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친위 쿠데타 시도


군인권센터는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2025년 1월 16일 김용현 내란죄 공판준비기일부터, 2026년 1월 16일 윤석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선고까지 모든 재판을 방청 및 기록하였습니다.

영상중계에 담기지 못한 재판의 뒷모습, 현장의 상황까지 군인권센터 활동가들이 직접 기록한 670만자의 재판 속기록을 공개합니다.


※ 기록 기간 : 2025년 1월 16일 ~ 재판 종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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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


혐의 :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우두머리방조, 위증, 대통령기록물법위반,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 (2025고합1219)


"(계엄 얘기를 듣고) 거의 멘붕 상태, 뭔가 보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제대로 인지가 된 상황은 정말 아니었습니다."
(2025. 11. 24. 한덕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공판 - 피고인 신문) 

"(계엄선포문에 대해) 해제가 됐기 때문에 프리하게 생각했습니다. 박물관에 뭐 얹어두듯 그렇게 둔 것이고요, 거기에 싸인을 해 달라고 하니까...계엄이 끝났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했습니다."
(2025. 11. 24. 한덕수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공판 - 피고인 신문)


내란방조2025.11.10 한덕수 2025고합1219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증인 : 송미령 김용현(불출석, 서증조사 대체))

2025.11.10 한덕수 내란방조 2025고합1219  공판기일

형사합의33부(이진관)

동관 358호 법정


증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용현 국방부장관(불출석, 서증조사 대체)



검사 : 김형수 특검보, 김정국 차장검사, 조현일, 윤기선, 박지향, 최형욱

변호인 : 법무법인 해광 (이완희, 손철, 김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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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약 6명 방청석에 사람 약 15인 가량. 윤 지지자 아닌 것으로 보임. 재판 관심 높아지는 과정?


판: 출석 어떻게 되시죠?


검: 김형수, 조현일, 윤기선, 김정국


변: 전원 출


판: 오전에는 증인신문 오후에는 서증조사. 지난 기일 관련 발언?(없다). 제출 서류 확인하겠다.


11.6자로 증인신청 및 의견서 내셨고 서증조사 계획 관련 의견서 내셨는데 말씀?


검: 증인신청서는 저번 기일 지정된 대로 금일은 송미령 수요일은 김용현 장관 윤석열. 다음주는 추경호. 금일 오후 서증조사 관련 의견서 제출함.


판: 증인신청서를 보면 추경호 증인이 11.17 1000로 되어있는데 저번에는 14시 아녔는지?


검: 따로 일정을 확인하지 않았고 날짜만 한 것으로 기억


판: 11.17 10시에는 최상목이니 14시에 추경호를 하시죠?(예) 서증조사 관련 변호인?


변: 피고인이 특별히 폭동행위 참가는 없어서 그때그때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다.


판: 그러면 예정된대로 증인 신문하겠다. 증언거부권 고지. 선서 후 위증가능성 고지. 주신문 해달라x


검: 12.3 농란축산식품부 장관?(예) 11.29 장관으로 임명?(예) 증인은 현재에도 같은 직위?(예)


증인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에 윤석열이나 한덕수와 알고 지냈나?(아뇨)


12.3 당일 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송: 화요일은 국무의원 조찬모임이 있었다. 07:30? 시간은 정확치 않습니다만 서울정부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아침 먹으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국무회의가 있었고 마친 후 울산에서 행안부에서 저희랑 같이 하자고 했던 김장담그기 행사가 있었고 울산야구장에서 그리고 울산시청에서 중앙지방행정협의회가 있었고 부자치장이 참석하는 회의였고 그 자리에서 도지사님들에게 저희 부에서 발표할 것이 있어서 발표를 하고 회의를 마치고 울산에서 저녁을 먹고 울산에서 비행기를 타서 김포공항에 마쳤다.


검: 오전 국무회의 후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국민통합김장대행사를 위해 울산에서 갔고 그 행사는 행안부 울산시 농림부?(예) 그 행사에는 이상민도 참석?(예) 비행기는 이상민도 탑승?(예)


같은 비행기를 예매한 것은 아니고?


송: 그것은 아니고 울산에 갈 비행편이 그게 유일해서 각 부에서 따로 예매했는데 결과적으로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됨


검: 김장행사 끝나고 중앙지방정책협의회 참석?(예) 이상민도?(초반만) 


원래는 끝까지?(예 다 하고 만찬도 예정되어있었다)


그런데 중앙지방정책협의회 중간에 행안부의 김민재 차관보가 ‘이상민은 서울로 간다’고 했죠?(예)


이유를 뭐라던가요?


송: 급한 일정이 생겨서 인사만 하고 미리 이석을 한다 정도지 이유를 고지해주지 않았다.


검: 그러면 증인이 이상민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나요?


송: 이유를 묻지는 않았고 ‘장관님 먼저 가신다면서요?’라고만 했다.


검: 뭐라던가요?(그렇게 됐다고만.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x)


그러면 원래 이상민이 담당하기로 했던 협의회 진행을 증인이?


송: 마무리 발언을 제가 하라고 해서 마무리 발언을 했다.


검: 이상민이 조사를 받을 때 오전에 국무회의 끝나고 ‘김용현이 오전에 들어오라고 했다’고 했는데 아시나요?(모릅니다)


행사 마치고 증인은 어떻게 서울로 오셨나요?


송: 참석했던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했고 울산공항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렸다.


검: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대통령실로 오라는 연락 받으셨나(예)


누구로부터?


송: 수행비서 용산이라고 전화를 받으라고 해서 전화를 받았는데 부속실장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들어오셔야한다’고 해서 받았다.


검: 문자메세지 하나 제시


조사시 제출한 증인의 메세지인데요.


<대통령 부속실장과 주고받은 메세지. 09:17에 송미령이 먼저 죄송합니다. 지금은 통화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1:17 대통령부속실장입니다. 전화부탁드립니다>


송: 이 상황은 비행기가 내리는 상황. 그래서 자동발신 문자를 보냈던 것이고 보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그리고 부속실장은 당시는 모르는 번호였는데 추후에 알게되어 저렇게 저장을 했던 것. 그 이후 수행비서 통해 연락이 와서 그 연락을 제가 받았던 것.


검: 정리를 하면 강의구 부속실장 번호가 증인은 없어서 자동발신으로 했는데 이후 저장을 했고 수행사무관이 연락을 먼저 해서 연락 닿았다?(예)


연락할 때 강의구 부속실장이 뭐라던가?


송: “찾으십니다. 지금 들어오셔야 합니다” 이 두 마디 정도.


검: 어떤 이유로 찾는지는 여쭤보지 않았고?(예)


증인 통화내역 문자메세지와 통화 후에 21:37에 한덕수와 통화했죠?(예)


첫 마디가 뭐였나요?


송: 제가 먼저 ‘총리님’했고 한덕수가 ‘오시고 계시죠?’라고 했던 것


검: ‘오시고 계시죠?’는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예)


또 그 대화에서 어떤 것이 기억?


송: “언제쯤 도착하시냐”라고 말씀하신게 기억하시고 제가 “10:10”이라고 했더니 한덕수가 “좀 더 빨리 오시면 안 되겠느냐”라는 말을 서너 차례를 했다.


판: 12.3 한덕수가 전화를 했는데 참석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보이는데요. 이 경우 말고 다른 회의 때 참석을 독려하는 전화를 한 적이 있나요?(아뇨)


그러면 한덕수가 회의를 빨리 참여하라고 한 것은 처음이네요?(예)


앞에 답변하실 때는 피고인과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고 하셨죠?(예)


그러면 회의 관련 연락 말고 일반적으로 개인적으로 뭘 확인을 하거나 하는 연락은 있었나요?


송: 업무 관련 질의는 전화를 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회의 참석여부에 관련해가지고 제게 전화를 하실 일은 없다.


판: 알겠다 계속.


검: 한덕수가 빨리오라고 하는 이유를 말해줬나요?(아뇨)


그때 그러면 그냥 빨리 오라고만 했었는데 비상계엄 한다는 취지 이야기는 없었나?*(예)


빨리 와서 대통령 말려야한다는?(없었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빨리 오라고만?(예)


cctv제시 

<<대접견실 22:03. 송미령 들어오고 제일 안쪽 이상민. 정진석. 이도윤 수석?(그 분은 잘 모른다) 맞은 편으로는, 조태열, 최상목 부총리.>> 맞나요?(예)


당시 들어갔을 때 어떤 논의가 오갔나요?


송: 글쎄 저는 그냥 들어갔는데 인사를 했는데도 아무도 인사를 받지 않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냥 앉았고요. 무슨 영문인지를 잘 몰라서 대화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검: 자리는 자연스럽게 빈 자리?


송: 예 보통은 국무회의 때 명패가 있는데 명패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저는 직전에 이상민과 만났기 떄문에 자연스럽게 이상민 옆에 자리에 앉았다.


검: 당시 비상계엄 언급?


송: 아뇨 저는 저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검: <<cctv대접견실 22:04. 윤석열이 집ㅈ무실에서 나와서 대접견실로 오고 김용현 장관이 온다. 윤석열이 대접견실에서 퇴실하려다가 참석자들이 말리는 상황>>


이거 보셨는데 윤석열이 집무실에서 나와서 대접견실에 모인 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기억이 나시나요?


