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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후원회원 인터뷰 #4. 고동균 회원님

작성일: 2019-05-29조회: 1047

억울하게 죽은 두 사람의 동료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동균 회원님을 처음 뵌 것은 2019년 정기 총회입니다. 군인권센터의 활동, 특히나 군성폭력상담소 설립 추진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던 고동균 회원님은 선뜻 군성폭력상담소 설립위원에 동참하실 뜻을 밝히시며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벽돌쌓기 기금 후원’에 참여하셨습니다. 특이한 점은 세상을 떠난 두 동료 군인의 이름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고 하셨던 것인데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1. 군인권센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군복무중이던 2013년에 동료 2명이 잇달아 순직하는 일이 있었는데 (15사단 선배장교 故 오혜란 대위, 병기 병과 동기 故 이신애 대위) 사고 직후 군 당국의 어이없는 후속조치에 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제도들이 생기면서 개선이 이루어 질 것이라 믿었지만, 사건발생 3년 뒤인 2016년에 저 또한 군 당국의 어이없는 조치로 피해를 겪게 되면서, 군 당국과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소송 전으로 보내야했습니다.

 

소송전의 과정에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군의 사고처리절차는 변함이 없고 계속해서 피해자를 반복해서 양산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더 이상 이런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군을 떠난 후 군인권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중이던 당시에는 군인권센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육군 장교 신분으로 군인권센터 회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기에는 제약이있어 전역 후인 2019년에야 군인권센터에 적극적인 후원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군인권센터는 어떤 단체라고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에서 장병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는 유일한 시민단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아 2007년부터 엠네스티와 국경없는의사회, 유엔난민기구에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최근에서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징병제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내 장병인권 수준이 대한민국 사회전반 구성원의 인권의식 수준으로 그대로 이어지는데 불구하고 군인권센터가 잘알려지지 않은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인지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시민단체로서 가장 힘겹고 어려운 싸움인 군내 인권문제를 위해 힘써주시는 인권센터 활동가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대한민국 국군의 인권증진을 위해 가장 어려운 곳에서 힘쓰시고 계심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후원이 늦었다는 점도 안타깝구요.

 

아직도 군대는 제 동료들에게 일어났던 억울한 죽음과 인권유린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과 인권유린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없는 군을 만들 수 있도록, 군의 인권의식이 향상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진해주시길 기원합니다.

 

3. 군성폭력상담소에 벽돌약정을 故 오혜란 대위 등 2명으로 해주셨습니다. 오대위과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제가 15사단 정비대대에서 복무하던 13년 사단 BCTP 훈련을 준비하면서 오혜란 대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혜란 대위님은 사단 부관부에서 근무를 하시다보니, 훈련 때 사단 군수대응반에서 OSC(작전지속지원실 : 구 CSSC) 인사파트를 맡게 되셨고, 군수대응반 장교들은 인사, 물자, 장비, 탄약, 수송이 한 팀을 이뤄서 훈련에 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훈련 파트너 장교로서 알게되었습니다. 참 완벽주의자셨고, 꼼꼼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중위였는데 훈련 경험이 없어 미숙했는데, 함께 문제를 고민해주시고 대응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군에서는 보통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선임들이 잘 알려주지 않고 방임하는데, 오 대위님은 참 달랐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4. 오 대위님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건 이후 가해자 노 소령은 겸손하고 가정에 충실해서 성범죄에 연루될 사람이 아니고, 오혜란 대위가 부적절한 행위를 유도했다고 고급장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실제 제 소속부대의 대대장 모 중령이 장교들만 있는 식사자리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노 소령의 가혹행위와 성추행 소문이 부대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군은 어떠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내놓질 않았습니다.

 

당시 15사단장은 사건이 마무리 될 즈음, 초급장교를 모아놓고 “사단장이 너무 무섭게 해서, 초급 장교가 고충을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깝다”라고 이야기했어요. 후속조치나 예방, 사과와 같은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군은 빨리 영결식을 치르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군이 자정작용을 상실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당시 오혜란 대위님은 사단 부관부에서 근무하면서 겸직으로 사단 내 여군을 대상으로 하는 성고충 상담관으로 임무수행을 하셨는데, 정작 성고충 상담관이었던 오대위님의 고충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은 한곳도 없었습니다. 참다못한 오대위님이 참모장에게 해당사실을 보고했다가 오히려 가해자인 노소령이 참모장에게 관련사항에 대해 구두경고를 듣고서는 오 대위님에게 찾아와 폭언과 협박을 했었으니, 군대에서 하는 활동이란게 얼마나 요식행위인지 알 수 있습니다.

