다움을 요구하는 것인지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대충 눈치껏 여자다운 척하지 않으면 되겠지 싶었는데, 또 어느 날은 나에게 여자가 되기를 원할 때도 있었다. 막내 장교급인 내가 회식 자리에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 지휘부 좌석에 배정되거나, 혹은 부대 행사 때 꽃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요구받곤 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성적으로 임관을 해도,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앞선 군번을 받았어도 날마다 이미 군인인 나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군인다움에 넌더리가 났고, 나는 결국 장기복무가 보장된 미래를 박차고 사회로 나와 버렸다.

'진짜 사나이'가 이룩한 군대문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병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 병역법 제3조 1항으로, 조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당연한 법률적 지위를 가진 것은 남성에 한한다. '남자만 군대 간다'는 말은 곧, 결국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남성뿐이라는 말과 같다.

병역법과 제반 법령들은 신성한 의무인 병역을 수행할 수 있는 남성은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병무청의 까다로운 심사와 여러 선별 조건을 거친 남성만이 현역복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진짜 사나이'의 탄생이다.

대한민국 군대는 진짜 사나이들이 주인인 성이다. 선별된 신체 건강한 남성들이 열심히 쌓아 올린 가부장적이고 초남성적인 군대문화라는 성벽은 나와 같은 여군들을 포함하여 성소수자 군인들이 결코 침범할 수 없도록 아주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불과 1980년대 말까지, 여군들은 결혼 또는 임신을 하게 되면 전역을 해야만 했다. 명시적으로 여군의 보직과 병과를 제한하는 규정들은 2017년 부로 모두 폐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야전군 사단장 하나 나오지 못한 것이 여군의 현실이다.

'여군'이 아닌 게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군인은 또 어떤가. 이제는 차별의 흔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표현인 '성 주체성 장애'가 버젓이 병역판정기준에 남아 있음은 물론, 군형법 92조 6의 폐지는 아직도 요원하다. 2017년 육군에서, 2019년 해군에서 발생한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의 피해자들은 진급 누락, 장기 선발 탈락 등의 2차 피해를 겪으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만 있다.

그리고 2020년, '왜 남자만 군대를 가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 사회에서 수술을 감내하고서라도 모두가 꺼리는 군 복무를 이어나가겠다고 선언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강제로 쫓겨났다.

변희수 하사의 전역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유가 그깟 고환과 음경이 없어서라는 것은 상징적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름 아닌 고환과 음경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 아닌가.

다른 남군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여군들을 향해 '군인다움'을 끊임없이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군은 고환과 음경이 없으니까, 동성애자 남군은 고환과 음경으로 생식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 모두가 자신들의 성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군인다움은 오로지 고환과 음경이 없는 자들, 또는 고환과 음경이 제 기능에 충실하지 않거나 혹은 하지 못하는 자에게만 요구된다. 고환과 음경에 전투모를 씌우고 소총을 들게 하는 것도 아닐 것인데, 도대체 생식기의 유무가 어떤 연유에서 군인다움과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란 말인가. 군은 성별 정정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변희수 하사가 던진 이 물음에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성전이 시작됐다

지난 2020년 1월 29일, 변희수 하사의 성별 정정과 관련한 등록부정정 청구에 대한 청주지법의 심리가 있었다. 법원 인사가 나기 전 성별 정정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법원의 설명이 있었으니, 빠르면 변희수 하사가 국방부를 상대로 인사소청을 진행하기 전인 2월 초순 성별 정정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변희수 하사가 법적으로 여성이 된다면, 국방부 인사소청위원회는 육군의 전역 결정을 두고 이제는 '여군'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변 하사 스스로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을 위해 스스로가 먼저 시험대에 올랐다.

트랜스젠더 여군의 복무는 변 하사 개인의 싸움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 군대라는 거대 조직이 쌓아 올린 진짜 사나이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고 그 성벽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짜 사나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되고, 저울질 당하고, 내쳐지고 있는 모든 소수자를 위한 공성전이 이제 시작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8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