송: 기억이 나지 않고 대단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주출입문 통해서 김용현이 들어오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던 윤석열이 다시 나가려고 했는데 아시는 것?(전혀 모른다)


나가려고 하다가 대접견실에 있는 참석자들이 만류하자 윤석열이 다시 걸음을 물리고 되돌아오는데 아시나요?(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2025.8.3 특검 조서 제시. 이 부분 관련해서 여쭌 것인데요.


‘나가다가 만류하니 돌아오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 대해서 아시나요?’라고 할 때 증인은


“기억을 해보니 의사정족수가 채워졌던 것으로 대통령과 김용현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가서 계엄을 선포하려고 하다가 박성재 장관이 ‘아직 숫자가 차지 않았다’고 만류를 했고 그래서 대통령이 다시 돌아온 것 같다” 기억하시나요?


송: 그건 사후에 추정한 것이었고 그 시점에서는 저는 비상계엄에 관련해서는 전혀 몰랐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의미였다고 생각한 것.


검: 그러면 ‘숫자가 차지 않았다”는 말은 오갔나요?


송: “아직 다 오지 않았다”라는 말을 누가 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판: 그건 확실히 기억?


송: 예 ‘사람이 다 오지 않았다’


판: 그걸 누가?


송: 그건 잘 기억이 안 난다.


판: 그러면 그 말이 나온 후에 가다가 윤석열이 방향을 틀었던 것인가요? 선후는 어떤가요?


송: 선후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검: 의사정족수라는 말은 없었나요?


송: 아뇨. 아직 다 오지 않았다. 이정도 취지의 이야기.


검: <cctv대접견실 22:05 바로 이어지는 상황. 최상목과 조태열이 일어나는 상황. 증인을 봐주십시오. 이상민이 증인에게 귓속말을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억나십니까?


송: 제가 뭐때문에 회의를 하는거냐고 물었습니다.


검: 이상민이 뭐라던가요?


송: 딱 두 글자만 했습니다 “계엄” 그때 처음 계엄을 인지했습니다.


검: 보신 것처럼 최상목과 조태열이 자리에 일어나서 윤석열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는 장면. 그 상황 기억나는대로 설명을?


송: 두 분이 일어나서 무슨 말씀하셨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말리려고 하시는 상황이라고는 기억.


검: 이 상황에서 한덕수는 어떤 말을 했나요?(기억에 없다)


증인은 그러면 당시 국무회의 의사정족수가 11명이라는 사실 알았나?(몰랐습니다)


그러면 누가 오고 있지 않다. 다 오지 않았다. 그런 말은 기억이죠?(예)


생각을 여쭙는 것인데요. 이것은 오고 있는 국무위원들을 기다리는 맥락에서 그러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송: 사후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판: 이상민으로부터 비상계엄이라고 들엇다고?(비상계엄 말고 계엄)


어떤 느낌이 들었나?


송: 비현실적인 느낌. ‘말도 안 돼’이런 느낌.


판: 계속 하시죠.


검: <22:06 cctv대접견실. 최상목이 피고인에게 가서 귓속말을 하고. 윤석열이 정족수가 안 차서 아직 집무실로 다시 들어가는 것 같고 최상목이 따라가는 모습> 이 상황 기억?


송: 최상목은 대통령을 말려보려고 따라들어갔던 것으로 기억


검: 대접견실로 최상목이 다시 나온 이후에 최상목이 어떤 말?


송: “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안된다는데”라고 하면서 최상목이 말하면서 앉은 기억


검: 어떤 준비?(그것은 모름)


최상목이 어때보였나요?


송: 최상목이 평소에 비해서 의기소침했고 몇 사람에게 ‘이 상황을 알았느냐?’라고 말을 했고 앞에 있는 신원식 안보실장에게도 ‘아셨어요?’라고 하는데 다들 몰랐다고 했고 그러면 최상목 총리가 ‘그러면 이 모든걸 김용현하고 의논하셨다는거야?’라고 했고 한덕수에게 ‘50년 공직생활 이렇게 끝내실겁니까’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한덕수가 ‘나도 반대해요~’라고 했던 말을 기억. 


그만큼 대통령이 지금 하시려는 것에 대해서 다들 뭐랄까. 당황해하는 상황이었다.


검: 그때는 대통령은 대접견실에 없었죠?(예) 그러면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상황이 아녔던 것 같은데. 그러면 최상목이 그렇게 만류했다는 것 말고 다같이 들어가서 만류해보자는 분위기 있었나?(없었다)


<cctv 22:13 대접견실. 김용현이 대접견실 주출입문에서 접견실 방향으로 손가락 1개를 올림. 당시 조규흥이 검문절차 거치고있었고 조규흥이 오면 국무위원 10명인 상태라서 정족수까지 1명 남은 상황>


이때 1이 무슨 말이냐고 한덕수가 물어보거나 했나?(아뇨)


증인은 이 상황 기억?(잘 기억하지 못함)



<cctv계속. 김용현이 최상목에게 다가가서 말을 함>


김용현-최상목 대화 기억나나?(기억나지 않음)


지금 cctv보시면 한덕수 앞이나 조태열 장관 앞에 있는 문건이 보임. 대접견실에서 한덕수나 조태열이 갖고 있는 문건에 대해 기억?


송: 저 때 문건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남.


검: cctv 계속. 한덕수와 조태열 앞에 있는 문건을 가지고 와서 최상목이 읽어보는 장면.


이때 최상목이 그 문건을 읽은 것이 기억나나요?(아뇨)


이때 그 문건 관련해서 ‘이 문건을 받았다, 내용이 무어냐’이런 이야기가 오가진 않았나요?(아닙니다)


<cctv계속. 윤석열이 대접견실로 나옴. 22:15에 조규흥이 옴. 16분에 오영주 장관 들어옴.> 


당시 오영주 장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오영주가 정족수 마지막 인원임.


송: 결과적으로는 그런데 저한테는 당시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고 제게 인상이 남은 것은 대통령이 첫마디를 시작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검: 증인 조서 제시


<오영주 혹은 다른 국무위원 1명의 도착을 다들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증인은 ‘오영주를 기다린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더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김용현이 밖에서 1명이 더 오기를 기다렸고 오영주가 도착하자 대접견실로 안내했다’>라고 했느데 맞나요?(예)


22:18분 대접견실 cctv. 강의구가 문건을 나눠주는 모습. 나눠주자마자 김용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하기 위해서 대접견실에서 나가는 모습.


보면 김용현 장관이 나눠줬어요. 증인도 받으신 것 같은데 그 문건 아시나요?


송: 정확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대통령이 바로 나가셨다. 나가셨고 이어서 누군가가 ‘지금 10시 넘었는데? 10시로 되어있다’라고 해서 그것이 계엄선포문이 아닌가 싶다. 10시로 되어있었나봅니다. 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판: 지금 사후적으로 말씀하시는거죠?(예)


송: 예. 10시라고 누군가 했고 그러면 저 문건이 계엄선포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 


판: 당시 보고 들은 것은 ‘10시로 되어있다’는 말이고 사후적으로 생각해보니 그게 계엄선포문이겠구나?


송: 예. 당시 기준으로는 ‘지금 설마 하시러 가시는거야? 차라리 녹화였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검: 그 자리에서 이 문건을 보고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은 맞네요? 문건에 그렇게 기재가 되어있으니?


송: 예 10시라고 기재된 것까지는 제가 모르고 누가 그것을 말한 것을 기억. 


검: 증인 등에게 문건을 나눠준 것이 22:18경이고 10초도 되지 않아서 윤석열이 나가는데 읽지도 못했겠네요?


송: 예 못 읽었습니다.


검: 그러면 증인은 윤석열이 무슨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인지 설명을 듣기도 전에 바로 선포가 된 것이네요?(예)


<cctv 22:20 김용현이 대접견실로 뛰어들어옴. 문건을 가져감.>


당시 김용현이 뭐라면서 뛰어들어왔나요?


송: ‘이거 빨리 달라’취지


검: 한덕수가 윤석열이나 김용현을 만류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데 증인 기억은?


송: 한덕수가 윤석열, 김용현을 만류하는 장면은 기억나지 않는다.


검: 주무장관인 김용현이 비상계엄 배경 설명한 적?(아뇨) 한덕수가 설명한 적은?(없다)


그러면 국무총리인 한덕수가 윤석열에게 오영주까지 도착했으니 ‘다른 국무위원 말도 들어보시라’는 말 했나요?(아뇨)


혹은 한덕수가 ‘비상계엄 선포 관련 의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개진해봐라’취지 말은?(없습니다)


한덕수는 다른 국무위원들을 불러서 대통령을 만류하려고 했다는데 증인이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후의 시점에 피고인이 직접 혹은 국무위원 통해서 윤석열 말렸나요?(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른 참모들도 들어오고 대접견실에 들어오다가 누군가 핸드폰을 켜서 대통령 담화를 들었나요?


송: 예 누군가가 휴대전화를 켰던 것 같고 그때 대통령 육성이 흘러나왔다. 처음이 아니라 중간부터 듣게 되었다.


검: cctv 22:30 제시. 이때 보면 대접견실에 있던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돈을 하고 윤석열이 재차 대접견실로 들어오는 상황. 기억나시나요?(예)


보시면 참석자들이 자연스레 앉아있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회의를 대비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러면 대접견실에 있던 분들은 윤석열이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나요?(아닙니다)


선포 이후 안 나가고 대접견실에 있었던 이유는?