 

5. 이신애 대위님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故 오혜란 대위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의 피해자에 대하여 이야기해드리려 합니다.임신 중에 업무수행을 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뇌출혈로 사망한 故 이신애 대위님입니다. 이 대위님이 돌아가시기 3일 전 업무협조 때문에 통화를 했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그때 이신애 대위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괴로움과 죄책감이 듭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저는 지금까지도 그 죄책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신애 대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알게된 것이지만 임신 8개월의 몸으로 혹한기 훈련 준비를 혼자 다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이대위의 1차상급자가 공석인 상황이라 업무가 집중되면서 노로가 과중되었는데, 한 달 동안 초과근무시간만 200시간에 도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대대 내에 훈련 준비를 함께 해줄 수 있는 장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도 화가 나고 말로는 항상 전우라고 하지만 막상 옆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자신들만 챙기기 바빴던 그들이 아직도 원망스럽습니다.

 

6. 본인이 겪으셨던 일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단 두 분의 죽음 뿐 만아니라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군 관련 사건들과 주변 다른 동료들이 업무 중 크고 작게 다치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처우를 못 받는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에게도 우려하던 그 일이 닥쳐오고 말았습니다.

 

고양에 위치한 X군단 직할 5X탄약대대에서 5X2ASP에서 근무할 때 일이었습니다. 그 때 대대장은 김X영 중령이었는데, 지금은 육군본부로 영전해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훈련 도중 산에서 추락하는 부상을 입어 오른쪽 다리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은 제 다리 상태를 알면서도 윽박지르면서 체육대회에서 축구 경기에 참가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다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오니 대대장은 깁스를 한 저의 모습을 "중대장! 무슨 깁스를 하고 있냐! 이 X발 X끼 장교가 가오도 없냐!"라며 온 장병이 있는 곳에서 면박을 주었습니다. 굉장한 모욕과 수치심을 느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대대장이 주관하여 전술훈련 관련 작전회의를 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해당부대로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 데다가 정비부대에만 계속 근무해온 터라 탄약부대 전술은 생소했기 때문에 전세규(전투세부시행규칙)를 완전히 숙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작전회의나 브리핑시 전세규를 직접 보면서 설명을 해야했는데, 전세규내용을 암기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아직 숙지하지 못한 부분이라 확인해서 보고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하였더니 대대장이 "너는 씨X! 임무수행 자세가 안 된 새끼다! 너는 나에게 대면보고로 백지전술강의 준비해라! 머리에 전세규를 완전히 넣고 와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솔직히 이게 말이 안되는 것이 전세규상의 일부내용은 그때 그때 수정이되는 부분이 있고, 내용도 많아 두께가 거의 사전수준인데 그걸 다 외워서 구술로 숫자하나까지 브리핑을 하라고 요구를 한 것입니다. 애초부터 이게 지도나 훈육과는 거리가 먼 가혹행위라는 점은 재판에서도 인정되어 대대장이 징계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튼 일단 그래도 명령은 명령이라서 10월 한 달동안 부대 안에서 먹고 자고 지내면서 백지전술 브리핑준비를 했는데 퇴근자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스트레스가 극심한상태에 도달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대대장에게 백지전술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전개요를 설명하고 화이트보드를 지우려고 했는데 화이트보드가 더럽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며 위협적인 언행과 욕설을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고성을 지르며 지적을 당하자 공황발작 증세가 발현하여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즉각적인 조치도 없었고, 2시간 가량을 미적대다가 후송되었는데 2개월간의 입원 치료후 상급부대인 사령부로 복귀하니 저에게 복무부적합심의 대상자에 선정되었으니 심사대에 출두하라는 통지서를 제시하더군요.

 

그 이후 저는 제 스스로 권리 구제를 받기 위해서 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1년에 가까운 소송전 끝에 결국 승소하여서 명예는 회복되고 솜방망이긴 하지만 가해자 대대장도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군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져 제대신청을 하여 사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일을 통해 또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군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7. 군성폭력상담소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故 오헤란 대위님, 故이신애 대위님 두 사람의 죽음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3년에 두분이 돌아가신 이후 매년 11월이 되면 현충원에 가서 고인을 만납니다. 2016년이 되니깐 동기들조차 잊어버린 건지 오질 않아요 하지만 저는 두 분에 대한 미안함, 돕지 못했던 자책감이 남아있습니다. 저에게 있었던 억울한 일들은 이제 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뎌졌지만 故 오혜란 대위님, 이신애 대위님이 무엇을 잘못해서 세상을 떠난 게 아닌데 왜 이 사람들이, 유가족들이 불행해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죽음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또다시 이런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비극적인 죽음이 세상에 기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두 분의 성함으로 기부를 했습니다. 두 사람의 죽음이 세상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8. 마지막으로 군인권센터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에서 생애 최초로 사회생활을 접하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군대 인권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대에서 상처받고 잘못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와 인권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군인권센터는 어둠과 같은 대한민국 군 인권의 마지막 횃불입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인권이 보장된 사회가 되도록 군인권센터와 함께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과 지지로 키워진 군의 인권의식이 먼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이 군에 들어갔을 때 여러분이 기억하던 군과는 또 다른, 밝은 군대를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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