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전부가 아니다 [똑똑! 한국사회]
청운의 꿈을 안고 해병대 소위로 임관한 첫해. 내 월급은 정확히 160만 하고 7400원이었다. 초과근무 수당은 시간당 7400원이고 당직수당은 일당 5000원이었다. 당직은 근무 종료 후 18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 상황평가 회의를 준비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었다. 회의가 끝나면 평소와 같이 일했고 어김없이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으며,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출근했다. 그것을 주 2~3회 정도 했다. 퐁, 당, 퐁, 당 당직과 업무가 쉴 틈 없이 몰아쳤지만 결론적으로 매월 10일 월급 통장에 찍힌 금액은 노동시간에 비해 형편없었다. 이렇게 사는 걸 우리는 ‘필승과업’이라고 했다.
전역을 다짐하게 된 게 필승과업과 형편없는 월급 때문은 아니었다. 만 23살에 7급 공무원으로 임관했으니, 남들은 여전히 대학생일 무렵부터 돈을 벌었으므로 또래에 비해선 살 만했다. 사관학교를 졸업했으니 갚아야 할 등록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달에 2만~3만원 남짓 하는 관사에 살고 대체로 부대에서 삼시 세끼를 해결하니 생활비가 적게 들었다. 솔직히 또래에 비해 돈을 부족하게 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았던 점은 바로 ‘까라면 까’라는 문화에서 비롯한 예측 불가능성에 있었다. 아무리 필승과업을 해도 일단 퇴근하면 오롯이 나의 시간이어야 하는데 부대는 나를 이와 상관없이, 시시때때로 불러제꼈다.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상급 부대에서 비밀을 받아 와야 한다, 탈북단체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한다, 배관이 동파됐다, 전방에 낙뢰가 너무 친다…. 부대에 나만 사는 것도 아닌데, 부대에선 내가 없으면 곧 북한이 쳐들어오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굴었다. 크리스마스에 모처럼 데이트를 위해 큰맘 먹고 시간을 냈는데, 부대에서 ‘번개’를 때렸다. 비상소집에 헐레벌떡 택시를 불러 ‘따따블’을 외치고 갔건만 막상 들어가니 별일도 아니었다. 연대장은 태연하게 “연말인데 대비 태세도 점검할 겸 좋잖아”라고 말을 던졌다. 새해 첫주, 나는 사귀던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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