송: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르니깐 자연스럽게 있었다.


검: 그러면 윤석열이 복귀한 후 한 말?


송:’ 마실 걸 갖고 와라’, 그리고 앉은 다음에는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일종의 업무지시를 했다 기억나는 것은 한덕수에게는 본인이 가야할 일정을 대신해달라는 말을 했고 그리고 각 부처에 몇 가지 지시를 했던 것으로 기억.


검: 윤석열이 실장 통해서 문건을 받았고 그걸 최상목에게 줬다. 기억 나시나요?


송: 기억나지 않음


검: 그 문건은 예비비확보 등 포함된 문건인데 그 말을 전달하면서 문건을 건넨것은 아닌가?


송: 특별한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고 당시가 예산철이라서 예산이나 경제관련한 이야기라고 생각만 들었다.


검: 예산이니 예비비 확보 이런 것?


송: 그렇게 연결하지는 못했다.


검: 이후 윤석열이 고개를 내밀면서 이상민에게 말을 하는 모습. 이 장면 기억이 나나요?


송: 윤석열이 와서 부총리에게는 예산과 경제이야기. 행안부에는 행정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서 저는 그게 부처에게 하달한 미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특별한 이야기보다는 질서유지였던 것으로 기억. 정확한 언어가 기억나지는 않음.


검: 증인진술조서 제시 


<답: 지금 생각해보니 경찰에 대한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상민에게 윤석열이 ‘경찰을 통해 치안유지를 잘하라’는 말?


송: 예 저는 일반적인 행안부 소관사항에 대해 지시한 것으로 기억.


검: 그러면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윤석열이 비상계엄 하에 지시사항을 국무위원이나 참모들에게 하달하는 것이죠?


송: 저는 그게 그렇게 꼼꼼한게 아니고 제가 너무 순진한지 모르겠지만 각 부처에서 소관업무 중심으로 잘 해라. 그 정도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


검: 증인에게는 어떤 말?


송: 저는 끄트머리쯤에 ‘농산물 물가관리’이야기를 했다.


판: 문건은?(없다)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윤석열이 ‘경고성 비상계엄이다’, ‘일시성 비상계엄이다’라고 한 말 기억이 있나요?(아뇨)


검: 증인진술조서 제시

<답: 한덕수 총리에게는 ‘내가 당분간 가야하는 행사를 총리님이 대신해주셔야겠다’>는 말은 확실히 하셨고 ‘당분간’이라는 말은 확실히 했네요? ‘일시적 계엄’, ‘일회성 계엄’이런 말과는 상충되잖아요?


송: 일시적, 일회성이라는 말은 없었고 총리가 가야하는 행사들 1~2개 예시를 들어주시기도 했다.


검: 윤석열이 한덕수에게 ‘당분간 내가 갈 행사를 대신 가달라’고 했을 때 한덕수 반응은?


송: “네”라고 했던 정도.


검: 그러면 윤석열이 한덕수에게 행사 대리참석을 부탁하고 국무위원들에게 지침을 하달하는 상황에서 한덕수가 ‘지금이라도 빨리 계엄을 해제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나요?(없습니다)


<cctv 22:39분 대접견실 제시. 테이블 뒤 강의구 실장을 이상민쪽에서 부르고 강의구가 이상민과 귓속말을 나누는 상황. 그래서 강의구가 무엇인가를 메모를 하는 상황> 기억나시나요?


송: 대통령이 말씀중이라서 저는 윤석열쪽을 봤고 그걸 확인은 못했다.


검: 증인이 이상민 바로 옆에 앉아서 묻는데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못 들었나?(예) 혹시 서면 관련한 이야기 아녔나요?(기억이 없음)


<22:42 cctv 대접견실 제시. 회의 마치고 접견실에 있던 인원들이 퇴실하려는 상황. 대부분 나감. 주출입문 밖까지 나갔다가 다시 박성재, 강의구 들어가는 상황>


퇴실을 하시려고 대접견실 주출입문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상황 기억?


송: 나갔는데 복도쪽인지해서 누군가 국무의원들은 서명을 하라고 해서 다시 들어가는 상황. 제 기억에는 저는 복도에 있는 시점에서 그 이야기가 있었다.


판: 그 이야기를 복도에서 들었고 대접견실에서 했는지는 모른다?(예)


검: 그러면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기억?(잘 모름) 강의구 부속실장 아닌가?


송: 저는 강의구 부속실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모름.


검: 그래서 대접견실에 국무위원만 남고 증인 앉으셨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다시 앉은 이유?


송: 서명하고 가라고 해서 다시 회의를 하나? 해서 다시 앉음.


검: 증인진술조서 제시

<문: 의자에 착석하신 이유가?

답: 서명문제로 논쟁이 있었다>고 했는데 해당 상황이 맞나요?(예)


당시 상황 관련해서 증인께서 “이상민 혹은 한덕수가 ‘이것은 동의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에 참석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했는데 맞나요?(예)


그러면 이상민 혹은 한덕수가 단순히 회의참석에 대해서 서명응 종용하고 최상목은 적극적으로 거부를 하고 하는 상황인데, 한덕수가 주로 말을 하고 이상민이 동조를 한 것은 아닌가요?


송: 이상민인지 한덕수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한덕수가 ‘참석 취지 서명은 괜찮지 않냐’고 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한덕수가 확인해주어야하는 것으로 기억이 난다.


판: 기억이 명확치 않나요?


송: 예. ‘참석했다는 취지 서명은 괜찮지 않겠어요?’라고 한 것은 한덕수가 말한 것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검: 증인진술조서 제시

<답: 제가 대통령실에 모였다는 이유로 서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취지로 한덕수가 말을 했다>고 하는데.


판: 그러면 지금은 정리가 되서 한덕수라고 하는 것인가요?


송: 확실치는 않습니다.


판: 그러면 저 조서는 ‘한덕수가 말한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생각인거죠? 기억이 아니라?(예)


검: ??


송: 부총리가 입구쪽에서 서서 ‘이름은 하겠다 그런데 서명은 못하겠다’이렇게 했다.


검: 최상목이 한덕수를 상대로 한 것인가요?


송: 누구를 겨냥했다기보다 제 좌측에 이상민이 있었고 최상목은 테이블 끝에 서서 이야기를 했다. 


검: cctv 보면 한덕수 방향이네요?(그렇네요)


판: 최상목 장관이 ‘계엄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일은 하겠다’이런 말?


송: 계엄 반대가 나오지는 않았고 서명은 못하겠다. 다만 일은 하겠다. 이런 말


판: 비상계엄 선포 전후로 “계엄에 반대한다”이런 말 들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송: 반대라는 말을 할 틈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찬성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요. 다들 떫떠름한 상황이고. 저는 다같이 반대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반대.. 아까 최상목이 선포전에 ‘이렇게 끝내실거냐’라고 할 때 한덕수가 ‘저도 반대해요’라고 해서 저는 저 자리에 계신 분이 전반적으로 반대한다고 생각. 윤석열이 들어와서 ‘여러분 우려는 잘 안다’라고 할 떄 조태열이 뭐라고 했었다. 그래서 저는 저가 오기전에 이미 반대의 의사가 표명이 되었고 저는 그걸 말하지 않아도 모두 반대한다고 생각을 했다.


판: 제가 듣고 싶은 것은 ‘반대’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들은 기억이 있는지요? 아까 한덕수가 ‘나도 반대해요~’라는 말 외에?


송: 예 그 말밖에는. 다만 마지막에 한덕수랑 이상민 정도 있고 제가 일어서서 나오면서 한덕수에게 말씀을 좀 드렸고 중기부 장관에게도 말씀을 드렸을 때 뭐라고 했냐면 “이걸 지금 찬성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라고 했고 저는 이상민으로 기억하는데 ‘찬반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를 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해서 굳이 찬반이 나온 것은 그때 대화 흐름.


검: 아까 최상목이 한덕수에게 “50년 공직생활 이렇게 마무리할 것이냐’라고 질타를 할 때 한덕수가 “나도 반대해요”라고 할 때 재판장님이 물으셨잖아요? 그게 윤석열 앞에서 반대한다는 말이었나요?(아뇨)


판: 생각보다 길어져서 공무수행 일정 조정하시고 나오신 것이라서 시간을 좀 서둘러주시기를 부탁.


검: cctv대접견실 제시. 이제 다 퇴실을 하고 한덕수가 뭔가 메모를 하고 오영주를 잠깐 보았고 증인도 손짓을 하니 한덕수와 교감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상황?


송: 최상목이 나가고 나서 저도 일어나서 나가면서 한덕수에게 ‘저도 서명은 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국민들 삶이 어려운데 이 상황을 어떻게 납득을 하겠느냐’고 했고 ‘총리님꼐서 잘 이끌어주셔야한다’는 말씀 드렸다. 그리고 오영주 장관도 ‘이 상황 납득이 어렵다. 동의가 어렵다’고 했고 저도 ‘이 상황을 누가 동의할 수 있겠냐’고 했고 한덕수가 ‘서명은 본인 판단대로 해라’고 말을 한 기억이 있고요. 즉답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저한테는 이야기를 하셨다. 


‘튀지않게 잘 관리하라’이런 말씀을 하신 기억이 있다. 그리고 찬/반이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은 제 생각에는 이상민이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이 정도.


검: 22:48cctv 대접견실 제시. 반대서명을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증인, 오영주 등 다른 국무위원들 다 일어나는데 한덕수가 ‘회의를 마치자’고 했던 건가요?


송: 아뇨 그런 말은 따로 없었고 자연스럽게 본인들 할 말 하고 나가는 상황


검: 보시면 한덕수가 이상민이 나가려니깐 앉으라는 제스쳐를 해요. 나가려고 할 떄 한덕수가 ‘다른 분들은 가셔도 좋고 이상민은 남아라’이런 말을 했나요?


송: 다른 분들 남으라는 말은 없었고 이상민이 남으라는 말은 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명확치는 않다.


검: 이후 증인은 집으로 갔고 대변인, 운영지원과장과 통화하셨는데 어떤 대화 나누셨나?


송: 전화를 했고 기자들이 많이 묻는다는 취지 대화. 운영지원과장도 직원들 걱정을 해서 그래서 공무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맡은 바 업무를 열심히 하면 된다. 일단 그 정도 이야기를 했다.


검: 12.4 01:02경에 국회에서 비상계엄해제 의결이 가결이 됐어요. 아시나요?(예) 어떻게?(유튜브)


증인은 비상계엄해제 국무회의 참석하셨죠?(예) 어떻게?


송: 새벽 2시에 텔레그램 받았고 국무조정실장 통해 통상의 계통 통해서 연락 받았다.


검: 그러면 이때는 한덕수가 특별히 따로 “빨리 오라”는 말은 없었나요?(없었습니다)


송: 그래서 증인은 03:03경에 오시게 되었고 당시 상황은?(어수선)


검: cctv를 보면 03:47경에 내려가셨는데 회의는 04:27정도 했는데 국무회의까지 오래 지체가 됐네요?(예)


비상계엄해제 관련해서 국무위원 간 논쟁이 있어서 그랬죠?


송: 예. 전 날 회의에 있었던 분들 중심으로 회의장 어딘가 둥그렇게 서서 이야기를 했다.


검: 그때 조태열이 비상계엄 선포 전에 모인 것 관련해서 ‘이게 무슨 국무회의냐’고 했고 이상민이 ‘외교부 장관 말씀에 어패가 있다’라고 말?


송: 어패까지는 모르겠고 이상민은 ‘모여서 심의를 한 것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찬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논의를 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취지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했다.


검: 그러면 조태열은 ‘그게 무슨 심의냐’고 했던 것이고?(예)


언론기사제시


유임된 송미령 ‘머릿수 위해 계엄 국무회의 동원 무력감 무능감” 제목 기사. 그렇게 느끼신 이유?


송: 아무튼 국민들에게 너무 송구한 일이고요. 저로서는 영문을 모르고 저 자리에 갔는데 저는 저것은 국무회의가 아녔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했습니다. 윤석열이 2~3분 와서 회의가 아니라 통보를 했을 뿐이고 그 후에 계엄이 선포되었고 저희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무력하고 무능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머릿수 11명 채우기 위해서 불려가서 그냥 자리에 있다가 나오게 되었으니까 동원되었다는 생각.


*송미령 이 발언에서 울먹임


검: 뉴스기사 제시 <송미령 장관”국민꼐 송구 계엄 알았으면 국무회의 안 갔을 것”> 기사.


송: 지금만큼 정보가 있으면 뭐라도 해봤을텐데 당시에는 가서야 ‘계엄’들었고. 저 상황일줄 알았으면 당연히 안 갔어야죠. 저희가 안 갔으면 저 상황이 안 벌어졌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계엄에 대해 학습이 되어있으면 지금같으면 가서 뭐라도 해봤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저희가 찬반이나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갖지 못했으니까. 여러 부분에서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총리님을 피의자로 만나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고 국민들에게도 참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송미령 이 발언에서도 울먹임.


검: 이상


—--------송미령 주신문 종료—-----


변: 증인 한덕수 변호인입니다. 한덕수가 증인에게 전화해서 ‘어디쯤이시냐, 빨리 오시라’고 할 때 한덕수가 ‘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나요?


송: 말씀으로는 조금 더 빨리 와라.


변: 당시 피고인이 계엄을 인지했나요?(그건 제가 모릅니다)


한덕수는 집무실에서 윤석열에게 계엄을 만류하거나 하는 말을 했는지 여부는 증인은 모르죠?(모릅니다)


증인은 국무위원은 서명하고 가세요. 라고 했는데 대접견실 나갈 때 증인이 아는 국무위원 목소리는 아녔죠?(예) 다른 장관이나 총리 목소리는 아시잖아요?(예)


그리고 그게 복도에서 났는지 안쪽에서 났는지 여부는 기억이 나시나요?(잘 모르겠습니다)


서명하고 가세요. 라는 말이 2번 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국무위원들은 서명하러가세요’가 있고 그 이후에는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 2번째. 그런데 증인은 후자의 말을 이상민이 했는지 한덕수가 했는지는 불분명하다는거죠?


송: 예. 제가 들은 말 중에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하는 것은 괜찮지 않겠어요?”랑 “찬반이 아니라 논의를 한 것이 중요하다”는 두 가지 말이 중요한데 평소 언어습관으로 전자는 한덕수일 확률이 높고 후자는 이상민이 확률이 높다는 것.


변: 윤석열이 들어와서 다른 국무위원에게 묻거나 할 여유가 있던 것이 아니라 잠깐 앉아서 바로 나간 것이죠?


송: 예. 제가 참석한 이후부터는 그렇지만 저 이전에 오신 분들은 상당히 많이 짐작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변: 증인은 아까 다같이 반대하는 분위기라고 했었는데?


송: 예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윤석열이 첫 마디로 ‘여러분이 우려하시겠지만’이라고 했고. 대통령 말씀에 대해서 조태열만 ‘저희들이 잘 모시려고 하는겁니다’라고 했다.


변: 그 말은 계엄을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계엄을 반대하는 것이 잘 모시려고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죠?(예)


24.12.3 기준으로 국무위원은 여가부 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대통령, 국무총리 제외하고 18명이었죠?


송: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음.


변: 그러면 11명이 출석해야 국무회의 개회가 가능하다는 것은 기억?


송: 제가 그걸 확인하지는 않았다.


변: 그러면 행안부 의장관에서 관리를 한다는 사실은 알았나 국무회의?(행안부 정도로 알았다)


12.3 당일에 오전 07:30에 조찬간담회 참석을 하셨고 이후에 1000에 국무회의 참석을 하셨어요. 그때 조찬이나 국무회의 장소에서 대략적으로 어떤 말 나눴나요?


송: 국무회의는 기록에 있을테니 일상적인 의안 이야기를 했고 당시에 예산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부처별로 감액된 액수를 갖고 걱정을 하는 이야기들.


변: 그 자리에 김용현도 있었나요?(기억이 잘) 기억이 없으면 김용현-이상민 대화도 기억이 잘?(예)


그러면 그 자리에 참석한 국무위원 중에서 비상계엄 언급한게 있나?(전혀 없었다)


국무회의 후에 울산에서 진행되는 김장행사-중앙지방정책협의회 했고 이상민이 중간에 올라간다고 할 때 김민재차관보로부터 이유 들은 것 없습니까?(없습니다)


증인께서 21:20에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연락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대통령실로 이동을 할텐데 이동중에 다른 국무위원과 전화?


송: 제가 전화를 해서 저희 부 1급에게 무슨 일 있는지를 물었고 이후 한덕수와 대화


변: 이동하면서 강의구나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국무회의를 할 것 같다’는 말 있었나요?(전혀 없었다)


증인께서 이제 대통령실 대접견실 입실을 했는데 당시 분위기는 인사도 안 받고 어색했고 명패도 없어서 자연스럽게 행사 같이 했던 이상민 옆에 앉았다. 라고 했는데 맞나요?(예)


증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도착해서 의사정족수가 채워진 것으로 윤석열과 김용현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둘이 계엄을 선포하려다 박성재가 아직 숫자가 차지 않았다 라고말한 것 같다”했는데 맞나요?


송: cctv를 보면서 사후적으로 추론한 것입니다.


변: 그러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나 증인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통령이나 김용현, 박성재 등이 의사정족수를 신경쓰는 모습이 보였나요?


송: 사후적으로 생각했을 떄 그랬는데 당시는 몰랐다.


판: 박성재가 ‘숫자가 차지 않았다’고 했어요?


송: 아뇨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몰랐는데 그런 말은 듣기는 했다. cctv를 맞춰보니 박성재인 것처럼 보여서 그리 말했다.


변: 대접견실에 윤석열이 들어온 상황에 대한 질문. 당시 윤석열이 들어올 때 의견을 말한 사람은 특별히 없었죠?


송: 조태열만. ‘잘 모시려고 그러는 겁니다’ 정도


변: 평소에 자유롭게 의사표현?


송: 그렇지는 않고 미리 의안이 사전에 조율된 것으로만 이야기.


변: 당시 분위기상 다같이 반대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했어요 맞나요?(예)


그러면 당시 증인께서도 그런 상황이 아녔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이 계엄 반대한다’라고 하지 않은거죠?


송: 말할 기회가 없었다.


변: 반대로 적극적으로 비상계엄에 찬성한 국무위원이 있었나요?(기억하지 못합니다)


증인 그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할 떄요 수사관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로부터 문건을 받은 것이 있는지?’라는 물음에 1pg짜리 문건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는데 맞나요?


송: 예 다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변: 사후적인 추론인가요?


송: 10시라고 한 이야기가 있어서 비상계엄선포문일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것.


변: 당시에 대접견실에서 받은 문건이 있나요?(그거 하나)


cctv 대접견실 22:53 제시 최상목이 한덕수한테 문건을 가져와서 손으로 넘기면서 pg읽고 있어요. 증인께서도 그 장면을 보고 있고. 해당 문건이 무엇인지 증인 아시나요?(모릅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시.


이 포고령 언제 어디서 처음 봤나요?


송: 저는 지금도 본 적이 없다.


변: 지금까지도?(예)


증인진술조서 제시

<답: 아무런 심의가 없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회의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는데 이렇게 진술한 이유?


송: 회의면 시작이 있을 것이고 안건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의견을 나눠야하고 끝이 있어야하는데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다.


변: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접견실로 돌아와서 집무실에서 국무위원들에게 말을 했다고 해요. 당시 어떤 말을 했나요?


송: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본인이 해야 할 일정은 한덕수가 하고 기재부에 예산, 경제. 이런 것 챙겨달라고 했고 행안부에 질서유지 차원에서 경찰 관련한 이야기. 한미관계 관련해서 말씀. 그리고 저희한테도 농산물 값 관리하라. 중기부한테도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을 쭉하셨다.


변: 증인 아까 “당분간 가야하는 행사를 총리님이 가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말씀한 행사가 어떤 걸 말하는건가요?


송: 일정이 있었을 겁니다. 행사명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음주에 해야할 뭐뭐뭐있잖아요. 그거 총리님이 해주셔야겠다”이런 말


변: 그 예에 ‘무역의 날’도 있나요?(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남) 그 말이 국정 전반을 대신해달라는 것인지 행사를 말하는 것인지?


송: 행사를 언급했지만 전반적인 것을 말하시지 않았을까


변: 그 말을 하면서 윤석열이 한덕수에게 별도의 문건 줬나?(그건 모른다)


어쨌든 증인이 퇴실하기 전에 동의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회의에 참석했다는 취지로 서명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요청에 따라 서명을 한 국무위원이 있었나요?(없던 것으로 기억)


그러면 한덕수가 증인 특정해서 “싸인좀 해달라’고 했나?(그러지는 않았다)


아까 인터넷으로 확인했다고 했던 비상계엄해제요구안 가결 당시 어디에 계셨나?(집)]


당시 01:03인데 인터넷으로 알고 계셨다고 했는데 국회에서 해제결의안이 통지된 것은 당일 새벽 02:02분 경인 것 알고 계셨나?


송: 그건 몰랐고 그 즈음에 국무조정실장이 텔레그램에 메세지를 올렸다.


변: 증인께서 법정에서 ‘오래 지체되었다’고 하셨어요. 그때 수사기관에서는 ‘해제 국무회의 지체된 경위?’에 대해서 증인은 ‘위원들이 참석이 지체되고 안건이 준비되지 않아서’라고 했는데 맞나요?(예)


적정한 국무회의 위해서는 안건선정하고 안건번호 설정하는게 당연하죠?(예)


비상계엄해제국무회의 이후에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를 두고 국무회의로 볼 수 있는지 문제에 대해서 조태열은 ‘그게 무슨 국무회의냐’고 하셨고 이상민은 맞다고 했어요. 이와 관련해서 한덕수가 의견을 말하거나 한 것 기억나나요?


송: 당시 자리에서 한덕수의 발언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송미령 반대신문 종료—--

판: 추가로 더 물으실 것?

검: 없다.


판: 해제국무회의 당시 안건번호가 문제가 되었나요?


송: 화면에 차수가 나왔습니다. 그게 53차냐 54차냐 어떻게 표기를 해야할지 왔다갔다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비상계엄 선포 전 회의를 국무회의 차수에 포함을 시킬지 말지에 대해서 혼선이 있다고 생각. 그렇지만 그건 금방 정리가 됐다.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리고 의안을 자료를 정리를 하고 담당부처 장관이 읽는 것이 설명이 되는데 그 의안을 당일은 국방부 장관이 가져와서 읽어야하는데요. 그거 준비.


판: 그러면 김용현이 해제국무회의 관련해서 안건준비한다고 지연?


송: 저는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판: 생각을 묻는 것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 다만 증인 생각은 김용현이 안건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생각이 든다는거에요?


송: 굳이 따지자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 기억에는 해제국무회의는 5분도 안 되어 끝났고 읽으면 끝나는 것이라서


판: 회의 자체를 개회하는데 준비하는 시간이 소요된 이유를 묻는거에요. 현장에 계셨으니. 안건준비에 대한 생각이라는거죠?


송: 차수에 대한 결정. 안건에 대한 준비?


판: 어떤 분은 안건번호 부여에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그건 잘 모르겠다)


비상계엄선포 전후 이야기를 했는데 박성재 장관의 행동이나 말이 기억이 나나요?


송: 계엄 선포 전에는 제 오른편에 앉아계셨는데 거의 말씀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선포후에 여쭸더니 ‘나는 우리 간부들 소집해놨어 회의를 하려고 해’이 기억이 하나 있고. 그것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판: 바로 옆에 앉으셔서 물었다. 다른 것은 또 없나?(예 남아있는 기억은 이게 전부)


지금 증인께서는 지금도 장관이시고 전에도 장관이시고 국무회의를 하는 분위기나 상황이 다른가요?

(많이 다르다) 전에는 어떤가요?


송: 전에는 차관회의를 거쳐서 안건이 정리가 되고 최소한 1주 전에 의안에 대해서 국무회의가 세팅이 다 되어있고 상황이 예상이 되고 어떤 것을 이야기를 할 지 다 알고 있고 기록도 남고 2주 후에 기록으로 공개가 되고 의사봉을 통해 개회를 하고 폐회를 하고. 그런 상황으로 진행이 됩니다. 정해져있고 모든게 결정되어있는 형태로 진행이 됩니다.


현재 국무회의는 국민들에게 조금 더 과정들을 공개를 하려는 취지도 있고 하기 때문에 토의과정을 정해놓고, 혹은 즉석에서 정해놓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유롭게 토론을 합니다. 그 부분은 언론에 나와있습니다.


판: 전 정권 국무회의는 사전에 정리가 되서 회의자리에서 추가로 논의할 것은 별로 없었다는 말?(예)


그러면 12.3 관련해서 비상계엄 관련해서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게 이상한거네요?(예) 사전에 말씀하신 의안조율 절차도 없었고?(예)


판2: 증인 제가 몇 가지만 물을게요. 오영주 장관 들어올 즈음에 윤석열의 첫 마디가 기억이 난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걱정이 많다?’


송: ‘여러분들이 걱정이 많으시지만’이라고 하고 조태열 말이 있고 그 다음 윤석열이 ‘하지만 논의할 사항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시작


판2: 조태열의 그 말 외에 명시적으로 말린 사람은 없었죠?(예)


윤석열이 한덕수에게 행사 대리 참석 관련해서 구체적인 행사 기억 안 나신다고 하지만 예컨대 뭐였나요?


송: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못하니 당분간 총리님이 가주셔야하겠다’정도로만 기억이 남.


판2: 윤석열이 증인에게 ‘농산물 물가 뛰지않게 잘 관리하라’고 했고 한덕수도 같은 취지로 제시?(예)


당시에 그 농산물 물가 관리가 필요한 시기였나요?


송: 김장철 즈음해서 배추 등 채소가격이 들썩였다. 그래서 그 부분이 머릿속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판2: 대통령과 총리 지시사항인데 부처에서 따로 관리하는 것 같은데 관련해서 조치를 취하거나 대통령이나 한덕수에게 보고를 했나요?


송: 그건 저희 고유 업무라서 따로 보고하지는 않았고 물가라는 말보다는 수급안정관리가 저희 일이기때문에 지시와 관계없이 항상 신경쓰는 것.


변: 행사를 대신 가달라고 했을 때 그 뉘앙스를 ‘전반적인 국정부탁’이라고 하셨는데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때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게 아니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전반적인 국정운영을 총리에게 맡긴 것은 아니잖아요?


송: 아무래도 계엄을 선포하셨으니 당분간은 직접 뭘 하기는 어려우니 총리에게 부탁을 한 것으로 기억. 당분간 그런 자리 가기 어려우니 총리님꼐서 대신 가주셔야겠어요. 이런 말.


변: 예. 의결은 01:03이고 대통령실 통지가 온 것은 02:02이에요. 그래서 국무조정실장이 해제국무회의를 연다고 한 것이 그 시간이에요. 이후에 지체가 좀 됐는데 한덕수가 해제국무회의를 지연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으셨나요?(그건 제가 모릅니다)


검: 변호인 측에서 계속 통지 관련해서 물으니 여쭤볼게요. 비상계엄해제요구안이 결의가 되면 즉시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해제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통지를 받은 후에 국무회의를 열어야한다는 규정은 없어요. 그래서 나중에 해제국무회의가 열렸을 때 통지 자체가 늦어져서 국무회의가 늦어졌다는 말을 이후에 들은게 있나요?(없습니다)


판: 주로 계엄 선포 후에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다들 반대하는거라고 생각했다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는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되고 국무의원들은 잠시 모여있다가 해산한게 전부 아닙니까?


송: 실체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울먹


판: 그렇게 생각을 하셨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현실상황과 너무 다른 것 같아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그냥 선포된 상황에서 국무위원들은 그냥 해산하고 국회에서 해제결의를 하니 해제를 한 것이고. 말씀이랑 현실이 너무 달라서. 현실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서.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신게 아닌가 싶어서요.


송: 그래도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그것인데요. 무력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그 대목인데 뭔지도 모르고 당황스럽고 그런 것인데요.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국민들이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냐. 총리님이 우리를 잘 지도해주셔야한다고 말씀드린 취지가 그렇다

*울먹


판: 예 알겠습니다. 14시부터 서증조사 하겠다. 

—------송미령 증인신문 종료—--


판: 오후 재판 시작하겠다. 오전 진행 관련해서 주신문이 좀 길어졌고 변호인 반대신문 과정에서 제가 줄여달라고 했는데 바람직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변호인에게도 시간을 충분히 보장드렸어야 했다. 제가 다음에는 시간을 충분히 고지해드리겠다. 그리고 검 측 이상민 구인계획에 문제가 있나요?


검: 특별히 문제 없다.


판: 저희가 생각치 못한 문제가 있다면 서면으로 주시면 검토해보겠다. 사정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달라.

(예)


서증조사 진행하겠다. 의견없으면 바로 진행하겠다. 


검: 현재까지 법정에 출석해서 변호인이 증거동의한 것들에 대해서 증거조사하겠다. 

먼저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한 조서. 특검 작성 진술조서. 


대통령실 도착 경위에 대한 진술조서:

최초 전화를 받지 못하여 차관에게 전화를 했고 20:06분 경 김용현으로부터 대통령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아서 복귀함. 


대통령 집무실에 입실하기 전 한덕수와 함께 있던 부분: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계엄이 선포될 것 같다’고 했고 계엄이 선포될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것 같다. 고 진술했습니다.


추가로 국무의원 불러서 국무회의 하게 된 경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이상민이 특별히 나선 점이 없고 송미령에게 전화를 한 사정도 있던 점으로 미루었을 때 한덕수가 정족수가 채워졌다고 말했던 것 같다.


문건 관련:

‘전공의를 처단한다’는 내용이 기재된 포고령이었다. 21:10경 집무실에서 대접견실로 나온 시점부터 21:18경부터 선포하기까지 한덕수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반대를 말한 기억이 없다. 특히 최상목과 송미령이 도착하여 국무회의 정족수까지 2명이 남은 22:14까지 윤석열은 대접견실로 나와 4분간 계엄의 정당성을 말했는데 국무위원 누구도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다. 이에 윤석열은 22:18에 비상계엄 선포 위해 대접견실을 나갔다.

*이어 김영호의 같은 내용 같은 취지 같은 답변 2회 진술조서 확인. 


김영호 경찰작성진술조서 제시


김영호 전 장관은 2025.4.7 조사에서도 한덕수로부터 계엄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 


2025.5.30 피의자 신문조서에서도 동일하게 진술을 함. 


—-김영호 진술조서 종료


다음으로 안덕근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서.


안덕근은 강의구로부터 설명없이 대통령실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이후 ‘종료되었으니 오실 필요가 없다’고 전화를 받았으며 돌아가는 길에 택시에서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게 됨.


22:30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안덕근 장관을 기다리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됨.


한덕수가 국무위원을 추가로 불러야한다는 것은 절차상 외견상 정당성을 보이기 위함이었다는 것 증명.


안덕근은 경찰에서 일부 국무위원만 불러서 회의하는 것은 국무회의를 형해화하는 것이라고 진술.


이후 국회에서 의결이 된 후 자신에게 전화가 와서 “계엄이 선포되었으니 계엄을 해제하는 국무회의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하는 전화를 받아서 본인을 부르는 것이 계엄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됨.

—--안덕근 진술조서 종료


다음으로 조규흥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흥은 대통령실에서 도착했을 때 윤석열이 격앙되어 말하고 있었고 무슨 일인지 몰라서 조태용 국정원장으로부터 문건을 받아보았다고 함. 그 문건은 비상계엄담화문이라고 함. 이는 한덕수가 대통령실에서 나올 때 쥐었던 문건 중 3개. 1개는 상의 안 주머니, 나머지 2개는 손에 들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조규흥과 김영호 장관 진술에 의하면 이 두 문건은 비상계엄선포 담화문과 포고령으로 확인이 됨.


한 편 조규흥 역시 한덕수가 윤석열에게 비상계엄을 반대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함. 한덕수는 국무위원을 불러서 반대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이라면 참석자들이 모일 때 강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 참석자 중 그런 것을 본 이가 없다는 것이 일관된 참석자들의 진술. 


경찰작성조서에서 조규흥은 대통령실에 도착하여 조태용 전 국정원장에게 문건을 받아보았다고 일관되게 진술. 19시 58경 왼손에는 a4용지 오른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나와 20:11에 한덕수 박성재 김영호 조태열 조태용 등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대접견실로 이동한 직후 김정한이 나오는게 확인됨. 이에 대해 김정한은 19시 59경 윤석열이 자신에게 수기로 된 명단을 주면서 1차로 부른 사람이 모두 도착한 후 21:15경 재차 자신을 부른 후 추가로 부를 국무위원을 부르며 이들을 추가로 부르라고 진술.


김용현이 김정한에게 손가락을 4개를 펴보이는 장면이 cctv에 확인되는데 김정환 수행실장은 그 무렵 분위기상 의사정족수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고 하였다.


—---김전환 진술조서 종료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24.12.3 19시 54경 윤석열로부터 대통령실로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음. ‘어디십니까? 집무실로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인한테도 말씀하시지 말고 오시죠’라고 하여 들어감. 집무실에 들어가자 윤석열이 준 문건이 있었고 그 문건에는 재외공관 관련 내용이 기재가 있었다. 당시 자리에는 한덕수도 있었는데 한덕수는 ‘외교부장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말을 했다고 함. 또한 조태열이 집무실에 있는 동안 비상계엄 반대는 본인만 했으며 다른 사람이 좀 거들어주었으면 했다고 진술.


또한 한덕수가 조태열에게 질문하며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를 했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

‘집무실(윤석열과 함께 있을 때)에서는 안 하고 대접견실에서 했다’고 하여 윤석열에게 명시적으로 반대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해. 


이후로도 조태열은 일관되게 한덕수가 비상계엄을 반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


최상목이 한덕수에게 50년 공직생활 이렇게 끝낼겁니까. 하고 이상민에게는 ‘너는 예스맨이니까 노라고 못했겠지’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군가 참석은 했으니 서명은 하라고 하셨고 최상목과 저는 서명할 수 없으니 나갔다’


이후 외교부 차관에게 ‘나랑 기재부 장관 둘만 반대했다. 사표낼거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 국회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고 02시까지 외교부 청사에 있다가 02시 30분에 대통령실로 향하였습니다. 이후 영상에 의하면 비상계엄선포 이후 윤석열이 건넨 재외공관 관련 문건을 그대로 대접견실에 두고 간 것이 확인되는데 이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


서명문제로 다툼이 있던 상황에 대하여 “한덕수가 그 상황을 정리하려는 것은 맞다. 한덕수는 회의가 있었으니 적어도 서명을 해야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 같은데 제 느낌입니다”라고 했다. ‘그저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비상계엄해제 국무회의 관련해서 ‘한덕수가 잠깐 보자고 해서 보았고 한덕수는 비상계엄선포 전 국무회의가 심의가 있던 것으로 보아야하느냐? 고 물어보았다’. 그리고’한덕수는 심의가 된 것으로 본 것으로 치우쳐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상민이 정리를 하자고 해서 한덕수는 정리를 하고자 했다’


12.3 조태열 전 장관이 집무실 들어간 상황에 대하여 ‘윤석열이 김용현에게 언론 대기중이냐고 묻고 김용현이 22시 언론발표준비해뒀다고 답하는 말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위원이 모인 것과 관련하여 조태열은 ‘국무회의가 아녔다. 토론이 없었는데 그게 무슨 회의인가’라고 하였다.

—----조태열 진술조서 종료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


박상우는 22:23에 대통령실에 도착. 그러나 윤석열은 이미 비상계엄 선포담화를 해. 안덕근보다도 더 간발의 차로 국무회의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한덕수는 국무위원이 더 들어올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11명이 모이자 불과 2분만에 아무런 제지없이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록 했어. 비상계엄을 저지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어. 


‘강의구 전 부속실장이 나간 인원에게 서명을 요청하는 것이 확인’하였고 박상우는 그걸 ‘방금 전 상황을 국무회의로 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서명을 할 수 없다고 했고. 한덕수는 ‘이미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박상우 진술조서 종료



검: 우선 이렇게 박상우까지 서증조사


판: 변호인 측 입장?


변: 제시한 측 증거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저희의 입장이고 하나만 짚자면 김영호 장관은 저번에 ‘한덕수를 미리 만났는데 대접견실에서 만났다는 것은 착오’라고 증언에서 진술함. 이것만 바로잡고 나머지는 동의.


판: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기억이 나고. 증거조사 이의는 없는 것으로 이해해도?


변: 의견서 통해 이야기를 하겠다.


판: 서면은 내셔도 되고요. 그러면 다음 서증조사로 가겠다.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된 수사보고 등


검: 다음으로는 윤석열 내란 폭동부분 관련한 서증조사 진행. 


내용은 월담하여 들어간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명단 등. 국회사무처 등을 통해 받은 내용들. 이와 관련하여 월담하여 국회로 들어간 사무처 인원은 142명으로 파악됨. 2017년 경 박근혜 시절 방첩사 전신인 기무사 주도로 계엄대비문건이 작성되었는데 이번 비상계엄 문건이 위 건을 참고했다는 것이 수사보고. 김용현 피의자 신문조서, 조태용, 강의구 진술조서는 추후 서증조사 시 조사 진행하겠다. 11.6자 제출한 의견서에서 196번 뉴스조사에 대한 기록 누락되었는데 동의해주시면 진행하겠다.


판: 특별히 문제 없어보이네요


검: 예. 윤석열은 허위로 외신을 보도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2017년 경에 작성된 기무사 작성 문건에 계획된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 김용현 전 장관이 해당 문건 참고해서 포고령을 작성하였다는 진술이 있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는 ‘여소야대에 대비’하는 것이 있고 국회의원은 현행범 체포한다. 부분도 있어. 


판: 혹시 뭐 비밀로 설정된 문건이 있나요? 중계 때문에 미리 말씀을 하셔야?


검: 해제되어있다.


판: 진행하다 문제있으시면 말씀해달라.


검: 예. 다음은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진술조서. 박안수는 김용현으로부터 21:40경까지 국방부로 오라는 말을 듣고 이유도 모른채 갔더니 갑자기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이후 전군지휘관회의가 열렸고 국무회의 여부는 전혀 몰랐으며 김용현이 포고령 1호를 주며 그대로 내려라고 했다는 내용 

박안수는 윤석열이 조지호에게 포고령 하달사실 알려달라고 했고 이후 조지호에게 전화해서 ‘포고령이 하달되었으니 경찰경력 증원을 요청’했다는 내용.


다음은 12.3 정진팔의 진술조서. 국방부 대변인 전하규의 진술조서는 폭동상황에 대하여 기재가 되어있어.


전하규가 김용현이 전 장관이 준 계엄문건을 촬영한 것 제시


김철진의 진술조서에는 이 상황에 대한 참고 될만한 것 있어. 


다음은 곽종근의 진술조서 


‘김용현의 지시를 받아 특전사 병력을 국회로 투입하였다는 내용. 이후 윤석열로부터 ‘국회로 들어가서 의원 등을 데리고 나와라’고 함. 이후 곽종근이 작성한 시간대별 상황내역이 있고 헬기 12대 투입지시. 


다음은 이상현의 진술조서


곽종근 명령받아서 국회 등으로 출동했다는 내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테이저건 휴대 지시를 받아서 휴대를 했고 수갑용 케이블타이도 휴대하였다는 내용.


다음은 김현태의 진술조서


김현태도 12.3에 곽종근 연락을 받아 96명이 8대 헬기에 나눠타서 국회로 출동했다는 진술. 그리고 00:11경까지 국회 경내 운동장에 착륙했다는 내용.


다음은 이진우의 진술조서


수방사 병력에게 국회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하였고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라고 했다는 등의 지시 내용.


다음은 조성현의 진술조서


조성현은 제1경비단이 실탄과 공포탄을 갖고 국회로 출동했다고 진술. 대테러특임대도 국회로 갔으며 이진우로부터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내용


다음은 조백인의 진술조서


조백인은 수방사 참모장으로서 12.3 당시 상황 기재


다음은 여인형의 진술조서

2024.11.30 비상계엄 선포 3일 전 여인형은 ‘김용현으로부터 계엄 이야기를 들었는데 국무총리나 국무의원이 반대할텐데..’라는 말을 본인이 했다는 취지의 말 진술.


이후 체포조 운용 관련한 진술. 비상계엄 3일 전에도 ‘국무위원들이 있는데 설마 하겠어.”하는 진술.


11.30 김용현이 ‘조만간 대통령이 계엄을 할 것이다.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 등의 부정선거를 밝히면 국민들도 찬성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진술


다음은 정성우의 진술조서

방첩사에서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에 투입된 인원이 111명이라는 진술


다음은 방첩사 방첩수사단장 김대우의 진술조서


합수부 구성을 준비했고 여인형으로부터 ‘명단에 있는 사람 잡아서 수방사로 이송시켜라’고 진술


다음은 방첩사 수사조정과장 구민회의 진술조서


방첩수사단장 김대우로부터 ‘이재명 우원식 등 14명 체포’하라는 진술 등


다음은 정보사령관 문상호의 진술조서


김용현 전 장관의 지시를 받고 12.3 21시 경에 과천정부청사 근처에 대기하였고 개인당 6발 정도의 실탄을 갖고 출동하였으며 중앙선관위 청사 안으로 팀원이 들어갔다는 취지의 진술입니다.


또 12.1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의 연락으로 상록수 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모였을 때 노상원이 ‘조만간 계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 12.3 당시에는 ‘22시경에 속보가 나올거야’라고 했고 이후 20분 정도 지연될거라고 했고 실제로 늦어졌다는 진술.


다음은 정보사 계획처장 고동희 진술조서


12.3 정보사와 문상호로부터 ‘오늘 임무를 하나 해야겠다. 티비에서 속보가 나오면 선관위 들어가서 전산실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진술.


다음은 정보사 중앙심문단장 김봉규 진술조서 *이름 현출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으로부터 선관위 직원들을 체포하고 수방사로 호송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진술


다음은 정보사 100여단 5사업단장 정성욱의 진술조서 *이름 현출됨


문상호 정보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정보사 인원들과 함께 선관위로 출동하려고 했다는 진술


정보사 중앙심문단장 김봉규가 24.11경 노상원을 만날 때 노상원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고 들었고 자신과 정성욱이 그 내용을 들었다는 취지 진술


다음은 경찰 국수본 수사기획담당 전창훈의 진술조서


방첩사로부터 경찰의 수사인력을 지원해달라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국방부 조사본부장 박헌수의 진술조서


조사본부 수사관 100명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조사본부 수사관 소속 10명이 출동했다는 진술.


다음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장 김상용의 진술조서


박헌수로부터 ‘여인형이 수사관 100명 요청했는데 확인해봐라’는 말 들었다고 진술


다음은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 정승기의 진술조서


국회에서 비상계엄을 해제결의한 상태였음에도 이후에도 국회로 조사관들을 출동시켰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국정원 제 1차장 홍장원의 진술


12.3 22:53경 윤석열의 전화를 받았는데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하는 것 봤지?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테니 우선 방첩사를 도와.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고 말했다고 진술.


이에 조태용에게 비상계엄에 대해 알고 있었냐고 물으니 조태용이 ‘그런 것은 왜 묻냐’고 했으며 다시 국정원장에게 ‘방첩사를 지원하랍니다. 이재명, 한동훈을 잡으랍니다’라고 했는데 조태용이 무시하자. ‘원장님 최소한의 지침은 주셔야지요’했는데 국정원장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진술


다음은 중앙선관위 피해 관련 진술


정보사 10여 명이 과천 중앙선관위에 침입했고 이후 경찰들이 청사 바깥에 침입하였고 이후 특전사가 침입하였다는 내용. 과천, 수원 등 합하면 경찰 294명 특전사도 상당수 투입되었다는 내용.


다음은 박안수의 진술조서


앞서 서증조사한 내용과 같이 비상계엄 선포 후 김용현으로부터 계엄사령관은 본인이 한다는 말을 듣고 이후 조지호에게 경력 증원 요청했다는 내용 진술


다음은 육군본부 정책실장 김흥준의 진술조서, 


12.3 상황 관련


다음은 곽종근의 진술조서


앞서 서증조사한 것과 같은 취지 내용


다음은 이상현의 진술조서


앞서 서증조사한 것과 같은 취지 내용+ 문을 부숴서라도 의원들 끄집어내라. 필요하면 전기라도 끊어라는 내용 


다음은 특항단장 김세운의 진술조서


비상계엄 선포 이후 헬기 12대를 국회로 출동시켰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특전사 3공수여단장 김정근의 진술조서


병력을 선관위 과천청사 등지로 출동시켰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특전사 9공수여단장 안무성의 진술조서


여론조사 꽃 등에 병력 출동시켰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707 특임단장 김현태의 진술조서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기 위해 병력 출동시켰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수방사령관 이진우의 조서


국회에 병력을 출동시켰고 ‘4명씩 1명을 들쳐업으면 되지 않느냐 문을 부숴서라도 들어가라’, 그리고 비상계엄 몇 달전 ‘특별한 방법이 아니면 타개가 어렵다’고 했다는 진술


다음은 수방사 1경비단장 조성현의 조서


12.3 당시 국회로 병력 출동시켰고 일부 국회경내로 침입. 수방사령관 이진우로부터 ‘국회의원 끌어내라’고 했던 말


다음은 수방사 참모장 조백인의 조서


수방사령관 이진우가 ‘우리 임무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을 통제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 진술


다음은 방첩사령관 여인형의 진술조서


체포명단을 받았고 조지호에게 위치추적을 요청했었다는 내용. 김용현 전 장관이 여인형에게 노상원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노상원에게 선관위, 꽃 등에 출동하는 방첩사 요원을 알려주라고 했다는 진술


비상계엄 전부터 윤석열이 ‘비상대권, 비상조치’등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있음.


다음은 방첩사 1처장 정성우의 진술조서


여인형으로부터 서버를 가져오라는 등의 진술


다음은 방첩사 수사단장 김대우의 진술조서


위와 같은 내용 취지


다음은 정보사 계획처장 고동희의 진술조서


위와 같은 내용 취지


다음은 합참에서 국방부 검찰단에 회신한 내용으로 12.3 당시 김용현 전 장관의 발언

‘모든 군사활동은 장관이 책임지고 명령에 불응하는 자는 항명죄로 다스릴 것이며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은 기지시된 사항을 이행하라는 내용’


다음은 방첩사 병력이 선관위 여론조사 꽃 등에 갔다는 내용 기재된 것.


다음은 당시 출동했던 707명단


다음은 수방사 헬기가 국회로 출입했던 경과 관련한 것


다음은 직전 제출한 707의 수정한 것.


다음은 707특임단이 국회 내부로 들어가여 단전 등을 시도한 것을 국회사무관실 협조하에 기록된 내용.


다음은 정보사령관 문상호의 조서


문상호가 2024.9 경에 노상원으로부터 공작요원 선발 등을 요청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노상원이 김봉규와 정성욱에게도 임무를 주라고 말한 진술이 있음.


24.10.14경에 문상호는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노상원이 하려는 것을 도와라’는 말을 들음.


이후 롯데리아에서 노상원 문상호 김봉규 정성욱 같이 만남.


그리고 김용현의 명령으로 작성된 국방부 일반명령을 보면 합수부 산하 제2수사단을 설치하여 단장 부단장 등을 배치한다는 내용이 있다.


다음은 정보사 계획처장 고동희의 조서


위와 같은 내용 취지


다음은 정보사 중앙심문단장 김봉규의 조서


안산 상록수역 인근 카페에서 노상원 정성욱 문상호 등을 만났고 선관위에 들어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노상원으로부터 a4지 10매 가량 문건을 받았다고 진술. 거기에는 중앙선관위 직원 명단, 법관, 망치, 케이블 타이 등에 대한 준비내용이 기재되어있었다고 진술


다음은 노상원이 김봉규에게 준비상태를 확인하는 상황 진술. 믿을만한 10명 선발해서 선관위로 투입하라고 했다는 진술이 있고 롯데리아 모임에서 ‘노태악은 내가 확인하면 된다’는 진술이 있고 이후에는 제 2수사단 관련 진술이 있다


국방부 인사명령 초안인데 22시부로 계엄수사단장을 임명한다는 내용.


다음은 정보사 100여단 5사업단장 정성욱의 조서


11.9 경 노상원으로부터 김봉규가 받은 문건을 이후 전달받고  이후 최종본을 전달했고 정보사요원이 중앙선관위 잡는 체포조가 될 것이라는 진술


다음은 경찰청장 조지호의 조서


조지호는 19시경 삼청동 안전가옥에서 윤석열을 만남. 당시 윤석열이 ‘계엄을 할 것이다’라고 했고 이후 계엄사령관 박안수의 전화를 받았고 포고령에 따라 통제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함.’’


이상민에게 전화가 와서 ‘국회에 기동대가 배치되어있다’고 보고했다는 진술이 있음.


다음은 서울경찰청장 김봉식의 조서


23:30분 경부터 조지호의 지시를 받고 국회출입을 전면 차단했다는 내용.


다음은 서울경찰청 공공안전처장 오부명의 진술


김봉식의 지시를 받고 국회 2차로 봉쇄했다는 내용의 진술



다음은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 김대우, 김철진의 진술조서 모두 위와 같은 내용 취지.


이어지는 문상호, 김봉규, 정성욱, 박안수, 여인형, 정승기의 조서 위와 같은 내용 취지.


이상 내란죄 폭동 관련 부분 서증조사 보고


—---내란죄 폭동 관련 서증조사 종료


판: 변호인 의견?(특별히 없다)


그러면 동의하신 것으로 하고 서면 제출할 것이 있으면 나중에 주시고. 앞으로 남은 서증조사는 얼마나 남았나요?


검: 저희가 예상하기에는 많이 걸리면 한 기일이라고 생각.


판: 서증조사 관련 의견은 어떤가요? 변호인?


변: 부동의했던 증인은 다 신문이 됐고 동의했던 증인이라서 법정에서 이렇게 현출하시면 특별히 저희가 말씀드릴 것은 없고 나중에 의견서를 제출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판: 관련된 소명을 하실 기회를 드릴까요 아니면 나중에 최종변론 때 시간을 드릴까요?


변: 변호인끼리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서 다음 기일에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


판: 그러면 우리 재판부는 지금 월, 수 재판을 하고 있는데 이번주 수요일에 10시에 김용현, 14시에 윤석열로 기재가 되어있는데 지금 오늘자로 2개가 제출되었는데 불출석사유서 제출하셨다. 김용현 변호인과 윤석열은 본인이 직접 작성. 실제로 수요일에 출석여부를 확인을 하고 말씀을 드릴 것이고 이걸 말하는 취지는 증인이 불출석 할 때에는 서증조사를 한다고 사전에 말씀을 드렸고 나머지 서증조사 검 측 이번주 수요일에 만약에 증인 불출석하면 서증조사를 그때 다하는 것은?


검: 좋습니다.


판: 서증보다는 총괄적으로 다투실 것 같기는 한데


변: 서증조사하면 불출석한 증인 예정자에 대한 부분만 하시는건지? 왜냐면 최상목 등은 아직 출석을 하지 않아서


검: 최상목은 이미 했고요. 불출석한 증인의 경우에는 주된 것이 조서이겠지만 관련 수사도 포함될 수 있다.


변: 원래 기록은 오전 김용현 오후 윤석열인데. 그 외 인물에 대한 서증조사도 진행하는지?


판: 잠깐만요. 


변: 특검에 여쭤본 이유가 만약 두 증인이 불출석을 하면 특검에서 예고한 서증조사를 다 진행해도 저희는 상관없다는 입장.


판: 증인 관련한 부분이 아니고 나머지 증인 다 하자는 말씀이에요. 특검 측. 그게 수요일에 전부 다 할 수 있는지?


검: 그 날 일단 해당 기일 신문을 준비를 해야하니 오늘 확인을 한 후에 가능한 부분을 특정하도록 하겠다.


판: 지금 서류 관련해서 첫 기일에 말씀드린 내용 중 하나인데요. 내란과 관련해서 공범이기 때문에 부동의하면 내용부인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서류에 대한 조사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고 본인이 나와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고. 김용현 윤석열 부분도 이에 해당하는지 검토를 해보셔야. 출석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예상을 해두셔야. 김용현 윤석열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둘이 부인한 서류이기 때문에 증거조사로 안 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검: 그런 부분에서 강의구를 오늘 제외를 한 것이고 검토를 해서 말씀드리겠따.


판: 서증조사가 중요한 부분은 수요일 증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포함해서 대비해야하는 것. 지금 신문도 준비하고 서증조사도 준비하기에 시간이 촉박하실 것이라고 생각. 가능한 부분만이라도 말씀해주시면. 저희도 어느 부분을 조사할 지를 알아야하니. 변호인 측도 마찬가지고. 혹시 내일 오전 중으로 어디까지 증인이 안 나올 경우 서증조사를 할 수 있을지? 그게 안 된다고 하면 절차나 기일을 미루던가 해서요. 내일 오전 중으로 의견서 제출 가능할까요?


검: 그렇게 하겠다.


판: 예 그렇게 하시고 한 기일 내 가능하면 수요일에 불출석 하시면 수요일에 진행을 우선 하겠다. 오늘 고생 많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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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한덕수 재판 


오전 증인

송미령: 전 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은 현 정부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전 정부 장관이자 12.3 국무회의 정족수 11명 중 10번째 출석자입니다.


계엄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모두 울먹이고 다음 질문에서는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계되고 있는 것을 의식하는 듯 했습니다.


송미령은 객관적 기억보다 사후추론에 가까운 말을 했는데요.


국무회의 서명 관련해서 

한덕수는 "찬성말고 참석한 의미로 서명은 괜찮지 않겠어요?"라고 서명을 종용했고


이상민은 "찬반이 중요한게 아니라 모여서 논의를 했다는게 중요하다"며 국무회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언론에 나온 최상목이 집무실에 들어가서 윤석열을 만류했다는 사실이나 한덕수에게 "50년 공직생활 이렇게 끝내실거에요?"하는 말도 했다는 것 역시 보았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공소사실 "폭동"부분 관련 서증조사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동안 재판에 있던 내용 중 각 증인이 가진 핵심 쟁점을 요약해서 특검 측에서 재판부에 순차로 설명하고 


변호인에게 증거인부를 묻는 과정이었습니다.


한덕수 변호인 측은 사실관계 정정을 제외한 대부분 증거를 모두 인정했으나 그것이 내란중요임무종사를 입증할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취지 모두 발언을 했습니다.


오는 수요일에는 오전 김용현 오후 윤석열이 증인신청되어있으나 오늘자로 둘 모두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습니다.

*윤석열은 본인이 직접 작성.


특검 측에서 나머지 서증조사를 하는데 1~1.5기일 정도 걸린다고 하여서 만약 김용현 윤석열 불출석 시에는 12일 하루종일 공소사실에 관한 서증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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